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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리아 치료제는 자가면역질환인 루푸스에도 효과가 있다. 루푸스는 주로 가임기 여성을 포함한 젊은 나이에 발병하는 만성 자가면역질환이다. 루푸스 역시 시골보다 도시에서 저소득 국가보다는 고소득 국가에서 많이 발생한다. 그 외에도 루푸스는 일정한 발생 패턴이 있는데, 예를 들면 미국에 거주하는 흑인에게는 많고 아프리카에 거주하는 흑인에게는 매우 드물다. 선천적으로 루푸스에 잘 걸리는 유전자를 가진 생쥐는 폐렴과 패혈증에 강했다.
역사적으로 전염병에 많이 시달린 집단일수록 자가면역질환에 더 잘 걸린다. 1형 당뇨 유전자를 가진 핀란드 아이들은 장을 통해 침범하는 콕사키 바이러스와 소아마비 바이러스에 저항력이 있다. 이런 사실은 동물 실험에서도 확인됐는데 1형 당뇨 유전자를 가진 생쥐가 결핵 박테리아를 가볍게 물리치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결핵에 감염된 생쥐는 1형 당뇨가 발생하지 않았다.
1형 당뇨를 일으키는 유전자는 지난 천 년간 더 흔해졌다. 면역 시스템이 췌장세포를 파괴하는 자가면역질환인 1형 당뇨는 유년기에 시작된다. 1920년대에 이르러 인슐린 주사가 발명되기 전까지 1형 당뇨 아이들은 어른이 되지 못했다.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사망하는 결점 유전자는 결코 후세에 전달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요즘 발생하는 것처럼 예전에도 1형 당뇨가 발생했다면 이 유전자는 빠르게 사라져서 인간 게놈에서 제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유전자는 더 흔해지고 널리 퍼졌다. 그러므로 과거의 환경에서는 이들 유전자는 오늘날처럼 질병을 발현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염병이 창궐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셀리악병도 전염병과 관련이 있다. 셀리악병은 밀 단백질 글루텐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나타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셀리악병 환자들은 밀가루 음식을 먹지 못한다. 그런데 농업의 발명 이후, 즉 인류가 밀을 비롯한 곡물을 주식으로 삼기 시작한 이후, 셀리악병 유전자는 오히려 더 흔해졌다. 빵을 못 먹는 사람들이 어떻게 유럽의 농경지역에서 살아남았고 오히려 더 많아졌을까? 불과 60년 전만 해도 셀리악병으로 진단받는 사람들은 아주 드물었다. 유전학자들은 셀리악병이 고대의 전염병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고대 유럽인들이 전염병에 저항하기 위해 발전시킨 어떤 유전자가 위생의 발달로 전염병이 사라지자 셀리악병을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가면역질환 유전자는 지금보다 훨씬 불결한 환경에서 우리가 살아남도록 도와주던 유전자이다. 1형 당뇨, 셀리악병, 크론병, 루푸스, 다발성 경화증, 건선 유전자는 과거 1만 년간 점점 더 많아졌다. 인구가 밀집되고 역병이 증가하면서 이들 유전자는 유용했을 것이다. 증강된 면역력의 이점은 자가면역질환의 위험을 훨씬 능가했다. 그러나 면역력의 반대편 저울에 있던 감염요소들이 갑자기 감소하자 전에 없던 면역질환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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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B. Mehrad et al., “The lupus-susceptibility locus, Sle3, mediates enhanced resistance to bacterial infections” Journal of Immunology (2006)
- ・ Sadeharju K., “The HLA-DR phenotype modulates the humoral immune response to enterovirus antigens” Diabetologia 46 No. 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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