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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르기를 치료하기 위해 기생충을 몸에 지니게 하는 안전한 방법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기생충 단백질을 추출하여 약품으로 만드는 연구도 하고 있다. 그러나 제약회사들이 기생충을 지닌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합성 약품의 제조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근본적인 치료법은 아니다. 그에 앞서 ‘왜 많은 사람이 땅콩과 기생충을 구별하지 못하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을 해결해야 한다.
단백질의 구조를 읽는 기능은 면역시스템의 핵심이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이 기능은 매우 정교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 정밀 기능에 오작동이 생겼을까? 면역질환이 이토록 광범위하게 확산된 배경을 기생충의 부재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19세기 영국 농부들의 면역계는 애당초 꽃가루를 적으로 인지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조절 T세포의 개입도 불필요했을 것이다.
또다시 최초의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도대체 알레르기는 왜 생길까? 왜 평범한 물질이 알레르겐으로 둔갑하는 것일까? 본질적으로는 무해한 단백질의 어떤 특성이 면역계를 과민반응하게 만드는 것일까? 이 질문은 알레르기 학자들의 오랜 숙제였다. 알레르겐은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소스에서 나왔다.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알레르겐은 자작나무 꽃가루, 바닷가재, 양탄자, 페니실린, 라텍스 장갑, 애완견 등 실로 다양한 종류의 생물과 무생물에서 나왔다. 학자들은 알레르겐 사이의 공통점에서 실마리를 찾아내려 했다.
첫 번째 단서는 면역계 내부에 있었다. 인체는 외부에서 침입한 병원균과 기생충에 대항하여 다섯 가지 항체를 만들어낸다. 이 중에서 알레르기와 관련이 있는 항체는 한 종류뿐이다. 여기에 단서가 있었다. 인체에서 만들어지는 항체, 즉 면역 글로불린은 IgA, IgE, IgG, IgM, IgD 이렇게 다섯 가지로 나뉜다. 항체의 역할은 유해한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외래 단백질이 몸 안으로 침투하면 이 단백질에 찰싹 붙어서 이것을 파괴하라는 신호를 면역계에 보내는 것이다. 다섯 가지 항체 중에서 IgE라는 항체만이 무해한 단백질에 과민반응하여 히스타민 분비를 일으킨다. 다시 말하면 알레르기 질환과 관련이 있는 항체는 IgE뿐이다.
IgE는 면역 글로불린 중에서도 가장 적은 양으로 존재한다. 세균 감염에 대항하는 IgG가 항체의 80%를 차지하는 반면 IgE는 0.002%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극소량에도 불구하고 IgE는 매우 강력한 염증반응을 이끌어낸다. 외부에서 달걀이나 집먼지 진드기 분비물 같은 자극물이 유입될 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의 체내에서 IgE가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확인됐다. IgE는 히스타민의 분비를 늘리고, 히스타민은 천식이나 아토피 피부염을 유발한다. IgE 수치는 2~3일 지나야 절반 정도로 떨어지는데, 이런 이유로 한번 IgE가 만들어지면 아토피 환자들은 2~3일간 계속 가렵고 고통스럽다.
봄철에 콧물이 줄줄 흐르고 눈이 따갑고 재채기를 하는 이유는 항체 IgE 때문이다. 음식 알레르기를 일으켜 두드러기가 돋고 구역질이 나고 목구멍이 막히게 하는 항체도 IgE이다. 벌에 쏘인 사람을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사망하게 만드는 항체도 IgE이다. 고양이털과 땅콩가루와 자작나무 꽃가루처럼 무해한 물질에 맹렬하게 대항하는 것이 IgE의 진화 목적은 아닐 것이다. IgE의 원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IgE의 역사는 공룡시대를 살던 포유류의 조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든 포유동물이 IgE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IgE에는 중요한 기능이 있다고 추정된다. 자연은 쓸모없는 것에 귀중한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다. 캠브리지 대학교의 기생충학자 데이비드 듄(David Dunne)은 주혈흡충 연구로 IgE가 기생충 감염에 대항하기 위한 항체임을 밝혀냈다. 주혈흡충은 사람이나 동물에 기생하여 빈혈이나 혈뇨병을 일으키는 기생충이다. 기생충에 감염되면 IgE가 알레르기 환자들보다 훨씬 높은 수치로 증가한다. IgE가 이끌어내는 강력한 염증반응은 몸에 침입한 커다란 벌레를 제거하려는 우리 몸의 1차 공격으로 풀이된다.
기생충 감염을 제외하면 IgE가 관련된 질환은 알레르기가 유일하다. 그러므로 기생충과 알레르기 사이에는 어떤 식으로든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 학자들은 기생충과 알레르겐 단백질 사이에 공통점을 찾으려고 했다. 에딘버러 대학교의 릭 메이젤 교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알레르겐과 기생충 단백질에는 분명히 공통분모가 있을 거라고들 생각했죠. 하지만 지난 25년간 아무도 그 공통분모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꽃가루와 기생충에는 드러난 연결고리가 없었어요.”
그 사이 보고된 알레르겐의 종류는 점점 더 늘어나 1만여 종에 이르렀다. 학자들은 이들 알레르겐의 단백질 분자 구조를 분석하여 커다란 카테고리로 나누었다. 그러자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동식물의 단백질은 모두 100여 종으로 분류되는데, 알레르겐은 이 중 몇 가지 종류로만 국한되었다. 단백질 가운데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특성이 있는 것은 1%밖에 되지 않았다. 데이비드 듄과 릭 메이젤은 IgE의 활성을 유도하는 표적 단백질의 구조를 분석했다. 20년간 협업한 끝에 두 사람은 마침내 기생충의 단백질과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꽃가루 단백질의 구조가 유사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지금까지 알려진 약 1만 종의 알레르겐 단백질 가운데 단 열 가지가 전체 알레르겐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것들은 대부분 기생충 또는 해충의 단백질이다. 회충, 촌충, 구충같이 수만 년간 귀중한 영양분을 도둑질해간 기생충들 그리고 이, 벼룩처럼 머리와 옷에 붙어 피를 빨며 성가시게 군 벌레들의 단백질이 알레르기 항원인 것이다. 우리 몸은 이런 단백질에 반응해 면역 글로불린 IgE를 만들어낸다. 벌레들을 퇴치하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리고 꽃가루와 땅콩 단백질은 놀라울 정도로 기생충 단백질과 유사하다. 집먼지 진드기의 단백질도 기생충의 단백질과 구조가 비슷하다. 예일 대학교의 교수 루슬란 메츠히토프(Ruslan Medzhitov)는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물질들은 원래는 기생충을 검출하던 센서에 걸린다”라고 말했다. 땅콩 알레르기는 면역계가 땅콩 단백질을 기생충으로 착각한 결과이고, 꽃가루 알레르기는 꽃가루 단백질을 해충으로 착각한 결과로 생긴다.
정리하면 이렇다. 면역세포가 코 점막에 닿은 꽃가루 단백질에 ‘기생충’이라는 표식을 붙인다. 면역계는 기생충을 제거하기 위한 특별한 항체인 IgE를 만들어낸다. IgE는 히스타민의 분비를 촉발하고 히스타민은 강력한 염증반응을 일으킨다. 조절 T세포가 개입하여 염증을 끝내야 하지만 어떤 이유로 조절 T세포는 개입하지 않는다. 고통스러운 꽃가루 알레르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알레르겐의 정체를 알고 나면, 우리 면역계가 아주 한심한 정도로 오작동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라서 다소 안심이 되기도 한다. 알레르기는 기생충을 퇴치하기 위해 진화된 면역반응의 부산물이다. 기생충은 후생동물(두 개 이상의 세포로 이루어진 동물)로서 바이러스나 세균의 단백질에 비해 사람의 단백질에 더 가깝다. 이제 우리가 밝혀야 할 의문은 명확해졌다. 왜 우리의 면역계는 꽃가루 단백질을 기생충 단백질로 착각할 만큼 무디게 되었는가? 면역계의 표적 정밀도는 왜 떨어졌는가? 그 이야기가 시작된 곳은 20세기 뜨거웠던 역사적 현장 가운데 하나였던 1989년의 베를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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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Colin M. Fitzsimmons, David W. Dunne, “Survival of the fittest: allergology or parasitology?” Trends in Parasitology (2009)
- ・ Penny Bailey, “Out of Africa: what is an allergen?” University of Cambridge News (2011. 1. 9)
- ・ Cristen Conger, “Parasites behind seasonal allergies” Discovery News (2010.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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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꽃가루와 기생충의 공통점 – 청결의 역습, 유진규,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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