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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신선과 반려하는 유토피아
용암정 일원
문화재 지정 | 명승 제8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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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남 거창군 |
태곳적 반석 위를 마당으로 삼아
太古盤巖闢址庭
삼대가 경영하여 이 정자를 지었도다
經營三世築斯亭
명승의 물과 돌은 하늘의 작품으로
名區水石由天作
별천지 안개 속에 감춰진 지형이로다
別界煙霞秘地形
- 임석형, 〈용암정(龍巖亭)〉
안의삼동은 옛날부터 명승지로 유명한 곳이다. 본래 안의현에 속한 세 곳의 동천으로 화림동, 심진동, 원학동을 이르는 말이다. 오늘날에는 행정구역이 바뀌어 화림동과 심진동은 함양군, 원학동은 거창군에 포함되어 서로 다른 군으로 분리되었다. 덕유산에서 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능선 아래에 자리한 안의삼동은 그야말로 신선이 살 듯한 동천이다.
거창의 용암정은 삼동천의 하나인 원학동 골짜기에 계곡을 따라 흐르는 위천(渭川)가에 세워진 경승이다. 이미 원학동의 명승으로 잘 알려진 수승대로부터 북쪽 방향으로 1km 정도 올라간 상류에 위치하고 있다. 덕유산에서 발원한 소정천과 남덕유산에서 시작되는 월성천이 북상면 소재지에서 합류되어 위천을 이루는데, 이 위천이 시작되어 수승대로 향하는 작은 계곡을 ‘요수원계곡’이라 한다. 요수원계곡은 말 그대로 산자수명한 골짜기인데 용암정이 바로 이 계곡의 남쪽 언덕 위에 지어져 있다.
용암정은 갈계마을에 터를 잡고 여러 대에 걸쳐 살아온 임석형(林碩馨, 1751~1816)이 지은 정자다. 일찍이 그의 조부와 부친을 따라 노닐던 물가에 놓여 있는 평평한 바위인 용암 위에 1801년(순조 1) 건립한 누정이다. 임석형의 선대는 항상 용암에서 소요하기를 즐겨했지만 끝내 정자를 건립하지 못해 아쉬워했다. 이를 애석하게 여긴 임석형이 가까운 친척들과 뜻을 합해 용암정을 짓게 된 것이다. 그의 가문에서는 대대로 벼슬에 뜻을 두지 않는 풍조가 있었다. 이러한 가풍의 영향으로 임석형 또한 출사를 생각하지 않고 요수원계곡의 동천에서 평생 안빈낙도를 즐기며 선유(仙遊)했다.
이휘준(李彙濬, 1806~1867)이 쓴 용암정의 중수기를 보면 임석형을 묘사한 부분이 있다. 그에 따르면 임석형은 학문이 깊고 행실이 발라 당대의 유명한 인사들과 교류가 많았지만 벼슬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임천(林泉)에서 소요하기를 즐겼다고 한다. 그러다 50세가 지난 후 만년에 들어서면서 선대의 뜻을 소중하게 느끼고 이를 이어가고자 용암정을 짓게 된다. 정자가 지어진 이후에도 이곳에서 그의 자손들은 독서를 하며 학문을 연마했지만 과거에 응시하는 것에는 연연해하지 않았다.
정자는 방이 있는 정자와 방이 없는 정자 두 가지로 나뉜다. 방이 없는 무실형(無室形) 정자는 대부분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기호 지방에 많이 지어졌다. 일반적으로 기호 지방의 정자는 환로(宦路)에 있는 인사들이 주로 이용하는 시설이었기 때문에 유상(遊賞)의 목적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이와 비교하여 방이 있는 유실형 정자는 호남과 영남 지방에 많이 지어졌다. 영호남의 정자는 대부분 그 안에서 기거할 수 있고 학문을 닦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용암정 또한 정면 3칸, 측면 2칸, 모두 6칸으로 구성되어 후면의 중앙에 1칸의 방을 들여 학문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정자는 보통 산수가 좋은 곳에 위치한다. 산이나 언덕, 강이나 호수 또는 바닷가에 자리를 잡아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조망할 수 있도록 세워진다. 용암정에서도 요수원계곡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보인다. 일반적으로 정자에서 보는 전망 중에 가장 으뜸인 것은 물과 관련된 수경관이다. 본래 정자를 두르고 있는 자연은 산수라 하여 첫째가 산이고, 그다음이 물이다. 그러나 실제 정자의 대부분은 계곡, 호수, 강가, 바닷가 등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볼 때 산보다는 물과 더 친밀한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정자에는 대부분 편액이 걸려 있다. 정자의 편액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정자의 명칭이 새겨진 현판이며, 또 하나는 창건기(創建記)나 중수기(重修記) 등 정자에 관한 기록을 담은 편액이다. 셋째로는 정자에서 읊은 시를 새긴 액자다. 그 외에도 특별히 정자의 주인이 지향하는 삶의 의미나 이상(理想), 후손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목표 등을 담은 경구를 새긴 편액이 걸리기도 한다. 용암정에는 정자의 주인이 지향하는 이상을 나타내는 경구인 환학란(喚鶴欄), 반선헌(伴仙軒), 청원문(聽猿門)이라는 글을 3자횡서로 새긴 편액이 걸려 있다. 이를 보면 용암정은 ‘환학, 반선, 청원의 정자’라고 할 수 있다. 이 글들은 모두 신선이 살고 있는 곳, 즉 동천을 나타낸다.
용암정이 자리한 원학동(猿鶴洞)은 이름 그대로 원숭이와 청학을 상징하는 신선의 세계다. 용암정의 남쪽에는 학담(鶴潭)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천상의 새, 청학이 깃든 못을 의미한다. 환학란은 ‘청학을 부르는 난간’이란 의미로 용암정의 난간을 뜻한다. 정자의 서쪽으로는 십이지의 하나인 원숭이를 상징하는 금원산(金猿山)이 우뚝 솟아 있다. 또한 용암정으로 들어오는 입구는 그 의미의 상징을 금원산으로부터 가져오고 있다. 선계의 동물인 원숭이를 불러와 ‘원숭이의 소리를 듣는 문’이라는 뜻의 청원문이라 이름하고 있다. 그리고 선계에 든 사람을 ‘반려하는 신선’으로 비유하여 이곳 용암정을 신선과 반려하는 집, 즉 반선헌이라 명명하고 있다.
이렇듯 용암정은 신선이 살고 있는 터전, 곧 신선의 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계를 나타내는 요소는 용암정 내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용암정에서 2km 정도 떨어진 위천가에는 신선의 강림 장소라는 강선대(降仙臺)가 있고, 그밖에도 환선대(喚仙臺), 수승대(搜勝臺), 척수대(滌愁臺)와 같이 신선과 관련된 장소들이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는 원학동 전체가 신선이 살고 있는 하나의 동천임을 나타낸다.
이외에도 용암정 주변에는 문화 경관적 의미를 지닌 다양한 경물이 산재해 있다. 거북이 머리(龜頭), 자라(鼈), 병풍(屛), 우산(傘), 도장(印), 사자(獅), 새끼용(螭), 토끼(兎) 등을 상징하는 바위뿐만 아니라 반신암(蟠申巖), 지암(支巖), 석문(石門)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수려하고 독특한 거석 경관들은 용암정이 거대한 외원을 지닌 별서정원의 중심 시설로 입지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토록 아름다운 용암정 주변의 경승들은 ‘용암팔경’으로 제영되어 읊어지기도 한다. 신비스러운 신선의 땅에서 누정의 주인 임석형은 반선이 되어 이렇게 노래한다.
강선대 너머에 용암헌이 있어
仙臺一隔龍巖軒
신선이 타고 우화등선한 수레를 생각하노라
尙憶當年羽化轅
이곳에 만약 학을 탄 손님이 온다면
此必倘來承鶴客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며 원림에서 늙어가리라
論詩把酒老林園
- 임석형, 〈반선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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