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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리 명승기
진경산수화의 비경

죽서루와 오십천

요약 테이블
문화재 지정 명승 제28호
소재지 강원 삼척시
관동에서 제일가는 죽서루
關東第一竹西樓
누각 아래 푸른 물 도도히 흐른다
樓下溶溶碧玉流
오랜 세월 돌과 물이 어우러진 경치
百年泉石如相待
천고의 문장으로도 다 표현할 수 없도다
千古文章不盡遊
- 〈차죽서루판상운(次竹西樓板上韻)〉

오십천이 감돌아가는 물돌이의 절벽, 그 벼랑 위에 날아갈 듯 죽서루(竹西樓)가 아름답게 서 있다. 1875년(고종 12) 삼척부사로 부임했던 심영경(沈英慶)은 죽서루의 빼어난 모습에 감탄하여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이외에도 죽서루의 선경을 찬양한 글은 수없이 많다. 1662년(현종 3) 도호부사였던 미수 허목은 〈죽서루기(竹西樓記)〉에서 죽서루의 비경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조선의 동쪽 경계에는 경치가 좋은 곳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여덟 곳(관동팔경)은 가장 뛰어나다.”

〈죽서루도〉

1788년 단원 김홍도가 그린 죽서루의 모습으로 오십천이 S자형으로 크게 감돌아가는 석벽이 눈에 띈다. 죽서루 아래에서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는 하천은 오늘날 직강으로 바뀐 상태다.

ⓒ 김영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오십천은 동쪽으로 흐르면서 오십 굽이 여울을 이루고 그 사이사이에 무성한 숲과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죽서루에 이르면 푸른 층암절벽이 높게 솟아 있는데, 맑고 깊은 소의 물이 여울을 이루어 그 절벽 아래로 감돌아 흐른다. 석양 무렵 돌에 부딪혀 빛나는 푸른 물결과 수직으로 선 암벽의 빼어난 경치는 큰 바다를 보는 것과는 매우 다른 절경을 선사한다. 유람자들은 이런 경치를 좋아해서 죽서루가 관동에서 제일이라 한 것이 아닐까. 〈죽서루기〉에는 이처럼 죽서루와 오십천이 이루는 경치를 관동팔경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경승으로 찬양하고 있다.

오십천은 삼척시를 가로질러 동해로 흐른다. 동해안에서 가장 긴 하천으로 ‘오십천’이란 이름은 발원지에서부터 동해까지 50여 번 돌아 흐른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다. 오십천은 감입곡류, 즉 물돌이가 많은 하천이다. 오십천 협곡의 암벽들은 장기간에 걸친 침식과 퇴적작용으로 현재와 같은 다양한 지형을 형성했다. 죽서루가 위치한 곳은 오십천 협곡이 끝나는 곳으로 하천과 주변 협곡, 죽서루 절벽, 배후의 석회암 지형과 길게 늘어진 송림 등이 급경사의 산지와 어우러져 절경을 자아낸다.

오십천

오십천의 푸른 물과 깎아지른 석벽, 그 위에 올라앉은 죽서루가 절경을 이루고 있다. 삼척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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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서루와 오십천은 양양 낙산사의 의상대와 함께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 소개된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다. 죽서루는 지방관아에서 지은 공루로 창건연대와 처음으로 지은이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고려시대였던 1266년(원종 7) 《동안거사집(動安居士集)》이라는 문헌에 서루(西樓)로 표기되었는데, 이 누각이 지금의 죽서루 위치에 지어졌던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1266년 이전에 이미 지어졌던 것으로 추정되어 죽서루는 매우 역사가 깊은 누각임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죽서루는 1403년(태종 3) 삼척부사 김효손이 옛터에 중창한 후 수차례의 중건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죽서루는 정면 7칸, 북쪽 측면 2칸, 남쪽 측면 3칸으로 지어진 특이한 형태의 누각으로 현재 보물 제213호로 지정되어 있다.

죽서루는 관아에 바로 붙어 있는 누각이다. 남원의 광한루는 주변에 고정원을 크게 조성했지만 죽서루는 지금까지의 발굴조사에서 고정원과 관련된 유구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것은 죽서루가 있는 오십천 주변의 경관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별도의 정원 시설을 조성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죽서루의 동쪽에는 대나무 숲이 있는데 그 옛날 죽림 속에는 죽장사(竹藏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죽서루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죽장사의 서쪽에 위치한 누각을 의미한다. 죽서루에는 많은 편액이 걸려 있다. 누각의 명칭과 의미를 나타내는 현판, 죽서루의 역사를 기록한 편액, 죽서루와 오십천의 풍광에 관한 경관시를 수록해놓은 편액 등 수없이 많은 액자가 누각을 장식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누각의 전면에 걸려 있는 ‘죽서루’와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은 1715년(숙종 41) 삼척부사 이성조가 쓴 글씨로 죽서루를 관동에서 제일가는 누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현판 중에는 ‘제일계정(第一溪亭)’이라 하여 허목의 글씨가 있는데, 이것은 오십천의 계류와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죽서루의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죽서루와 오십천의 비경은 옛날부터 많은 묵객들의 화폭에 담겨져 왔다. 조선 후기 화가들 사이에 실제 자연을 화폭에 그대로 옮기는 화풍이 유행했는데 이것이 바로 진경산수화다. 당시 화원들은 전국의 유명한 경승지를 찾아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단양팔경, 금강산, 관동팔경 등의 아름다운 절경이 화제가 되었다. 특히 죽서루와 오십천은 그 모습이 빼어나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강세황, 엄치욱 등 진경산수를 대표하는 많은 화가들이 그 아름다운 풍광을 그려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 김영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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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서루

눈으로 뒤덮인 설경과 나무의 이파리가 돋아나지 않은 초봄에 만개한 벚꽃, 녹음으로 우거진 죽서루의 다양한 모습이다. 자연의 지반을 주초로 삼아 이에 거스르지 않고 누각을 지은 옛사람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삼척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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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시에서는 오십천변에서 정월대보름에 민속놀이로 ‘삼척기줄다리기’라는 행사를 하고 있다. ‘기줄’이란 게줄을 뜻하는 말로 기둥이 되는 큰 줄에 작은 줄을 매달아 마치 줄의 모습이 게의 발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게줄싸움이라고도 부른다. 허목이 오십천에 제방과 저수지를 만들면서 가래질에 필요한 새끼줄을 마을 전체가 합심하여 보다 쉽게 제작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했다는 놀이다. 풍광이 아름다운 죽서루를 배경으로 짙푸른 강물이 흘러가는 오십천의 백사장에서 많은 인파가 모여 기줄다리기를 하는 모습은 정말로 흥미로운 광경이었을 것이다. 전통놀이는 제각기 놀이가 행해지는 장소와 깊은 관련이 있다. 아름다운 장소에 걸맞는 전통놀이는 그 장소의 문화적 의미를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오늘날 삼척시를 흐르는 오십천의 물길은 도시개발로 다소 변형되었다. S자형으로 크게 휘돌아 나가던 오십천은 죽서루를 지나고 난 후 곧은 물줄기로 바뀌었다. 비록 예전만은 못하지만 죽서루를 중심으로 한 오십천변의 풍광은 여전히 아름답다. 죽서루에서 바라보는 오십천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오십천 건너에서 바라보는 죽서루와 오십천 절벽의 모습도 가히 절경이다. 조금은 귀찮고 어려울지라도 이러한 조망 지점을 찾아 감상하는 것은 명승의 진가를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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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범 집필자 소개

서울시립대학교 원예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석사,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표 저서로는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우리 명승기행: 역사문화 명승 편》, ..펼쳐보기

출처

우리 명승기행
우리 명승기행 | 저자김학범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소소하지만 소중한 우리 유산의 중요성과 의미를 다시 한 번 일깨운다. 특징에 따라 명승 49곳을 고정원, 누원과 대, 팔경구곡과 옛길, 역사·문화 명소, 전통산업·문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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