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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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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 관람은 마치 과거 신라인들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하다. 박물관 지붕은 봉분이요, 전시관은 숱한 유물이 묻힌 옛 무덤 속 같다. '지붕 없는 박물관' 그 자체인 경주역사유적지구 안에 정갈한 지붕을 올려 신라 1000년의 역사를 집약해두었다. 전시의 밀도와 유물의 가치로 '한국 박물관'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신라 1000년 역사 여행의 출발점, 국립경주박물관
아이와 함께 경주를 여행한다면 국립경주박물관을 여행의 시작 지점으로 삼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경주역사유적지구 안에는 신라의 궁궐터인 월성과 안압지, 신라의 왕릉이 밀집된 대릉원, 신라의 대가람(큰 절)이었던 황룡사지, 한국 불교미술의 보고인 남산 등 반경 4km 이내에 볼거리가 차고 넘친다. 그중 제일 먼저 국립경주박물관을 찾는 이유는 신라 1000년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이해해야만 각 유적지의 퍼즐을 제대로 맞춰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10만여 점의 소장품 가운데 제일 먼저 관람객을 반기는 것은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이다. 매시 정각 박물관에 울려 퍼지는 신종의 아름다운 종소리는 아쉽게도 녹음된 것이다. 성덕대왕신종은 신라 제35대 왕인 경덕왕이 돌아가신 아버지 성덕대왕을 기리고자 구리 12만 근을 들여 만들다가 실패한 후, 아들인 혜공왕 7년(771년)에 비로소 완성한 한국 최대의 종이다. 성덕대왕신종 앞에 서면 이 소중한 유물이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을 지나 여전히 우리 앞에 서 있다는 데 감사하게 된다.
종의 꼭대기를 보면 우리나라 종에서만 볼 수 있는 용 모양으로 된 고리인 용뉴와 대나무 모양의 음통이 있다. 몸체에서는 보상당초무늬, 연꽃, 무릎을 꿇은 채 날아 내려오는 네 명의 공양천인상 등을 볼 수 있다. 공양천인상 사이에는 맨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이 종이 성덕대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제작됐음을 알리는 1037자의 글이 대칭으로 새겨져 있다. 30여 년이나 걸려 만든 이 종은 무게가 무려 18톤 900kg에 달한다. 당시 신라의 주조술이 매우 높은 수준이었음을 짐작게 한다. 성덕대왕신종은 맑은 소리를 내기 위해 아기를 넣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만큼 이 종을 제작하기 위한 국가적, 국민적 염원이 강했음을 시사하는 에피소드로 이해하면 되겠다.
교과서에서 뛰쳐나온 낯익은 유물들
발길을 돌려 중앙에 위치한 상설전시관인 '신라역사관'으로 향하면, 네 개의 전시실과 자연스럽게 동선이 연결된다. '고고관'은 까마득한 선사시대의 돌도끼부터 고대왕국 신라의 금관까지 만날 수 있는 전시관이다. 다음으로 신라의 탄생 과정과 번영의 역사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전시되어 있다.
제1 전시실에는 경주와 그 주변 일대에서 출토된 선사시대부터 신라 건국까지의 문화재가 시대별, 주제별로 전시되어 있다. 제2 전시실에는 삼국시대 신라의 독특한 무덤 양식인 돌무지 덧널무덤에서 발굴된 많은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다. 지배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화려한 금관과 다양한 금제품은 신라의 미적 감각과 뛰어난 금 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최고의 문화재다. 또 무덤 내부를 복원해 전시하고 있어 부장품의 내용과 무덤의 규모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제3 전시실은 신라의 발전과 삼국통일전쟁, 그리고 통일신라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먼저 신라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생산력의 비약적인 증대를 보여주는 증거로 황남대총남분의 부곽을 실제 크기로 재현했고, 출토된 유물도 묻힐 때 모습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 재미있는 것은 한 사자상이다. 어디에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앞다리를 뻗어 위를 붙잡고 서 있는 모습이 건물의 모서리 기둥에 붙어 있을 법하다. 살짝 돌린 고개와 눈, 코, 입, 갈기의 표현법이 해학적이다. 사자상 정면에서 두 눈을 찾아보자. 고개를 옆으로 90도 돌려보면 동그란 두 눈을 마주 볼 수 있을 것이다.
'신라역사관'에서는 신라 금관을 빼놓을 수 없다. 현재까지 신라의 금관은 금관총, 서봉총, 황남대총북분, 천마총, 금령총에서 총 다섯 개가 발굴되었다. 이 중 국보 제188호 천마총금관은 신라 금관의 화려함을 잘 표현한 걸작 중 하나다. 나뭇가지 모양의 장식과 두 개의 사슴뿔 모양 장식을 세운 뒤, 곱은 옥과 달개(얇은 쇠붙이)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몄다. 금관과 함께 지배자를 상징하는 위세품의 하나인 국보 제189호 금제 관모도 눈에 띈다. 금제 관모는 모자 모양이지만 머리에 직접 착용하기에는 작다. 아마도 모자의 윗부분을 장식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신비로운 신라 불교미술의 걸작들
계단을 내려와 마주한 '특별전시관'을 거쳐 '신라미술관'으로 이동하면 다양한 석상과 불상 등을 만나볼 수 있는데, 입구 벽면에 성덕대왕신종의 거대 탁본도 걸려 있다. '불교미술Ⅰ실'은 신라 불교사의 흐름에 따라 각 시기의 대표적인 불교미술품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신라의 미소로 잘 알려진 얼굴무늬수막새, 황룡사 구층목탑 출토 찰주본기, 감은사 석탑 출토 사리기 등이 대표적인 전시품이다. '불교미술Ⅱ실'에서는 신라의 소형 금동불상과 대형 석조불상을 유형별, 시대별로 구분하여 전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전시품은 남산 장창골(삼화령) 출토 미륵삼존불, 백률사 금동약사불입상(국보 제28호) 등이다. 2층 '금석문실'은 신라 1000년의 역사를 밝혀줄 수 있는 임신서기석(보물 제1411호), 남산신성비, 문무왕비, 이차돈 순교비 등의 문자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황룡사실'은 신라의 대표적인 호국사찰이었던 황룡사 터에서 출토된 대형 망새(치미 : 대형 장식 기와)를 비롯한 기와, 사리갖춤, 지진구, 불상 등의 여러 문화재와 구층목탑 등 황룡사 모형 자료가 신라의 불교, 미술, 건축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다. 황룡사 구층목탑은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으로 불에 타 소실된 후, 아쉽게도 아직 복원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형 망새를 통해 황룡사 구층목탑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훼손되기 전 다보탑의 원형을 만나다
드넓은 야외 전시장에도 진귀한 유물이 가득하다. 박물관 뜰 곳곳에는 범종, 석탑, 석불, 석등, 비석받침, 전각 기단 부재 등의 석조품 11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이들은 대부분 경주와 그 주변 지역의 옛 절터나 궁궐터, 성터 등에서 옮겨 온 것들이다.
국보 제38호 고선사 터 삼층석탑과 복제된 다보탑의 사자상도 꼼꼼히 살펴보자. 불국사 안에 있는 진품 다보탑에는 한 마리의 사자상이 기단 서쪽 중앙에 앉아 있지만, 복제품에는 네 마리의 사자상이 귀퉁이에 앉아 있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때까지만 해도 다보탑에는 사자상이 네 마리였다고 한다.
'월지관'은 경주 안압지에서 발견된 3만여 점의 통일신라시대 문화재 중에서 엄선한 약 300여 점의 문화재를 주제별로 전시하고 있다. 문무왕 14년(674년) 궁궐 안에 완공된 안압지에서는 신라의 건축문화를 보여주는 다양한 종류의 기와, 불교 조각품 등이 발굴되었다. 특히 금속 접시, 완(사발), 숟가락과 여러 가지 형태의 토기 등은 당시 궁궐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국립경주박물관의 자랑 50년 전통의 어린이박물관학교
국립경주박물관에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유물을 설명하는 어린이박물관도 함께 있다. 문화재 블록 조립하기, 토기 조각 맞추기 등의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유물과 보다 가까이에서 호흡할 수 있다. 또 신라의 향가 〈서동요〉, 〈찬기파랑가〉 등을 들어볼 수 있다. 기와나 여러 문화재에 표현된 여러 가지 무늬를 어린이 스스로 순서에 맞추어 직접 탁본해보는 체험도 있다. 성덕대왕신종에 새겨진 여러 가지 무늬를 어린이들이 직접 문질러보는 재미있는 프로타주도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50여 년 전통의 어린이박물관학교로도 유명하다. 어린이를 비롯해 청소년, 성인, 가족, 외국인 등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전시품과 연계한 강의, 실습, 답사 등의 교육 프로그램이 열리고 있다.
신라인의 풍류를 엿볼 수 있는 포석정
우리나라의 국보 제1호는 숭례문, 보물 제1호는 흥인지문(동대문), 사적 제1호가 바로 경주의 포석정이다. 포석정은 통일신라시대의 정원시설물로 신라시대의 별궁이 있었던 곳이다. 돌로 구불구불한 도랑을 만들고 그 도랑을 따라 물이 흐르게 했다. 신라 귀족들은 포석정에 둘러앉아 흐르는 물에 잔을 띄우고 시를 읊으며 화려한 연회를 벌였다. 927년 11월 신라 경애왕이 이곳에서 화려한 연회를 벌이던 중, 후백제군의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 포석정은 박물관 가까이에 있으니 놓치지 말고 살펴보자.
생각 발산하기
같은 무덤인데 왜 어떤 무덤은 '능', 어떤 무덤은 '총'이라고 부르나요?
왕족의 무덤은 무덤 주인의 신분에 따라 능, 원, 묘, 총 등으로 분류해.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고, '원'은 왕세자와 왕세자비의 무덤이야. 왕족인 왕자, 공주, 대군 등의 무덤은 '묘'라고 하지. '총'은 옛 무덤 중에서 규모가 크지만 주인을 알 수 없는 경우에 붙이는데, 출토된 대표 유물의 이름을 따서 정해. 그래서 〈천마도장니〉라는 고분벽화가 발견된 무덤을 '천마총'이라고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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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 본 콘텐츠는 2014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최신 관람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 등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