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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퇴계와 두향의 애절한 전설이 담긴
구담봉
문화재 지정 | 명승 제4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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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충북 단양군 |
“두향아, 왜 그리 낯이 어두운 게냐?”
“아닙니다.”
“내가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 것이냐?”
두향(枓香)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이후로 줄곧 그를 모셔온 두향은 퇴계가 풍기군수로 임지를 옮겨간다는 말을 듣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무리 애써 참으려 해도 솟아오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마음속으로 눈물을 삭이기에는 너무나 큰 슬픔이었다. 퇴계는 울고 있는 두향을 외면하려고 애를 썼다. 단양관아에 속해 있는 관기를 아무렇게나 임지로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퇴계는 어떤 것으로도 두향의 마음을 달래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두향의 신분을 관기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퇴계는 두향을 두고 가는 상심한 마음을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읊고 있다.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死別己呑聲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없네
生別常惻測
구담봉 바로 위에 위치한 장회나루 건너편의 말목산 자락에는 이황의 연인 두향의 무덤이 있다. 이황이 빼어난 경치에 그토록 감탄했던 구담봉에서 보이는 양지바른 곳이다. 구담봉을 중심으로 장회나루 부근은 퇴계와 두향의 애틋한 사랑의 향기가 서려 있다. 조선 중기의 문인이었던 월암(月巖) 이광려(李匡呂)는 퇴계 사후 150년 뒤 두향의 묘를 참배하고 “외로운 무덤이 관도변에 있어 거친 모래에 꽃도 붉게 피었네. 두향의 이름이 사라질 때에 강선대 바윗돌도 없어지리라”는 시를 한 수 헌사했다. 퇴계를 향한 마음을 평생 변치 않았던 두향을 기리고자 퇴계의 후손들은 지금도 두향의 무덤에 참배하며 관리하고 있다.
단양 구담봉은 단양군 단성면과 제천시 수산면에 걸쳐 있는 바위로 된 암봉이다. 석벽 위에 바위가 있는데 물속에 비친 모습이 거북의 형태를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남한강 물길을 따라 충주에서 단양을 향해 가면 거북 한 마리가 뭍으로 올라가는 듯한 형상의 산이 보인다. 제비봉과 금수산, 멀리는 월악산이 감싸고 있어 충주호 수운관광의 백미로 손꼽히고 있다.
구담봉은 정말 아름답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아담한 규모의 봉우리로 부챗살처럼 펼쳐진 바위 능선이 마치 설악산을 닮은 듯하고, 능선 좌우의 기암절벽이 금강산에서 옮겨놓은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구담봉의 석벽을 감상하려면 수로를 통해 접근할 수밖에 없다. 충주호의 장회나루나 신단양나루에서 배를 타고 이동하면 충주호 수면 위에서 조망할 수 있다. 계란재에서 등산을 하면 구담봉의 정상에 오를 수 있는데 아름다운 전경이 한눈에 펼쳐져 충주호를 부감하는 조망 지점으로도 매우 좋은 장소다.
조선시대에 육로는 도보로 여행하거나 기껏해야 우마를 이용하는 정도였다. 이에 비해 수로는 고속주행이 가능한 매우 빠른 운송로였다. 한양에서 단양으로 오는 길은 육로와 수로가 있었지만 남한강을 거슬러 오는 뱃길이 훨씬 더 용이했다. 이 길의 청풍과 단양의 경계에 구담봉이 자리하고 있다. 곧 구담봉이 있는 곳이 단양의 입구인 것이다. 옛날부터 남한강을 거슬러 오르다 옥순봉을 지나 구담을 돌아가는 이곳을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 했다. 단구란 단양의 옛 지명으로 산천경개가 아름다운 신선의 땅인 단양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이다.
구담봉은 조선시대 지리에 관련된 문헌에 자주 나타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단양군 산천조에 “구담은 군 서쪽 20리에 있다” 했다. 또한 《택리지》 복거총론 산수편 사군산수에는 “구담은 청풍에 있는데 양쪽 언덕에 석벽이 하늘 높이 솟아 해를 가렸고 그 사이로 강물이 쏟아져 내린다. 석벽이 겹겹이 서로 막혀 문같이 되었는데 좌우로 강선대, 채운봉, 옥순봉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구담봉에는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전해지고 있다. 조선 인종 때 백의재상이라 불리던 이지번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했다. 토정 이지함의 형이었던 그는 푸른 소를 타고 강산을 청유하며 칡덩굴을 구담봉의 양쪽 봉우리에 매고 비학(飛鶴)을 타고 왕래하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이를 보고 그를 신선이라 불렀다는 등 구담봉에는 얽힌 전설이 많다.
깎아지른 듯한 장엄한 기암절벽이 특히 아름다운 구담봉의 모습은 많은 시인묵객들의 시제, 화제의 대상이 되었다. 단양의 풍광에 매료되었던 퇴계 이황은 구담봉의 장관을 보고 “중국의 소상팔경이 이보다 나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이외에도 이이, 김만중, 김정희 등의 아름다움을 찬양한 시가 전해지고 있으며 진경산수로 유명한 정선, 이방운 등이 그린 구담봉의 모습이 산수화로 남아 있다.
구담봉은 남한강의 풍수설에서 ‘거북’의 이미지가 강조된 경승이다. 퇴계는 구담의 물이 너무 맑아 “봉우리들이 그림과도 같은데 협문이 마주 보고 열려 있고, 물은 그곳에 쌓였는데 깊고 넓은 것이 몹시 푸르러 마치 새로 산 거울이 하늘에서 비추는 것과 같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퇴계가 살던 당시에도 이이성(李而盛)이라는 은자가 암자를 짓고 살았다고 한다.
근래에는 구담봉과 관련하여 옥소(玉所) 권섭(權燮)이 주목받고 있다. 그는 구담봉을 몹시 사랑하여 유언을 남겼고 자신은 물론 두 아내, 손자와 함께 이곳에 묻혔다. 권섭은 20세기 말에 이르러 비로소 《옥소 권섭의 시가연구》로 명성이 점차 높아져 단양을 찾은 많은 시인 가운데 최고의 문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단양공원에는 그의 동상과 시가 새겨져 있다. 권섭은 구담봉의 아름다움에 관해 지은 〈황강구곡가(黃江九曲歌)〉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구곡(九曲)은 어드메요 일각(一閣)이 귀 뉘러니
조대단필(釣臺丹筆)이 고금(古今)의 풍치(風致)로다
저기 저 별유동천(別有洞天)이 천만세(千萬世)인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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