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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 데이비스의 미생물학자 데이비드 밀즈(David Mills)는 모유 연구에 빠져 있다. 모유의 성분을 연구하는 일은 언뜻 미생물학자의 영역이 아닌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모유에는 다양한 미생물이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모유의 성분 자체가 미생물과 관련이 깊다. 밀즈가 처음 모유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모유 속에 올리고당이 상당한 농도로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아밀라아제를 비롯한 사람의 소화효소는 올리고당을 포도당으로 분해하는 능력이 없다. 아기는 물론 성인도 올리고당을 소화하여 흡수하지 못한다. 그런데 모유 성분의 무려 22%가 올리고당이다. 아기의 유일한 영양공급원인 모유에 왜 아기가 흡수하지도 못하는 물질이 들어 있는 것일까?
산모들 사이에서도 올리고당은 다양한 패턴으로 나타난다. 산모 1인당 약 20여 종에서 최대 130여 종의 올리고당을 생산하고 있고, 이를 모두 합하면 모체가 만들어내는 올리고당의 종류는 무려 200가지나 된다. 영장류일수록 올리고당이 다양해지고 인간의 모유에서 그 다양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미루어볼 때 여기에는 특별한 진화 목적이 있는 것 같다. 모유의 올리고당은 어떤 역할을 할까?
밀즈의 연구팀은 모유에서 올리고당만 정제하여 다양한 종류의 장내세균에게 먹이로 주는 실험을 했다. 모유에서 뽑은 올리고당 믹스는 강력한 세균 선별기능이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비피더스균 가운데 오직 비피도박테리움 인판티스(Bifidobacterium infantis)만이 모유 올리고당을 먹이로 하여 급성장했다. 엄마는 모유에 올리고당을 풍부하게 넣음으로써 특정 세균이 아기의 장속에 살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이것은 모유를 먹는 아기의 장에 사는 세균 중 99%가 비피도박테리움 인판티스라는 사실과 정확히 일치한다.
밀즈는 모유를 먹는 아기의 장에서 우점종(식물 군집 안에서 가장 수가 많거나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종)을 형성하는 장내세균 비피도박테리움 인판티스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하여 그 기능을 정밀하게 확인했다. 비피도박테리움 인판티스에는 올리고당을 이용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이 세균은 올리고당을 분해하여 포도당을 내놓는다. 아기는 특별한 소화효소 없이 포도당을 직접 흡수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 세균에는 요소를 수집하는 기능이 있었다. 요소는 질소 공급원이며 질소는 단백질 합성에 필요한 성분이다. 아기의 장에서 질소를 흡수하여 재활용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모유는 아기의 빠른 성장에 필요한 질소를 모두 공급하기에는 단백질 집적도가 너무 낮기 때문이다.
밀즈는 비피도박테리움 인판티스의 염기서열 분석으로 인간과 미생물 사이의 협업관계를 공진화의 산물로 정리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이번 염기서열 분석으로 비피도박테리움 인판티스와 아기와 모유의 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이들의 정교한 협업 관계는 놀라운 공진화의 산물입니다. 모유는 수백만 년간 정밀하게 진화했습니다. 목표는 에너지 효율성이었죠. 그 결과 아기는 엄마가 모유 생산에 투여한 에너지를 최대한 이용하게 된 겁니다.”
아기를 키우기 위해 모체와 세균이 협업한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인간과 세균과의 관계가 이 정도까지 긴밀한 것일까? 대답은 ‘Yes’다. 모유의 올리고당은 인간이 세균과 어떤 방식으로 상리 공생하는지 보여주는 긴 이야기의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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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JB German, SL Freeman, CB Lebrilla, DA Mills, “Human milk oligosaccharides: evolution, structures and bioselectivity as substrates for intestinal bacteria” Nestle Nutritional Workshop Series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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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모유에 올리고당이 들어 있는 까닭 – 청결의 역습, 유진규,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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