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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청결의 역습

세균 생태계의 불균형이 면역계에 미치는 영향

민수 씨 실험 이후, 우리는 대구에 사는 동균이네를 다시 찾아갔다. 동균이는 여전히 많은 것에 알레르기를 보이고 있었다. 동균이는 조금만 환경이 바뀌어도 곧바로 콧물을 흘렸다. 동균이 할머니는 동균이가 코를 너무 비벼서 남아나지 않겠다고 걱정했다. 더 큰 문제는 음식 알레르기였다. 먹으면 두드러기가 돋는 음식이 점점 늘어서 마음 놓고 먹일 음식이 더 남아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특히 라면은 금지식품 1호였다. 한번은 부엌에서 찌개에 넣고 남은 라면 부스러기 몇 개를 집어먹고 얼굴에 붉은 두드러기가 돋아서 며칠이나 고생을 했다.

동균이의 알레르기가 심해질수록 엄마는 청결에 집착했다. 가습기와 공기청정기를 따로 사용하고 가습기는 매일 씻어서 말렸다. 매일 침구 소독기로 침대를 스팀 살균하고 이불은 햇빛에 말렸다. 이불은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세탁하다 보니 너덜너덜해졌다. 곰팡이가 잘 피기 때문에 세탁기는 세제함을 없앴다. 합성세제는 사용하지 않고 베이킹소다, 구연산, 식초 등을 사용했다. 장난감은 젖병 세정제로 씻었다. 행주는 하루에 두 장 쓰고 저녁마다 삶아서 말렸다. 손은 하루에 수십 번 씻고, 물티슈와 항균 티슈를 항상 옆에 끼고 살았다. 습하면 세균이 생길까 봐 실내는 항상 뽀송뽀송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삶고, 쓸고, 닦고, 청소하기가 그녀의 인생이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동균이의 알레르기를 막아주지는 못했다.

우리는 동균이의 대변을 채취해서 알레르기가 없는 아이들과 비교해 보기로 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온갖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아이, 동균이의 장내세균은 건강한 아이들의 장내세균과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면역계의 정밀도와 관용은 오랜 세월 인류와 함께 진화해온 환경 미생물의 자극을 받아 발달한다. 면역계의 훈련 조교인 오랜 친구 세균들이다. 우리 몸에서 세균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곳이 대장이므로, 장내세균 생태계는 면역계의 올바른 형성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동균이의 대변 샘플을 얻어서 분석을 의뢰했다. 샘플에 들어 있는 수많은 세균의 종류와 양을 분석하는 데에는 2주가 걸렸다. 결론부터 말하면 동균이에게는 유익균이 부족하고 유해균이 많았다. 장내 유익균인 비피더스균과 락토바실러스균이 부족했고,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균 같은 유해균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알레르기가 없는 아이들의 경우는 유익균과 유해균의 비율은 4:1 정도로 유익균이 우세했다. 그런데 동균이는 이 비율이 1:1이었다. 알레르기가 없는 아이들에 비해 유해균이 4배나 많은 것이다. 아토피로 밤잠을 설치는 생후 10개월 성민이와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고생하는 지우의 대변도 검사해보았다. 성민이는 좋은 균과 나쁜 균의 비율이 1:4, 지우는 무려 1:10이나 되었다.

스코틀랜드 애버딘 대학교에서는 돼지를 가지고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연구자들은 돼지를 세 그룹으로 나누어 각각 다른 환경에서 키웠다. 첫 번째 그룹은 진흙탕이 있는 들판에서, 두 번째 그룹은 커다란 축사에 가두어서, 세 번째 그룹은 한 마리씩 나누어 좁은 축사에 넣고 주기적으로 항생제를 먹였다. 들판에서 키운 돼지들은 면역 관용이 높았고 다른 두 그룹과는 장내세균이 크게 달랐다. 들판에서 자란 돼지들은 장내세균의 4분의 3이 락토바실러스였다. 그에 반해 축사에서 키운 돼지들은 락토바실러스가 13%, 고립되어 항생제를 먹은 돼지들은 겨우 3.6%였다. 고립된 축사에서 항생제를 먹은 돼지들은 염증 유발 유전자가 활성화되어 있었고, 큰 축사에서 무리지어 키운 돼지들은 유해 세균이 많았다. 우리가 사는 환경은 위의 세 가지 가운데 어디에 가까울까? 자연에서 멀어진 주거 환경, 넘쳐나는 항균용품, 일상화된 항생제 복용, 핵가족화 등 우리는 세 번째 상황에 가깝다.

1983년 미국에서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유익균의 하나인 락토바실러스 플란타룸이 미국인의 25%에서만 발견됐다. 유럽에서 발표된 논문에서도 검사 대상의 약 절반에서만 대표적인 유익균이 검출됐다. 현대인의 장에는 유익균이 감소하고 상대적으로 유해균이 증가했다.

이처럼 인체의 미생물상에 변화가 생겨 유해균과 유익균의 균형이 무너진 것을 의학계에서는 디스바이오시스(Dysbiosis)라고 표현한다. 인간과 미생물의 공생관계가 무너졌다는 뜻이다. 민수 씨의 입안도, 동균이의 장도 유익한 균은 부족하고 유해한 균이 많은 디스바이오시스인 것이다.

일본인의 장내세균에서는 특별히 해조류를 잘 분해하는 기능이 있는 세균이 발견된다. 장내세균은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어떤 미생물에 자주 노출되느냐에 따라 변화한다.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은 커다란 장점이다.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유전자와 달리 유연하게 변화하는 장내세균 덕에 우리는 다양한 환경과 음식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생관계에 있는 양자 중 어느 한쪽이 너무 크게 변화하면 공생관계는 무너지고 만다.

2000년대 들어 학자들은 완벽한 무균 쥐를 만든 다음, 무균 쥐에 세균을 하나씩 되돌려주면서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관찰하는 방식의 실험을 했다. 이런 실험들을 하면서 세균의 종류에 따라 면역계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무균 쥐의 면역계는 미성숙 단계에 머무른다. 림프절이 부족하고 T세포와 조절 T세포도 적다. 이런 무균 쥐에 박테로이디즈 프라질리스균을 접종하자 면역계는 빠르게 정상 발달했다. 림프절이 생기고 조절 T세포도 정상 수준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프라질리스균만으로는 생쥐의 면역계를 완성할 수 없었다. 이 쥐는 병원균에 저항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Th 17이라는 공격형 면역세포가 생기지 않은 탓이었다. 무균 쥐에 분절형 사상균(Segmented Filamentous Bacteria)을 주자 무균 쥐는 프라질리스균을 주었을 때에는 생기지 않았던 Th-17세포를 왕성하게 발달시켰다.

그러나 분절형 사상균은 조절 T세포의 발달을 촉진하지는 않았다. 분절형 사상균만을 가진 쥐는 Th 17세포가 관절을 공격해서 관절 류머티즘을 일으켰다.Th 17세포는 염증반응을 일으키는 공격세포로, 조절기능을 하는 조절 T세포와 균형을 이룬다. 뉴욕 대학교의 댄 리트맨(Dan Littman) 교수는 “중요한 것은 세균의 양의 아니라 종류인 것 같다”고 말했다. 프라질리스균과 분절형 사상균을 모두 가진 쥐는 조절 T세포와 Th 17 세포가 생성되어 있었다. 이 쥐는 병원균에도 강하고 자기 조직을 공격하지도 않았다. 박테로이디즈 프라질리스균은 면역 통제력을, 분절형 사상균은 면역 공격력을 강화했다. 실제의 장내 미생물상은 무균 쥐처럼 단순하지 않지만 건강을 위해서는 적절한 세균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면역질환을 가진 환자들의 경우 장내 미생물에 이상이 있는 경우가 많다. 크론병 환자를 생검한 결과 대장에서 박테로이데테스류에 속하는 세균이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박테로이데테스는 정상적인 장내세균인데 크론병 환자들의 경우 정상인에 비해 수백분의 1 정도로 적었다. 스웨덴 과학자들은 일란성 쌍둥이 중에서 어느 쪽이 크론병에 걸릴 위험이 높은지를 특정 세균의 수가 적은 것으로 예측할 수 있었다.

핀란드 학자들은 관절 류머티즘이 발생하기 수개월 전부터 환자들의 장내에 특정 세균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을 발견했다. 감소한 균은 박테로이디즈 프라질리스균과 비피더스균이었다.

플로리다 대학교에서는 1형 당뇨 유전자를 가졌지만 증상이 없는 아이들을 유아기에서 아동기까지 추적 관찰했다. 당뇨가 발현되지 않은 아이들의 장내 미생물상은 다양했던 반면, 나중에 당뇨로 발전한 아이들은 장내 미생물상이 정상에 비해 단조롭고, 특정 균이 과도하게 번성했다.

스페인의 올란다 산츠(Yolanda Sanz) 교수는 셀리악병에 걸린 아이들도 장내 미생물상에 큰 변고가 있었다고 보고했다. 이 아이들은 그람 음성균이 많았고 비피더스균이 적었다. 셀리악병에 걸린 아이들의 장은 밀 단백질 글리아딘에 염증반응을 보인다.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글리아딘으로 장에 염증이 생기고, 염증이 생긴 장은 글리아딘에 더 민감해져 악순환이 반복된다. 산츠는 셀리악병이 있는 실험 쥐에게 건강한 아이에게서 추출한 비피더스균을 주었다. 비피더스균이 있는 상태에서는 글리아딘은 염증을 일으키지 않았다.

위에서 살펴본 사례에서 공생세균과 숙주의 관계에서 특정 세균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익한 기능을 하는 세균이 부족한 경우 건강이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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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규 집필자 소개

1965년 출생. 서울대 영어교육과 졸업. SBS 다큐멘터리 PD로 활동 중이다. 2007년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환경호르몬의 습격>으로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했고, 이후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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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결의 역습
청결의 역습 | 저자유진규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좋은 세균이 만들어내는 기적과 좋은 세균이 사라지면서 생겨나는 재앙에 관한 놀랍고도 충격적인 메시지! 세균을 질병의 원인이라고 여기는 현대인은, 매일 수많은 항균제품을..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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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세균 생태계의 불균형이 면역계에 미치는 영향청결의 역습, 유진규,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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