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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수를 파악하기 위해 막대나 석판 등에 일일이 표시를 남기는 것은 작은 수에는 유용했지만, 표현해야 할 수가 커지면 표시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단순 계산을 넘어 여러 가지 복잡한 계산을 할 수 있으려면 눈금을 새기거나 점을 찍는 방식이 아닌, 한눈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기법이 필요해졌다.
언어로 표현된 수 체계가 어떤 발달 과정을 거쳤는가에 대해서는 지금도 원시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여 추측하는 방법밖에는 없지만, 숫자 표기법의 경우 오래된 문화 유물이나 기록들을 통해 그 발달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최초의 수 체계는 물건마다 각각 하나의 표시를 기록하여 수를 파악하던 탤리와 연관돼 있었으므로 ‘III’이나 ‘• • •’은 숫자 3을 가리키는 것이다. 기원전 3400년경, 고대 이집트인들은 상징적인 문자(신성문자, 神聖文字)를 사용해 10의 제곱수를 나타내는 수 체계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1~9에 해당하는 수는 눈금을 이용하고 10, 100, 1000 많게는 1,000,000에 해당하는 수는 상징적인 문자로 표현했다. 하나의 수를 나타낼 때 상형문자는 아홉 번까지 사용할 수 있었고,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일관된 형식으로 분류해놓았다.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현재의 이라크)에도 이와 유사한 수 체계가 존재했다.
이처럼 단순한 체계로는 지금도 친숙한 로마자 표기법이 있다. 로마인들은 1부터 4의 숫자를 세로 눈금으로 나타냈다.
I, II, III, IIII
그리고 IIII 이후의 숫자는 세로 눈금을 더 늘리지 않고 V 기호를 이용해 5를 나타냈다. 나중에는 숫자 IIII를 대신해 IV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 경우엔 눈금의 위치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즉, IV는 5 빼기 1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IX는 10 빼기 1이므로 9를 의미한다.
5나 10에 10, 100 등이 곱해진 수들은 각각 다른 상징을 이용해 표시했다.
V = 5
L = 50
D = 500
X = 10
C= 100
M = 1,000
숫자는 10, 100, 1000단위의 그룹으로 묶어 표기했다. 예를 들어 2008은 ‘MMVIII’로 표기했으며, 5, 50, 500을 나타내는 상징문자들은 하나의 수를 표기할 때 한 번 이상 사용될 수 없기 때문에 VV라고 표기하지 않고 X라고 표기했다.
로마의 수 체계에서는 하나의 수를 표기하는 데 너무 많은 문자를 사용해야 했으므로 매우 번거로웠다. 예를 들어, 38은 ‘XXXVIII’로 표기되었고, 같은 자릿수가 아니면 축약 형태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49는 IL(50 빼기 1)이 아닌 XLIX(50 빼기 10, 10 빼기 1)로 표기했다.
그 다음 단계로 같은 문자를 반복하여(30을 XXX로 나타내는 것) 10이나 100 등의 수를 나타내는 대신 1에서 9의 숫자를 활용하는 기수법(記數法)이 등장했다. 1에서 9의 수를 10, 100단위를 나타내는 문자와 결합시켜 수십, 수백, 수천 단위의 수들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었다. 현재 중국의 수 체계는 바로 이런 원칙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四十 = 4 × 10 = 40
十四 = 10 + 4 = 14
四十四 = 4 × 10 + 4 = 44
이것은 ‘곱셈에 의한 기수법’으로 알려져 있다. 이 형태의 기수법에서는 수들을 표현하는 데 필요한 숫자의 수가 보다 더 규칙적으로 나타난다. 즉, 1부터 10까지는 한 자리의 숫자로, 11부터 20까지는 두 자리의 숫자로 나타낸다. 90까지 10의 배수들(20, 30 등)은 두 자리의 숫자로 나타내고, 그 외의 990까지의 10의 배수들은 세 자리의 숫자로 나타낸다.
이와는 달리 로마의 표기법은 1에서 10까지의 수를 나타내기 위해 1~4자리의 숫자가, 100까지의 수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1~8자리의 숫자가 필요하므로 매우 불규칙적이다.
암호 수 체계
앞에서 설명한 상형문자 체계는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되었던 3개의 수 체계 중 한 가지일 뿐이다. 이집트에는 민중문자(民衆文字)와 신관문자(神官文字)라는 두 가지의 암호 수 체계가 더 있었다. 암호 수 체계에서는 1에서 9에 해당하는 수를 표현하는 서로 다른 상징들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10, 100, 1000 등의 배수들도 별개의 상징들로 표현했다. 신관문자는 알려져 있는 것 중 가장 오래된 암호 수 체계이다. 이 체계에서 수를 매우 간결하게 표현할 수는 있었지만, 꽤 많은 상징들을 전부 외워야만 했다. 암호 수 체계는 숫자들을 ‘특별한’ 것으로 각인시켜, 그 숫자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만 특별한 권력을 부여해 ‘엘리트’ 그룹을 형성하는 사회적 목적을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많은 문화권에서 숫자를 신성과 마법의 이미지와 결합시켜 종교적 권위를 유지하려 했다. 중세 유럽의 가톨릭 교회는 ‘숫자’의 독점적인 활용에 몰두하기도 했다.
콥트인, 힌두교의 브라만 계층, 히브리인, 시리아인, 초기 아라비아인들도 암호 수 체계를 사용했으며, 수를 나타내기 위해 종종 알파벳 문자를 사용하기도 했다.
위치 기수법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위치 기수법’은 숫자의 위치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표기법이다. 이 표기법은 중국에서 사용된 것과 같은 곱셈에 의한 기수법에서 발달된 것으로 10, 100 등과 같이 단위들을 나타내는 문자는 생략된 채 수의 위치로 의미를 나타낸다.
‘위치 기수법’에서는 ‘0’을 나타내는 상징이 있어야만 수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 ‘0’에 해당하는 표시가 없으면 24, 204, 240 등의 숫자를 구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바빌로니아의 기수법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이기도 하다.
위치 기수법에서는 10, 100, 1000 등의 단위에 일일이 새로운 이름을 붙이거나 상징을 갖다 붙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아주 큰 단위의 수도 쉽게 표기할 수 있다.
10,000 | 1,000 | 100 | 10 | 1 | |
---|---|---|---|---|---|
54,321 = | 5×10,000 | 4×1,000 | 3×100 | 2×10 | 1×1 |
10,070 = | 1×10,000 | 0×1,000 | 0×100 | 7×10 | 1×0 |
추정 가능한 가장 오래된 위치 기수법은 기원전 3000년에서 2000년경 수메르 지역에서 발달했지만, 10진법과 60진법을 사용하는 복잡한 방식이었다. 기원전 3세기까지는 ‘0’에 해당하는 수가 없었기 때문에 위치 기수법이 많은 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0’에 해당하는 상징이 생긴 이후에도 ‘0’이 수의 끝에는 올 수 없었기 때문에 2와 200을 상황에 따라 파악해야만 했다. 상황을 따져서 수를 구분하는 것은 쉽기도 하고 또 어렵기도 한 문제였다.
예를 들어 ‘나에겐 아들이 7명이 있다.’는 말을 ‘나에겐 아들이 70명이 있다.’고 오해하는 일은 거의 없겠지만, ‘3명 중 1명의 군사가 다가오고 있다.’는 말은 여러 가지로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 혼란스럽다. 여기에서 ‘3’이 실제로는 300이라면 대처를 할 수 있겠지만 3,000이나 30,000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사용된 두 가지 기수법 중 아테네에서 널리 쓰인 것은 그리스 알파벳을 이용한 표기 방식이었다. 이 기수법에서는 α는 1, β는 2를 나타내는 식으로 9까지의 수는 알파벳 순서대로 표기하고 10의 배수들은 독립적인 알파벳을 사용해 표기했다. 그로 인해 세 자리 단위의 수는 세 개의 문자로, 네 자리는 네 개의 문자로, 나머지 단위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표기가 가능했다. 그러나 900까지 나타내기 위해선 알파벳의 수가 충분하지 않았으므로 문자로는 쓰이지 않던 고대 문자를 사용했다. 999가 넘는 수에는 현재 쉼표를 사용해 숫자를 구분하는 것처럼 오른쪽에 체크 표시를 해 1,000의 수가 곱해졌음을 나타냈고 10,000의 수가 곱해졌을 땐 숫자 아래에 mu라고 표기했다.
그리고 숫자와 문자를 구분하기 위해 숫자 위에는 선을 그어 표시했다. 이후 그리스 철학자들은 아주 큰 단위의 수도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냈는데, 그만큼 큰 수를 꼭 기록해야 했다기보다는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만큼 큰 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었다.
마야인들은 ‘0’에 해당하는 표기를 갖춘 완성된 형태의 위치 기수법을 사용했으며, 기원전 36년의 기록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마야 문화는 16세기에 유카탄 지역으로 침략해왔던 스페인인들에 의해 발견되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마야 문명과 더불어 사라지는 운명을 맞이했다.
마야의 기수법은 10진법이 아닌 5진법과 20진법을 사용했으므로 나름대로의 한계가 있었지만, 인도인들은 완벽한 위치 기수법을 최초로 만들어냈다. 그들은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한 ‘0’의 개념으로 점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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