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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의대 교수이며 메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아동 정신과 과장인 마사 허버트(Martha Herbert)는 저명한 자폐증 전문가이다. 허버트는 자신의 자폐증 치료법에 커다란 전환을 가져온 한 소녀를 잊지 못한다. 조울증으로 내원한 아홉 살 소녀였다. 내원 당시 소녀는 조울증 이외에도 알레르기, 천식을 비롯해 역류성 식도염이 있었고 심한 설사를 계속했다. 피부상태로 보아 필수지방산 결핍도 있어 보였다.
정신과 약물은 뒤로 미루고 일단 설사부터 멈추기로 했다. 허버트는 소녀에게 프로바이오틱스와 오메가3 지방산을 처방했다. 프로바이오틱스는 설사를 멈추기 위해서였고 오메가3는 영양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허버트는 어린이들에게 정신과 약물을 처방하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한 달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설사뿐 아니라 소녀의 신체적 증상 대부분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불안감, 천식, 역류성 식도염이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후, 소녀의 조울증도 사라졌다. 프로바이오틱스와 오메가3가 놀랍게도 소녀의 신체적 · 정신적 문제를 일시에 해결해준 것이다. 허버트는 이 사례를 자신의 첫 번째 ‘성공’이라고 말한다. 무엇이 이런 극적인 변화를 가져왔을까? 허버트는 소녀에게 만성적인 설사를 일으킨 어떤 요인이 정신과적 문제와도 연결돼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소녀의 사례는 그녀의 자폐증 연구 결과와도 일치했다.
인턴 시절 자폐아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후, 허버트는 자폐아들의 뇌를 MRI로 촬영하는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녀는 자폐를 유발하는 뇌의 특정 영역이 분명히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MRI 영상을 들여다보아도 뇌의 망가진 부분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녀가 대신 발견한 것은 자폐아들의 뇌가 조금 더 크고 뇌의 케이블 네트워크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다른 연구자들도 비슷한 결론을 내놓고 있었다. 자폐아들의 문제는 뇌의 특정 부분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네트워크의 통신이 약하다는 것이었다.
뇌의 네트워크에 문제가 발생하면 동시에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는 종류의 사고능력이 지장을 받을 것이다. 의사소통, 사회적 교류 그리고 행동 유연성 등을 위해서는 뇌의 많은 부분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 자폐는 일차적으로 뇌신경 네트워크의 문제였다. 그렇다면 뇌 신경망에 문제를 일으킨 원인은 무엇일까?
만약 자폐를 촉발하는 독립된 방아쇠가 있다면 우리는 이미 그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아마도 많은 방아쇠에서 비롯된 다양한 자폐가 있을 것이다. 허버트가 내린 잠정적 결론은, 자폐는 뇌와 몸 전체의 문제가 서로 그물망처럼 엮여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몸에 문제가 있다면 뇌세포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자폐아들은 어떤 신체적 문제로 뇌가 사용할 에너지가 부족해져 버티고 버티다 결국 한계를 넘어서 버린 경우가 아닐까? 허버트는 자폐환자가 보이는 모든 신체적 · 정신적 문제에 동시에 대응하는 종합적 치료방식을 생각해냈다. 그녀는 이 치료법을 ‘그물망식 접근’이라고 명명했다. 허버트는 이 방식으로 완치에 이른 사례들을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 『자폐 혁명』에 자세히 적었다. 그중 가장 극적인 사례는 칼렙이란 사내아이의 경우였다.
칼렙은 태어날 때 2시간 정도 산도에 끼어 있었다. 그 때문에 두개골이 조금 비정상적인 모양이 되었다. 칼렙에게 닥친 첫 시련이었다. 칼렙은 이를 잘 극복하는 듯했다. 두개골은 약간 흔적만 남긴 채 정상이 되었다. 그리고 정상적인 아이처럼 잘 자랐다. 하지만 칼렙은 자주 아팠다. 두 살 때까지 칼렙은 중이염을 열세 번이나 앓았다. 이 때문에 계속해서 강한 항생제를 처방받았다.
칼렙은 머리가 컸다. 태어날 당시에는 표준 크기였던 머리가 두 살이 되자 일곱 살 아이의 머리처럼 커졌다. 문제가 감지된 것은 생후 16개월이 됐을 때였다. 칼렙이 갑자기 말을 하지 않았다. 불안도가 점점 커졌고 공포심을 심하게 느꼈다. 누구든 가까이 오면 불안해하고 손바닥으로 팔을 계속 쳤다. 23개월째에 칼렙은 자폐라는 진단을 받았다. 칼렙의 증상은 점점 더 심해졌다. 남이 만지는 것을 참지 못했고 강박적으로 자기 팔을 치거나 제자리를 빙빙 돌았다. 이유 없이 비명을 질렀고 자주 분노발작을 일으켰다. 모든 것이 자기 방식대로 되어야 하며 항상 같은 일과가 반복돼야 했다.
칼렙은 곧 행동치료와 감각통합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거의 진전이 없었다. 어머니는 칼렙을 허버트에게 데려왔다. 칼렙이 네 살 때였다. 허버트는 칼렙의 몸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에 집중했다. 칼렙은 밀가루와 유제품을 잘 소화하지 못했다. 설사를 자주 했고 장운동이 불규칙적이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았고 혈액 내 항산화 성분과 필수지방산도 부족했다. 칼렙의 편도선은 항상 부어 있었다. 눈에는 진한 다크 서클이 있었고 몸무게는 표준에서 미달됐다.
허버트는 칼렙에게 그물망식 접근법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칼렙의 모든 신체적 · 정신적 문제에 동시에 대응하는 것이다. 허버트는 먼저 칼렙의 장을 정상으로 회복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밀가루와 유제품을 식단에서 제외했다. 그 대신 프로바이오틱스를 지속적으로 섭취시켰다. 영양문제도 중요했다. 오메가3 지방산, 항산화제, 미네랄과 비타민 보충제도 함께 먹도록 했다. 중금속 오염도를 체크한 후 디톡스 요법도 실시했다. 기존의 행동치료와 감각통합치료는 쉬지 않고 계속하도록 했다.
칼렙의 몸은 서서히 달라졌다. 설사가 멈추고 소화기능이 정상이 되었다. 중이염도 앓지 않게 됐다. 달고 살던 항생제도 먹지 않게 되었다. 몸이 정상이 되면서 행동치료가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칼렙은 달라졌다. 3년이 흐른 후, 칼렙은 정상아에 가까운 수준으로 회복됐다. 엄마와 눈을 마주치고 엄마를 위로할 줄도 알게 되었다. 칼렙은 어느 날 엄마에게 “예전엔 너무 못되게 굴어서 미안해요”라고 말했다. 의학적으로 칼렙은 이제 자폐아가 아니다. “제 아들이 돌아왔어요.” 칼렙의 어머니는 허버트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런 극적인 성공이 흔한 것은 아니다. 칼렙과 같이 극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사례는 흔치 않다고 허버트는 말한다. 하지만 마음보다 몸의 기력을 먼저 회복시키는 허버트의 그물망식 자폐 치료법은 상당한 효과가 있어 보인다. 허버트는 자폐가 뇌만의 질환이 아니라 뇌에 영향을 주는 몸의 질환 또는 그 둘 모두라고 보고 있다. 의학계가 자폐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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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Martha Herbert, “The Autism Revolution” Random House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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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자폐, 마음의 병인가 몸의 질환인가? – 청결의 역습, 유진규,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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