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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클리드의 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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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이전의 그리스 수학책들은 현재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그 당시의 연구 결과가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수학자라고 할 만한 알렉산드리아의 유클리드는 기원전 300년경 고대 기하학의 연구들을 모아서 자신의 책 《원론(Elements)》에 정리하고 발전시켰다. 이 당시에 그리스인들은 많은 표준 곡선(타원, 포물선, 쌍곡선), 실진법에 있어서 선구적인 적분법, 원뿔과 구의 부피를 구하는 방법 등을 발견했다. 비록 플라톤 자신은 수학자가 아니었지만, 아테네에 있는 그의 아카데미는 수학의 중심지였고 순수 수학과 숫자의 실용적인 응용을 명확하게 구분 짓는 역할을 했다.

유클리드의 《원론》은 고대 그리스의 수학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리스인들이 발달시킨 논법도 보여준다. 유클리드는 다섯 개의 공준과 다섯 개의 공리를 세우고 여기에서 수백 개의 정리와 증명을 이끌어냈다. 이는 수세기 동안 지속되었던 논리적인 추론의 좋은 예가 되었다.

유클리드의 책은 평면 기하학(평면 2차원의 도형을 다루는 기하학)을 다룬 것으로 유명했지만, 정수론, 대수학과 입체 기하학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기본 수학을 위한 교과서로 쓰였고, (대상 독자의 수준보다 낮은) 단순한 사칙연산도, 곡선 도형과 원뿔 등의 필요 이상으로 복잡한 기하학도 다루지 않았다. 원뿔은 이후에 아폴로니오스가 연구했다.

유클리드가 확립한 다섯 개의 기본 공리는 다음과 같다.

1. 임의의 두 점을 연결하면 하나의 직선이 된다.
2. 유한한 직선은 계속해서 연장될 수 있다.
3. 중심과 반지름이 있으면 원을 그릴 수 있다.
4. 모든 직각은 서로 같다.
5. 평면상의 두 직선이 (횡단선이라고 불리는) 하나의 직선과 만나고, 두 선과 횡단선 사이의 내각의 합이 2직각(180도)보다 작은 경우, 두 직선을 계속 연장하면 횡단선 쪽에서 교차한다.

여기서 다섯 번째 공리는 ‘평행선의 공리’라고 부른다. 평행선의 공리는 앞의 네 공리만큼 명확하거나 완전하진 않다. 플라톤은 공리는 간단하고 명확하고 증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분명한 사실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의 네 가지 공리는 플라톤의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지만 다섯 번째는 그렇지 않다. 다섯 번째 공리는 유클리드 생전에는 분명한 공리였을지 모르지만 19세기가 되어서야 증명되었다.

이뿐 아니라 유클리드는 기하학과는 연관성이 조금 떨어지는 다섯 개의 공리도 언급했다.

1. 동일한 것과 같은 것들은 서로 같다. (a=b, a=c → a=c)
2. 같은 것에 같은 것을 더하면 그 전체는 같다. (a=a′, b=b′ → a+b=a′+b′)
3. 같은 것에서 같은 것을 빼면 남은 것은 같다. (a=a′, b=b′ → a-b=a′-b′)
4. 서로 포갤 수 있는 것은 같다.
5. 전체는 부분보다 크다.

고대 마을의 쓰레기 더미에서 찾아낸 옥시린쿠스 파피루스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완벽한 형태의 유클리드 《원론》의 그림이 발견되었다.

ⓒ 돋을새김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유클리드는 헬레니즘 시대 말 무렵 알렉산더 대왕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사망했던 당시에 이 책을 쓰고 있었다. 알렉산더 제국이 무너지고 아테네가 지식의 장으로서 힘을 잃었을 때 지식인들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모여들었다(유클리드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의 수도였고, 이후 클레오파트라의 군대가 기원전 31년 악티움 전투에서 패배했을 때 로마의 통치하에 있었다.

유클리드의 연구 결과로 혜택을 본 것은 로마인이었다. 하지만 로마의 학자들은 수학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고 학문이라기보다는 실용성 때문에 배우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건축가들은 기하학이나 계산, 내력(耐力)에 대해 알아야 했고, 상인은 사칙 연산을 알아야 했지만 사람들은 수학 그 자체를 위한 지식을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서기 70~80년에 지어진 타원형 경기장인 로마의 콜로세움은 로마 건축과 설계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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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이 멸망할 무렵에 오도아케르의 통치하에 있던 독일 부족들이 현대 이탈리아의 대부분을 장악하게 된다. 이로써 유럽에서 수학 활동은 오랫동안 사라진다. 대신 인도에서, 그 다음 중동에서 기하학과 같은 다른 분야에 대한 수학적 노력이 나타났다.

알렉산드리아의 유클리드
‘기하학의 아버지’ 유클리드(325~265BC년 경)는 프톨레마이오스가 통치하던 시절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던 그리스 수학자이다. 유클리드가 쓴 《원론》은 수학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교과서였고 2000년 동안 사용되었다. 유클리드는 또한 원근법, 원뿔 곡선, 구면 기하학에 대해서도 썼다.

유클리드가 파피루스에 자신의 연구 결과를 썼을 수도 있지만, 파피루스는 쉽게 부패하기 때문에 종이에 쓰여진 연구 결과만이 우리에게 전해진다. 유클리드 《원론》의 가장 오래된 버전은 888년에 작성된 비잔틴 필사본이지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정확히 유클리드가 쓴 것인지 아니면 이후에 학자들이 수정하거나 개선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알렉산드리아의 히파티아
히파티아(370~415년 경)는 알렉산드리아의 주목할 만한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테온의 딸이었다. 히파티아는 신플라톤주의자였고 신플라톤주의와 수학을 강의했다. 그녀는 알려진 이들 가운데서 가장 초기의 중요한 여성 수학자이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수학적 연구 성과는 현재 전해지지 않지만, 다른 수학자의 연구에 대해 그녀가 해설한 내용은 주석 형태로 보전되어 우리에게 전해졌다.

이교도 학문을 말살하려는 알렉산드리아 대주교의 선동으로, 히파티아는 415년 기독교인들에 의해 마녀사냥에 몰려 처형되었다.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도서관도 같은 시기에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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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루니 집필자 소개

1967년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대학에서 중세 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케임브리지 대학과 뉴욕 대학에서 중세 영어와 프랑스 문학을 가르쳤으며, 지금은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과학과..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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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오디세이
수학 오디세이 | 저자앤 루니 | cp명돋을새김 도서 소개

피타고라스에서 괴델까지 이야기로 만나는 매혹적인 수학의 역사. 고대부터 현대까지 중요한 수학적 발견과 증명을 흥미롭게 설명한다. 마술 같은 숫자의 신비와 놀라운 수학자..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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