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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청결의 역습

항생제도 듣지 않는 설사병을 앓는 여자

스물여덟 살 디나 비클레어는 막 수술실로 들어갈 참이었다. 그녀는 지난 5개월간 단 한 번도 고형변을 보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구역질까지 났다. 두 달이나 결근하다가 결국 병원에 입원했다. 5개월이나 계속된 설사로 탈진한 나머지 바로 앞에 있는 화장실까지 걸어갈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녀가 앓고 있는 병은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균 감염으로 인한 지독한 설사병이었다. 모든 종류의 항생제를 사용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백약이 무효였다. 결국 디나는 이 병과의 싸움을 끝낼 특별한 치료법을 선택했다.

“지금으로서는 먹으라고 해도 그렇게 할 거예요. 솔직한 심정이에요. 게다가 제가 듣기론 10mL뿐이라고 하던데요. 1L가 아닌 게 다행인 거죠.”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 침대에 누운 채 디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녀가 받게 될 수술은 건강한 사람의 변 10mL를 직장을 통해 직접 이식받는 것이었다. 디나는 처음 이 수술법을 듣고는 두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이 치료법의 성공률이 90%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의사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담당 의사인 코러츠 박사가 아이스박스를 가지고 왔다. 그 박스 안에서 나온 것은 디나에게 이식할 건강한 대변이었다. 코러츠는 살짝 언 대변에 식염수를 약간 첨가했다. 이것을 디나의 대장 속으로 집어넣겠다는 것이었다. 디나가 받게 되는 것은 온전한 장내 미생물 생태계 전체, 종류와 그 수조차 알 수 없는 한 사람의 대장 미생물 종합세트였다. 기증받은 변은 이식하기 전 감염을 일으키는 나쁜 세균이 있는지 검사하는 것 이외에 다른 처치는 하지 않았다. 그 외에는 모두 그대로 두어야 한다. 과학자들도 아직 대변에 포함된 세균들을 모두 구분하지는 못한다. “이 안의 세균들은 인체의 정상적인 일부입니다. 그저 전체를 다 가져다 쓰는 거죠.” 코러츠가 이식할 대변이 든 플라스크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런 수술이 고안된 이유는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균(Clostridium difficile)이라는 세균의 특성 때문이다. 이 세균은 원래 우리 몸에서 조용히 살던 정상세균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나쁜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독성을 뿜기 시작했다. 이 녀석을 처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항생제로 장속을 융단 폭격해야 하지만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포자 상태로 잠복하는 능력이 있어서 항생제가 잘 듣지 않기 때문이다. 강한 항생제로 치료하다보면 오히려 무해한 장내세균들을 죽인다. 그러다 항생제 투여를 멈추면 이때다 싶어 깨어나 번식하기 시작한다. 항생제로 황폐해진 장에 독소를 내뿜으며 잡초처럼 번식하는 것이다.

디나의 대장 생태계는 정상세균이 쫓겨나고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균이 지배하는 심각한 디스바이오시스 상태였다. 이대로 방치하면 사망에 이르거나 결장을 잘라내야 할지도 몰랐다. 디나뿐만 아니라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균 감염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균 감염 대장염은 미국에서만 매년 250만 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3만여 명이 사망하는데 이는 에이즈 사망자보다 많은 수치다. 위험군은 면역력이 약한 노인들과 장기적으로 항생제를 처방받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놈의 독성이 점점 더 지독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코러츠는 유해균의 독성에 대해 경고했다.

“그게 바로 문제입니다. 지난 몇십 년 동안 훨씬 강한 독성을 띠기 시작했고, 포자 활동이 더 활발해져 더 많은 포자를 남기고, 독소도 더 많이 만들어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을 더 병들게 하지요.”

대변 이식 시술은 독성이 강한 디피실리균을 물리치기 위해 디나의 황폐해진 장 속에 좋은 세균들을 아주 많이 심어주는 일종의 인해전술이다. 시술은 튜브를 결장에 꽂아 주사기로 주입하는 것으로 간단히 끝난다. 이렇게 정상인의 대변을 환자의 장에 넣으면 유익한 세균이 증식하여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균의 수를 신속하게 줄여준다. 좋은 세균과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균이 균형을 이루자마자 증상은 곧바로 사라진다. 그 효과는 기적에 가깝다고 경험자들은 입을 모은다. 2012년까지 코러츠의 대변 이식 시술 사례는 100건이 넘고 1차 시술의 성공률은 92%, 2차 시술까지 포함한 성공률 100%이다. 시술을 받은 다음 날, 디나의 설사는 기적처럼 멈췄다.

코러츠가 실시하는 대변 이식 시술은 현재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미생물 생태계 치료법’의 한 종류로써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 치료뿐만 아니라 다양한 질환의 치료 방법으로도 검토되고 있다.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균(Clostridium difficile)

ⓒ Dr. Holdeman/wikipedia |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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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규 집필자 소개

1965년 출생. 서울대 영어교육과 졸업. SBS 다큐멘터리 PD로 활동 중이다. 2007년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환경호르몬의 습격>으로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했고, 이후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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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결의 역습 | 저자유진규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좋은 세균이 만들어내는 기적과 좋은 세균이 사라지면서 생겨나는 재앙에 관한 놀랍고도 충격적인 메시지! 세균을 질병의 원인이라고 여기는 현대인은, 매일 수많은 항균제품을..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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