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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가루 알레르기가 처음 기록에 나타난 곳은 1800년대 초 영국 런던이다. 1819년 3월, 존 보스톡(John Bostock)이라는 의사가 런던의사협회에 사례보고서 하나를 냈다. 그는 보고서에서 ‘해마다 6월 중순이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가슴과 눈의 질환’을 새로 발견했다고 썼다.
‘매년 6월 중순을 기점으로 다음과 같은 증상이 맹위에 편차를 두고 출현한다. 처음엔 눈 가장자리에서 시작하여 점차 안구 전체에 따가운 느낌과 팽만감이 느껴진다. 눈의 이런 상태는 6월 둘째 주부터 간격을 두고 발작적으로 나타난다. 눈에 이어 코에 불편함이 느껴지고 재채기가 극심하게 나타난다. 재채기에 더해서 가슴이 조여오고 숨쉬기가 어려워지면서 인후와 기관지가 나빠진다.’
보스톡이 묘사한 증상들을 보이는 질환은 건초열(Hay Fever)이었다. 건초열은 봄에서 여름에 걸쳐 식물의 개화기에 나타나는 고열을 동반한 알레르기성 비염의 일종이다. 이 질병은 19세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특이하게 상류층에게만 발병했다. 보스톡은 ‘나는 하층민에게서 이 병에 걸린 경우를 단 한 건도 보지 못했다’고 썼다.
그로부터 50년 후, 건초열 환자였던 맨체스터의 의사 찰스 블랙클리(Charles Blackley)는 들판에서 수집한 꽃가루를 직접 들이마신 후 증상의 촉발을 확인함으로써 건초열이 꽃가루 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즈음 건초열에 걸리는 사람의 수가 차츰 증가했다. 상류사회 귀족에게서 시작한 건초열은 중류 지식층에서도 발생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정작 꽃가루를 가장 많이 마시는 농부들은 이 병에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의사들조차도 건초열을 부유함의 상징으로 여겼다. 특히 블랙클리는 농부들이 이 질병에 걸리지 않는 이유를 ‘문화적 고결함’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런던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건초열이 나타나 곳은 뉴욕이었다. 1911년 미국인 의사 윌리엄 하드(William Hard)는 ‘건초열은 미국의 특징이 됐으며 영국은 우리와 견주지 못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철도와 교역의 눈부신 성장을 지적하며 건초열은 두꺼운 철도망을 따라 번져가는 부유한 국가의 고상한 질병이라고 뽐냈다. 당시 의사들은 지적 수준이 최고에 이르거나 윤리의식이 투철한 사람만이 이 질병에 걸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과학적 근거가 없지만, 19세기 건초열이 발생했던 패턴을 살펴보면 알레르기의 원인을 밝혀줄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이상한 질병을 처음 겪은 영국과 미국은 도시화와 산업화를 먼저 겪었다. 도시화, 산업화, 부유층, 그리고 20세기 초 런던과 뉴욕의 공통점이 단서다. 건초열의 원인이 무엇이었든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생물학적 선행 조건이 런던과 뉴욕의 부유층에 처음 생겼던 것이 틀림없다. 건초열의 원인을 밝힐 수 있다면 우리는 국민병이 된 아토피의 원인도, 고통스러운 천식과 음식 알레르기의 원인까지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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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John Bostock, “Case of a periodical affection of the eyes and chest” Medico-Chirurgical Transactions (1819)
- ・ Manoj Ramachndran et al., “John Bostock’s first description of hay fever” The Royal Journal of The Royal Society of Medicine (2011)
- ・ K.J. Wate, “Blackley and the development of hay fever as a disease of civilization in the nineteenth century” Medical History (1995)
- ・ Gregg Mitman, “Hay fever holiday: health, leisure, and place in Gilded-Age America” Bulletin of history of medicine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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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꽃가루 알레르기는 부유함의 상징? – 청결의 역습, 유진규,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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