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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리 명승기
속세를 떠난 이상향

속리산 법주사 일원

요약 테이블
문화재 지정 명승 제61호
소재지 충북 보은군
도는 떠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도를 멀리했고
道不遠人人遠道
산은 세속을 떠나지 않았으나 세속이 산을 떠났도다
山非俗離俗離山

조선 중기의 시인 백호(白湖) 임제(林悌)가 속리산을 보고 남긴 시의 한 구절이다. 속리산은 맑고 청량한 산이다. 그 옛날 이곳을 찾았던 백호의 시에 묘사된 것처럼 속리산은 속세를 떠난 피안(彼岸)의 세계다. 구름 속에 갈무리되어 마치 하늘나라처럼 신비스러운 유토피아, 곧 극락의 세계가 속리산이다. 속리산 문장대(文藏臺)의 옛 이름은 구름이 가득 서려 있는 곳이라는 뜻의 운장대(雲藏臺)였다.

속리산

법주사 방향에서 오르는 등산로에서 바라본 속리산 전경으로 멀리 문장대가 보인다.

ⓒ 김영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세 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속리산 문장대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펼쳐진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속리산은 동서로 이어지는 높은 능선을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으로는 겹겹이 산줄기가 뻗어 있고 그 사이로 여러 개의 계곡이 깊은 골을 이루어 신령스러운 명산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산봉우리와 능선 곳곳에는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암괴석들은 속리산의 모습을 한층 더 신비롭게 만들고 있다. 특히 문장대에는 큰 바위가 산꼭대기에 올라앉아 있는데 마치 그 모습이 하늘에 맞닿아 있는 것과 같이 매우 기묘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문장대는 바위 꼭대기에 100여 명이 함께 올라설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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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대

속리산의 최고봉은 천황봉이지만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오르는 곳은 문장대다. 기암으로 이루어진 문장대의 모습이다. 이광춘 명예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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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은 최고봉인 천황봉(해발 1,058m)을 비롯하여 비로봉, 문장대, 문수봉, 신선대, 관음봉 등 아홉 개의 높은 봉우리로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원래는 구봉산이라 불리다가 신라 때부터 속리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백두대간이 태백산을 지나면서 내륙으로 꺾여 흐르는 중앙부에 위치한 속리산은 금북정맥이 분지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문장대를 중심으로 동쪽 천황봉에서 서쪽 관음봉까지 연결되는 산봉우리를 비롯해 능선의 남쪽과 북쪽으로 전개되는 넓은 사면 지역을 품안에 두고 있다.

천황봉에서 관음봉으로 연결되는 능선의 남쪽 지역에 법주사가 있다. 이곳이 바로 ‘속리산 법주사 일원’이라는 명승으로 지정된 구역이다. 법주사에 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자연에 의해 형성된 아름다운 산수와 법주사를 중심으로 역사 깊은 문화 경관이 함께 어우러져 빼어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경승지다.

속리산은 한국팔경에 속하는 명산으로 사계절 내내 철따라 매우 특이하고 뚜렷한 모습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봄철에는 산벚꽃을 비롯해 야생화로 온 산이 뒤덮이고, 여름에는 노거수로 형성된 소나무 군락이 창송의 푸르름을 발하며, 가을에는 불타는 듯한 단풍이 산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겨울에는 눈이 덮여 온통 하얀 세계를 만든다. 이렇듯 수려한 경치를 자랑하는 속리산에는 기암의 절경 문장대를 비롯해 입석대, 신선대, 경업대, 배석대, 학소대, 봉황대, 산호대 등 여덟 개의 대가 있으며 은폭동계곡, 용유동계곡, 쌍룡폭포, 오송폭포 등과 같은 아름다운 경승이 많다.

속세를 벗어난 아름다운 절경으로 속리산은 제2의 금강이라고도 불린다. ‘속리’라는 이름은 신라시대에 갖게 된 명칭이다. 신라가 통일을 한 후 불교가 융성해졌던 784년(선덕왕 5)에 진표스님이 이 산에 이르게 되었다. 산 아래 밭에서 소들이 밭을 갈고 있었는데 스님을 보자 일하던 소들이 모두 스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를 본 농부들이 “짐승도 저렇게 부처님께 귀의하고자 하는데 하물며 사람들은 반드시 부처를 섬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며 속세를 버리고 진표를 따라 입산하였다고 한다. 이렇듯 이곳 사람들이 속세를 버렸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설보다 오니로 물든 세상에서 깨끗하고 신성한 산으로 떠난 곳이라는 의미로 생긴 이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속리산은 이름 또한 다양하다. 구봉산 외에도 광명산, 미지산, 형제산, 소금강산 등 다양한 별칭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순수한 자연으로 이루어진 속리산 안에 명당터가 있는데 그곳에 법주사가 자리하고 있다. 일찍이 불법을 구하러 천축국으로 건너간 의신(義信)스님이 경전을 얻어 귀국한 후 속리산에 들어와 553년(진흥왕 14)에 창건한 사찰로 ‘법이 편안히 안주할 수 있는 절’이라 하여 법주사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법주사의 정신적 지주가 된 미륵신앙이나 법상종의 유식사상(唯識思想)은 혜공왕 때 이곳의 중흥에 크게 기여한 진표(眞表)와 그의 제자 영심(永深)에 의해 발현된 것이다.

팔상전과 대불

법주사 경내에 있는 목탑인 팔상전과 수정봉 앞에 세워진 대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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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는 신라 성덕왕 때 중수되었고 지금 남아 있는 석물도 모두 이때 만들어졌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건물을 중수했으며 현존하는 목조건물은 모두 조선 후기에 조성되었다. 법주사 경내에는 유명한 법주사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 팔상전(국보 제55호), 석련지(국보 제64호), 사천왕석등(보물 제15호), 마애여래의상(보물 제216호), 대웅전(보물 제915호), 원통보전(보물 제916호) 등이 있고, 다수의 지정되지 않은 문화재를 비롯하여 주위에 크고 작은 암자가 위치해 있다.

마애여래의상

보물 제216호로 지정된 마애여래의상은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마애불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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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과 법주사에는 많은 설화가 전해진다. 이 중 조선의 7대 임금 세조와 관련된 설화가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왕위를 찬탈한 후 어린 조카 단종을 죽인 세조는 깊은 마음의 병과 몸에 생긴 피부병으로 고생했다. 심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세조는 먼저 속리산으로 비접을 떠났다. 법주사 본찰에서 문장대로 가는 도중에 있는 복천암에서 세조는 두 가지 지병을 치료하고자 기도를 했다. 3일간 기도를 하고 신미대사로부터 3일 동안 설법을 들은 후 샘물을 마시고는 마음의 병을 고치게 되었다. 그러나 몸의 피부병은 낫지 않아 다시 오대산 월정사로 가서 병을 고쳤다고 한다.

또한 천연기념물 제103호인 ‘정이품송’은 비접행차와 관련된 전설을 가지고 있다. 세조의 연(가마)이 이 소나무를 지나게 되었는데 가지가 늘어져 있어 “연 걸린다”고 하자 스스로 가지를 들어 올려 세조가 정이품 벼슬을 하사했다는 나무다. 그리고 외속리면 장재리에는 대궐터가 있는데 세조가 보은을 지나 속리산 쪽의 나지막한 고개에 올랐을 때 노승이 나타나 행궁을 지으라고 일러준 곳이라고 한다. 이밖에도 세조가 말을 갈아탄 말티 고개를 비롯해 미륵댕이, 북바위, 목욕소, 은구석 등에도 왕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 세조 32권에는 세조가 1464년(세조 10) 오랫동안 비접을 다녀왔다는 기록이 있다.

설화는 장소의 가치를 더해준다. 속리산과 법주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는 곳곳에 많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문화민족임을 의미하며, 한반도의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속리산 법주사 일원’을 비롯해 ‘가야산 해인사 일원’ 등 사찰과 주변의 자연경승지를 포함하고 있는 유산이 다수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는 과거 ‘사적 및 명승’이었던 유산을 재분류하여 명승으로 지정한 것이다. 사적지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사적과 함께 명승으로 중복하여 지정하는 것은 사적의 보존과 활용을 위해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속리산 법주사 일원’의 명승 지정은 법주사와 같은 유명한 사찰을 효율적으로 보존하고 주변의 경승지를 조화롭게 가꾸어 속리산을 국민이 더욱 즐겨 찾는 장소로 친밀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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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범 집필자 소개

서울시립대학교 원예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석사,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표 저서로는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우리 명승기행: 역사문화 명승 편》, ..펼쳐보기

출처

우리 명승기행
우리 명승기행 | 저자김학범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소소하지만 소중한 우리 유산의 중요성과 의미를 다시 한 번 일깨운다. 특징에 따라 명승 49곳을 고정원, 누원과 대, 팔경구곡과 옛길, 역사·문화 명소, 전통산업·문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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