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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수학 오디세

수학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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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의 수학자들은 상세하고 실용적인 상황만을 다루었다. 최초로 완전히 추상적인 수학 문제에 관심을 가진 문명은 이후에 나타난 고대 그리스였다. 기원전 2000년경에 북쪽에서 내려와 그리스 반도에 들어온 고대 그리스의 선조들은 만만치 않은 세력이었다.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들어와 무역을 하고 원래 거주하던 사람들에게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운문으로 된 수학
수학 문제를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인도의 문서는 〈술바수트라스(Sulba sutras)〉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이 글에는 제물을 바칠 제단을 만들고 위치를 정하는 것과 관련된 수학 문제와 해답이 나와 있다.

수트라(격언집)의 주제는 아주 다양하다. 격언은 운문으로 쓰여졌고 산문의 주석과 해설이 덧붙여졌다. 수트라는 원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운문의 형태가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술바수트라스〉는 가장 오래된 인도의 기하학 문서 중 하나이며, 가장 초기의 것은 아마도 기원전 800년경에 쓰여졌을 것이다.

기원전 6세기 이전까지는 그리스 수학에 대한 얘기가 전혀 없다가 탈레스가 처음 나타나고 그 이후에 갑자기 피타고라스가 등장했다. 밀레투스의 탈레스는 기원전 575년경에 바빌로니아의 수학을 그리스에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정리(定理)를 만든 후에 그것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최초의 수학자’라고 불린다. 하지만 그가 그것을 실제로 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탈레스에 대한 것들은 그에 대한 소문을 요약한 것이다.

밀레투스의 탈레스
탈레스(624~546BC년 경)는 고대 그리스의 일곱 현인 중 한 명이다. 그는 젊은 시절 이집트에서 공부하다가 이집트 수학과 천문학을 접했을 것이다. 탈레스가 연구 결과를 기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까지 남아 있는 기록은 아무것도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탈레스는 기후의 패턴을 관찰해서 풍년을 예측할 수 있었고, 수학으로 어떻게 부유해질 수 있는지 증명하기 위해 밀레투스의 모든 올리브 압착기를 사들였다고 한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탈레스가 그림자를 측정해서 피라미드의 높이를 계산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해안가에서 배까지의 거리를 알아내기 위해 기하학 지식을 사용했다고 전해지며, 수학적 재능을 군사적 용도로도 사용했다. 탈레스는 일식을 예측해 전쟁을 평화적으로 끝내게 했으며, 그 후에도 강 상류에 우회로를 파서 강의 물살을 줄이면 강을 걸어서 건널 수 있다고 왕에게 말해 크로이소스 왕의 군대가 강을 지나게 도왔다고 한다.

탈레스는 거대한 원반 모양의 지구가 물 위에 떠 있는 우주 모형도 만들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탈레스는 체조 경기를 관람하던 중에 탈수로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테트락티스
그리스인에게 10은 가장 완벽한 숫자였다. 그들은 10을 테트락티스(tetractys)라고 불렀다. 10은 삼각수이며, 1부터 4를 더한 수이고, 10 이전에는 소수와 소수가 아닌 수가 같은 비율로 나타난다. 필롤라오스의 말에 따르면 ‘위대하고, 전능하고, 만물을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지구 생명체에게는 신의 지침서’라는 이유로 그리스인들은 10을 숭배했다.

탈레스의 정리는 반원에 내접하는 원이 직각이라는 것이며, 이것은 이미 1000년 전에 바빌로니아 사람들도 알고 있던 것이다. 탈레스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이 정리를 알게 됐을지도 모른다. 탈레스가 자신의 정리를 증명한 것은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탈레스가 죽은 지 100년 정도 지난 후에 프로클로스는 몇 개의 기본 기하학 정리가 탈레스 덕분에 만들어졌다고 했다.

• 원은 지름으로 이등분된다.
• 이등변 삼각형의 밑각은 서로 같다.
• 직선 두 개가 교차할 때 생기는 대각은 서로 같다.
• 두 각과 한 변이 같은 두 개의 삼각형은 합동이다.

탈레스가 최초의 수학자라고 불릴지 모르지만, ‘수학의 아버지’란 타이틀은 50년 후에 나타난 피타고라스에게 주어졌다. 그는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그리스 수학자일 것이다. 직각 삼각형에서 빗변 위의 정사각형의 넓이는 다른 두 변 위의 정사각형의 넓이의 합과 같다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피타고라스의 정리: a2 = b2 + c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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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정리는 실제로는 피타고라스가 아니라 피타고라스 학파 중 한 명이 나중에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다. 탈레스와 마찬가지로 피타고라스가 쓴 것은 현재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의 연구와 명성에 관한 이후의 보고서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이 정리가 이집트나 인도의 고대 수학자들이 만들어낸 획기적인 발견에 근거했을 가능성도 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비밀 집단이었고 지식을 서로 공유했기 때문에 개인적인 업적을 가려낼 수 없다. 그들은 숫자와 수열의 특성과 패턴을 찾는 데서 즐거움을 찾았고 수가 모든 만물의 중심에 있다고 믿었다. 이 단체는 몇 년 동안 지속되다가 피타고라스가 죽은 후 사라졌다.

구장산술
중국의 가장 오래된 수학책인 《구장산술(九章算術)》은 기원전 1세기에 처음 쓰여졌다. 수세기 동안 이 책에 대한 많은 주석들이 나왔지만 그중 최고의 주석은 263년 유휘(劉徽)가 쓴 것이다. 이 책에서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증명하고, 강어귀의 폭을 계산하는 법, 탑의 높이, 골짜기의 깊이를 재는 방법 등을 설명해준다. 또한 부등변사각형, 원통, 피라미드, 구의 넓이와 부피를 구하는 방법도 다루고 있다.

피타고라스
피타고라스(580~500BC년 경)는 이오니아(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다. 그는 기원전 532년경 모국 사모스의 독재자를 피해 중동을 거쳐서 남부 이탈리아로 갔다.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이름을 딴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부처, 노자, 공자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그는 크로톤에 있는 자신의 아카데미에 피타고라스 학파를 만들었다. 종교적, 정치적 집단이었던 피타고라스 학파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에게 영향을 미쳤고 서양 철학이 발달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피타고라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모든 것들이 수학과 연관되어 있고, 모든 것들은 패턴이나 주기가 있어 예측하고 측정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들은 사람이 죽은 후에 영혼이 이동하기 때문에 이전에 인간이었던 영혼이 동물에 깃들어 있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이유로 피타고라스 학파 사람들은 채식주의자였다. 또한 좀 이상하긴 하지만, 콩을 특별하다고 생각해서 먹지 않았다. 피타고라스는 성난 군중들이 자신을 쫓고 있는데도 콩밭을 밟고 지나갈 수 없다며 버티다가 결국 살해되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황금기

페르시아와 펠로폰네소스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던 기원전 5세기경 아테네에서는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고 할 만한 지성을 꽃피웠다. 하지만 당시의 수학책들은 보존되지 않아 현재는 그 시대의 위대한 수학자들이 풀었던 수학 문제의 기록이 단편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 시대에는 수학이 그 자체의 가치를 인정받았고, 지식 그 자체의 즐거움을 추구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인들은 이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수학을 이해함으로써 알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 덕분에 우리는 우주가 알 수 없는 신에 의해 통치되기보다는 이성적인 법칙이 지배하는 조화로운 세계라는 것, 지구가 둥글며 우주 안에서 움직인다는 것, 그리고 수학적 증명 등의 개념들을 알 수 있었다. 그리스 수학자들은 일상에서 사용하는 실용적인 기본 연산과 고차원의 수학 · 논리학을 연구하는 것에 구분을 두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그리스인들의 문화유산에서 혜택을 받은 이들의 기록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도 전해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구가 구형이고 우주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수학이 우주를 이해하는 열쇠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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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질 수 있는 모든 것들에는 숫자가 있다. 숫자가 없다면 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고 알릴 수도 없다.
– 필롤라오스, 기원전 4세기
신은 기술이 뛰어난 기하학자와도 같다.
– 토머스 브라운, 《의사의 종교(Religio Medici)》, 1636년경

세 가지 문제

그리스 수학자들은 세 개의 고전적인 기하학 문제를 정의했다. 그 세 문제 즉, 원과 같은 넓이의 정사각형 만들기, 임의의 각을 삼등분하기, 정육면체의 부피를 두 배로 만들기는 컴퍼스와 직선자만을 가지고 해결해야 했다. 이 문제들은 이후 풀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기 전까지 2200년 동안 수학자들을 괴롭혔다.

‘원을 어떻게 정사각형으로 만들 것인가.’라는 문제는 아낙사고라스와 관련해서 처음 생겨났다. 아낙사고라스는 자연 철학자였고 최초의 과학 베스트셀러 《자연에 대하여(On Nature)》를 썼다. 아낙사고라스는 태양이 신이 아니라 붉고 뜨거운 커다란 돌이며 그리스 반도와 섬을 합친 것보다 크고 태양에서 반사된 빛이 달을 빛나게 한다고 했다.

아낙사고라스(500~428BC년 경)는 태양은 신이 아니라고 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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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주장으로 인해 그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아낙사고라스는 원을 정사각형으로 만드는 방법(어떤 원이라도 컴퍼스와 직선자만을 이용해서 똑같은 넓이의 정사각형으로 만드는)을 찾는 데 몰두했다.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옛날부터 계신 분(The ancient of Days)〉에서 신을 기하학 도구를 가지고 지구를 만들어내는 우주의 건축가로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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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육면체의 부피를 두 배로 만드는 문제가 나타난 것은 아테네에 대역병이 돌던 때(BC430년)였다. 에라토스테네스에 따르면 그리스인들이 델로스(Delos)에 신탁을 요청하자 아폴로 신이 역병을 멈추고 싶으면 제단의 부피를 두 배로 만들라고 했다. 사람들은 당연히 변의 길이를 두 배로 늘려서 제단을 만들었는데, 그 결과 부피는 2배가 아닌 8배로 증가했다. 아폴로는 결과에 만족하지 못했고 전염병은 계속되어 인구의 4분의 1이 죽었다.

미하엘 스베르츠(1618~1664년)는 아테네의 대역병을 다소 이상적으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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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신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킬 방법을 알 수 없었던 그리스의 장인은 철학자인 플라톤에게 조언을 구했다. 플라톤은 아폴로의 요구가 수학, 특히 기하학을 그리스인들이 무시한 것을 뉘우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이 문제의 기원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크레타의 왕인 미노스가 자신의 어린 아들이 꿀이 담긴 통에 빠져 죽자 무덤을 만들라고 했다. 미노스 왕은 무덤의 크기가 너무 작다며 원래 계획보다 두 배로 만들라고 명령한다).

인도의 경전 베다(Veda)에서는 처음에 간청하던 곳에서 두 번째 간청을 하기 위해서는 정육면체 제단의 부피를 처음 간청했을 때의 두 배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이 그리스인들에게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독일 수학자인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는 직선자와 컴퍼스만을 가지고 정육면체의 부피를 두 배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고, 이것은 1837년에 피에르 방첼에 의해 증명되었다.

각을 삼등분하는 것은 덜 흥미로운 문제이기도 하고 이와 연관된 미신적인 이야기도 없다. 이집트인들이 밤에 시각을 알기 위해 별 사이의 각도를 나눠야 했기 때문에 이 문제가 생겨났을 수도 있다. 이 문제는 직선자와 컴퍼스만을 이용해서 임의의 각을 똑같이 삼등분하는 것이다. 어떤 각들은(예를 들어 90도 직각의 경우) 쉽게 삼등분할 수 있었고 그리스인들은 임의의 각을 삼등분하는 기계적인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순수하게 이론적인 방법을 찾아내려는 그리스인들의 욕망은 실제로는 별 필요가 없는데도 그런 노력을 계속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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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스와 거북이
정수 단위의 수를 다룰 때(그 수가 아무리 작은 수라 해도) 생기는 부조리를 보여주기 위해 제논은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를 제안했다. 거북이가 먼저 출발하면 아킬레스가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절대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한다.

아킬레스가 거북이가 이동한 거리의 중간지점까지 가면 거북이는 이미 이동해 있다. 아킬레스가 남아 있는 거리의 절반을 가면 거북이는 아주 짧은 거리일지라도 그것보다 조금 더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영원히 계속된다. 그러므로 아킬레스는 절대로 거북이와 같이 갈 수 없다.

기하학이 우주를 지배한다

그리스 수학자들은 무리수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기하학이 자연수나 자연수의 비로 나타낼 수 있는 수에만 한정된다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한 변의 길이가 1인 정사각형의 대각선 길이를 구하는 문제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피타고라스 학파의 체계가 무너지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엘레아 학파의 제논의 역설에서 나타난 두 번째 문제는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제논의 역설은 측정 단위가 아무리 잘게 쪼개진다 해도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연속체를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한소각주1) 의 수열조차도 인위적인 분류일 뿐이다.

이 두 가지 문제점(무리수의 존재와 무한하게 작은 부분으로 나누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리스 수학자들은 생각의 틀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피타고라스 시대에 숫자는 점, 때론 조약돌(결석(calculi)이라고 불렸고 여기에서 계산(calculation)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로 나타냈다. 하지만 200년 후인 유클리드의 시대에는 규모를 선분으로 나타냈다. 원자론각주2) 은 연속성에 길을 내주었고, 우주의 기본 모델은 개별 숫자의 수학에서 기하학으로 바뀌었다. √2는 (그리스 용어로는) 숫자로 나타낼 수 없지만 √2를 선으로 그리는 것은 아주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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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크리토스와 무한소수
화학자이자 철학자인 데모크리토스(460~370BC년 경)는 만물이 빈 공간을 움직이는 무한하게 작고 다양한 미세 입자로 만들어졌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우리 인간과 지구 밖 다른 세계의 창조는 미세 입자가 다양한 배열로 굳어졌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이로 인해 물질 사이에 유사성과 차이가 생겨난다(이 생각은 레우키포스가 이미 제시한 적이 있었다).

이것을 기하학 도형에까지 연장시켜, 예를 들어 사각형의 피라미드는 피라미드 바닥의 가장 큰 정사각형에서부터 꼭대기의 작은 정사각형까지 무한하게 얇은 사각형을 쌓아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사각형의 층은 무한하게 얇기 때문에 각각의 사각형은 위아래의 사각형들과 사실상 같은 크기이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정말 그렇다면 피라미드는 정육면체가 될 것이다.

면적과 부피를 무한소로 얇게 쪼개는 것은 적분의 중요한 원칙이다. 하지만 데모크리토스는 이것을 하나의 방법으로 발전시킬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조각의 크기가 달라지는 것을 논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안티폰과 에우독소스는 데모크리토스의 방법을 성공적으로 사용했고, 이후에 아르키메데스도 데모크리토스의 방법을 사용해서 도형의 넓이를 구하기 위해 실진법각주1) 을 만들어냈다. (드디어 인정받은 무한 항목 참조)

웃는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와 우는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
기계적인 방법을 계속 사용하면서, 최고의 기하학을 영영 잃어버린 게 아닐까?
– 플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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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루니 집필자 소개

1967년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대학에서 중세 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케임브리지 대학과 뉴욕 대학에서 중세 영어와 프랑스 문학을 가르쳤으며, 지금은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과학과..펼쳐보기

출처

수학 오디세이
수학 오디세이 | 저자앤 루니 | cp명돋을새김 도서 소개

피타고라스에서 괴델까지 이야기로 만나는 매혹적인 수학의 역사. 고대부터 현대까지 중요한 수학적 발견과 증명을 흥미롭게 설명한다. 마술 같은 숫자의 신비와 놀라운 수학자..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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