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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을 산책하고 나면 누구나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낀다. 영국의 학자들은 이 주제를 가지고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이들은 자연을 진짜와 가짜로 나누어 체험한 후 집중력이 향상되는지 검사했다. 가짜 자연은 고해상도 모니터로 숲 속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실물 자연은 잘 정돈된 공원과 자연림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고해상도 모니터와 공원은 효과가 없었고 자연림만이 유의미한 집중력 향상 효과가 있었다. 포유동물인 인간은 숲 속에서 진화했다. 숲은 오감으로 느껴온 기본 환경이었으며 그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존재한다.
런던 로열마스덴 병원 종양학자 메리 오브라이언(Mary O’Brien)은 폐암 환자들에게 토양 세균인 미코박테리움 바카이를 접종하면 암이 호전되는지 알아보려다가 의외의 효과를 발견했다. 이 세균 주사를 맞은 폐암 환자들이 전반적인 정신건강과 활력, 인지능력이 향상된 것이다. 실험에 사용한 미코박테리움 바카이는 아프리카 토양에서 분리한 스탠포드 박사에게서 건네받은 것이었다.
브리슬 대학의 크리스 로우리 박사는 오브라이언의 발견을 더 탐색해 보기로 했다. 그는 세균에 대한 인체의 면역반응이 뇌로 하여금 세로토닌을 분비하게 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세로토닌 부족은 우울증의 원인이 된다. 그는 생쥐에 미코박테리움 바카이를 주사한 후 심리적 · 행동적 변화를 관찰했다. 미코박테리움 바카이 주사를 맞은 생쥐에서 세로토닌 분비에 따른 연쇄반응이 나타났다. 세로토닌이 정말로 분비됐는지 검증하기 위해 로우리는 이 생쥐를 작은 수영장에 넣었다. 쥐는 물속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결과는 브라보였다. 미코박테리움 바카이 생쥐들은 수영 후에도 별다른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뉴욕 주 세이지 컬리지의 도로시 매튜(Dorothy Matthews)와 수전 젠크스(Susan M. Jenks)는 이 발견을 다시 실험했다. 이번에는 미코박테리움 바카이를 주사하는 대신 샌드위치에 발라서 쥐들에게 먹였다. 그러고는 쥐들에게 미로를 탈출하게 했다. 박테리아를 먹지 않는 쥐에 비해서 박테리아를 먹은 쥐들이 미로를 2배나 빨리 빠져나왔으며 불안 행동은 절반 정도밖에 보이지 않았다. 세로토닌은 학습에도 어떤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세로토닌이 쥐들로 하여금 덜 불안하게 했을 뿐 아니라 집중력이 더 높아지도록 촉진한 것으로 보인다. 미코박테리움 바카이를 먹은 쥐들은 먹이에서 박테리아를 제거한 뒤로도 3주 정도 대조군에 비해 우위를 유지했다. 박테리아가 생쥐의 소화 시스템에서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쥐들의 능력은 감소하기 시작했고 3주 후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많은 정신과 병원에서 원예치료를 보조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미코박테리움 바카이 실험은 원예치료에 실제로 생물학적 효과가 있음을 입증했다. 미코박테리움 바카이는 세로토닌의 분비를 촉발한다. 세로토닌은 기분을 좋게 하고 불안을 줄이며 인지기능을 향상시킨다. 흙과 접촉하는 활동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미코박테리움 바카이를 일종의 우울증 백신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그 가능성에 흥분하고 있다. 다만 우리는 미코박테리움 바카이가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메커니즘이 정확히 무엇인지, 얼마나 많은 양이 필요한지 아직 모른다. 연구는 현재 진행 중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분명히 확인됐다. 세균이 일상적인 접촉에 의해 우리의 정신건강에 잠재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도로시 매튜는 미생물과 접촉을 다시 강조한다.
“정원사들은 흙을 파면서 이들 세균을 들이마십니다. 또 그들이 먹는 채소, 피부 상처를 통해 미코박테리움 바카이를 접촉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우리는 ‘야외활동으로 이들 미생물과 접촉하는 것이 매우 좋은 일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미코박테리움 바카이가 존재하는 야외 환경에서 하는 수업이 불안 해소와 학습능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실험으로 우리는 몸이 정신과 소통하는 방식을 한 단계 더 이해하게 되었다. “건강한 면역체계는 건강한 정신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흙속에서 더 많이 놀아야 하지 않을까요?” 브리슬 대학의 크리스 로우리의 말이다.
굵고 차가운 빗방울이 아이들 머리 위로 흩어져 내렸다. 아이들은 같은 색으로 통일된 비옷과 장화, 벙어리장갑과 모자를 찾아 입고 쓰느라 정신이 없다. 우천 시 유니폼으로 중무장한 아이들은 다시 흩어져 기어오르기용 사과나무, 아늑한 덤불 속, 비를 맞아 질척해진 모래밭을 향해 뛰어갔다. 11월의 아침, 미국 뉴욕 주 ‘워도프 숲 유치원’ 의 풍경이다.
독일에서 시작된 숲 유치원은 점차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학교들도 아이들에게 자연을 다시 돌려주겠다는 희망에서 야외 수업을 늘리고 있다. 워도프 숲 유치원은 이런 흐름의 첨단에 서 있다. 독일의 통계에 따르면 초등학교에 진학한 독일 숲 유치원 아이들은 읽기, 쓰기, 수학, 교우관계 등에서 일반 유치원을 나온 아동에 비해 월등한 성적을 보였다. 숲 유치원을 나온 아이들이 우수한 성적을 내는 이유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다. 숲 유치원에는 의미와 목적이 정의된 장난감 제품들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이 놀잇감이 된 자연물에 공통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언어 기능이 발달한다는 주장이 있다. 유아기의 활발한 신체활동이 지능 발달을 촉진한다는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여기에 한 가지 이유가 더 추가됐다. 숲 유치원 아이들은 면역력이 높고 증강된 면역력이 지능과 정서 발달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숲 유치원 아이들의 면역력에 영향을 준 요인에는 면역력의 오랜 친구인 세균도 포함돼야 한다.
워도프 숲 유치원이 위치한 뉴욕 주 사라토가 스프링스의 겨울은 낮에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눈발이 날리는 궂은 날씨가 많다. 그럼에도 세 살 반에서 여섯 살까지의 아이 23명은 날씨와 관계없이 하루 3시간을 의무적으로 야외에서 보낸다.
“매일 밖에 나가 노는 건 참 좋은 거 같아요.”
세 살난 아들을 이곳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 킴 라이틀이 말했다. 용감하게 세상을 탐험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좋을 것이다. 아이들의 ‘교실’은 헴록트레일 주립공원이다. 점심 때까지는 야외수업, 이후에는 실내수업도 받는다. 간식시간엔 피크닉 테이블에서 사과와 파인애플을 먹는다. 서클 타임이라고 해서 둥그렇게 모여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른다. 아이들은 덩굴을 잘라 화환을 만들기도 하고 진흙탕물을 튀기고, 모래사장에서 소꿉놀이도 한다.
워도프 학원은 숲 유치원을 하나 더 만들 계획이다. 숲에서 자란 아이들이 학업성적이 우수한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아왔기 때문이다. “대근육이 잘 발달합니다. 또 사회적 문제 해결 능력도 좋아집니다. 그리고 상상 놀이를 더 잘합니다.”라고 여교사 달레오가 말했다.
오전 10시, 아이들이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대지와 나뭇잎 냄새가 아이들을 맞는다. 아치 모양의 나무 아래로 난 길은 동화 속 원더랜드로 들어가는 문 같다. 숲 한가운데 아이들이 나무 덩굴로 만든 인디언 천막이 있다. 쓰러진 나무 등걸은 시소가 되었다. 작은 구덩이는 괴물 소굴이다. 사내아이들이 구덩이 속에 들어 앉아 소리친다. “이리 오지 마. 먹어버릴 테다.” 다섯 살난 여자아이 파이퍼가 나무 위에 올라타서 소리친다. “난 롤러코스터 탄다. 같이 타자.” 계속 내리던 비는 소나기가 되어 쏟아 부었다. 아이들이 좋아한다. “다 젖었어.” “머리카락이 물이 됐다.” 파이퍼는 웃기 시작하더니 혓바닥을 내밀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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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C.A. Lowry et al. “Identification of an immune-responsive mesolimbocortical serotonergic system: potential role in regulation of emotional behavior” Journal of Neuroscience (2007)
- ・ Susan M. Jenks and Dorothy Matthews, “Ingestion of Mycobacterium vaccae influences learning and anxiety in mice” Presented at the Annual Animal Behavior Society Meeting, William and Mary College, Williamsburg, VA July 25~30 (2010)
- ・ Michelle Carr, “How gardening could cure depression” Cosmos (2007. 3)
- ・ Liz Leyden, “For Forest Kindergartners, Class Is Back to Nature, Rain or Shine”New York Times. (2009.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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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숲 속 세균으로 몸과 마음을 정화하다 – 청결의 역습, 유진규,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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