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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리 명승기
배롱나무 꽃이 흐드러지는

명옥헌 원림

요약 테이블
문화재 지정 명승 제58호
소재지 전남 담양군
명옥헌의 녹음

천원지방의 음양구조를 보여주는 명옥헌 원림은 고졸한 정자와 배롱나무, 소나무 등의 정원수가 어우러져 정원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 김영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한여름 푹푹 찌는 더위를 뚫고 찾아가면, 이곳에서는 이글이글 타는 듯한 여름의 끄트머리를 만날 수 있다. 바로 빨간 꽃이 흐드러진 배롱나무 정원이다. 연못을 중심으로 가장자리의 둑방길을 따라 배롱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못 한가운데 있는 섬 안에도 배롱나무가 자리하고 있어 그야말로 배롱나무는 이 정원을 온통 뒤덮고 있다. 특히 배롱나무는 대부분 고목이 되어 총총히 가지를 뻗고 그 빼곡한 가지마다 빨갛게 탐스러운 꽃무리를 수관 가득히 달고 있다. 늦여름 배롱나무 꽃이 질 때면 붉은 꽃비가 되어 정원 곳곳에 흩날리고, 꽃잎이 못 위에 호사스런 붉은 융단을 만드는 아름다운 자미(紫薇, 배롱나무)의 정원이 명옥헌 원림이다. 이곳은 담양 지방의 정자원림 중에서도 배롱나무 꽃이 가장 아름답다.

배롱나무 꽃의 원림

늦여름 배롱나무 꽃잎이 무리지어 떨어지면 마치 붉은 꽃비가 내리는 것 같다. 꽃이 떨어져 연못의 가장자리에 덮여 있는 모습이다. 담양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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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은 나무로 유명하다. 대나무, 메타세쿼이아, 배롱나무가 주종을 이루는데 그중에서도 배롱나무는 명옥헌 원림을 대표하는 여름 꽃나무다. 또한 담양은 정자원림의 고장이다. 명옥헌, 소쇄원, 식영정, 면앙정, 송강정, 환벽당, 독수정 등 가사문학의 산실이 되었던 정자가 모두 이 지방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소쇄원을 비롯한 식영정, 환벽당 등 다수의 정자원림은 배롱나무 여울이라 불렸던 자미탄(紫薇灘, 광주천)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그 옛날 빨간 꽃 흐드러진 자미탄과 정자원림 속에서 이곳 사람들은 무언가 글을 쓰거나 시를 노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명옥헌 원림은 조선 중엽에 명곡(明谷) 오희도(吳希道)가 산천경개를 벗하며 살던 곳으로 그의 아들 오이정이 선친의 뒤를 이어 이곳에 은거하면서 만든 정원이다. 오이정은 자연 경관이 좋은 도장곡에 정자를 짓고 그 앞에 연못을 파서 주변에 배롱나무와 소나무를 심어 가꾸었다. 명옥헌(鳴玉軒)이란 계곡물이 흘러 하나의 못을 채우고 다시 그 물이 아래의 연못으로 흘러가는 과정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마치 옥구슬이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명옥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규모의 정자다. 정자의 한가운데에 방이 위치하고 그 주위에 ㅁ자 마루를 놓은 형태로 소쇄원의 중심건물인 광풍각과 동일한 평면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호남 지방 정자의 전형이다. 방이 있는 정자에서는 별서의 주인이 항상 머무를 수 있고, 공부를 하거나 자손들을 교육할 수도 있다. 명옥헌은 이와 같이 은일자의 거처나 후학들을 가르치는 교육의 장소로 활용하기에 알맞은 구조를 지녔다.

명옥헌

한가운데 방을 두고 ‘口’자형으로 마루를 두른 형태로 호남 지방에서 주로 지어진 전통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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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옥헌 원림에는 상지(上池)와 하지(下池) 두 개의 연못이 있다. 이 연못은 모두 네모난 형태로 안에는 둥근 모양의 섬이 조성되어 있다. 조선시대 정원에 많이 나타나는 방지원도(方池圓島)의 모습이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네모나고 하늘은 둥글다고 여긴 선조들의 우주관에서 비롯되었다.

명옥헌 광경

‘광경’이란 문이나 창과 같은 일정한 프레임을 통해 보는 경관을 의미한다. 명옥헌에서 바라본 원림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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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옥헌 원림의 지형은 안온하다. 전면은 후산마을의 고개가 낙타의 등처럼 드러나 있어 시야를 가리고 왼편은 들판, 오른편은 목맥산에서 후산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가 있어 북풍을 막아준다. 자연스런 기단과 지형적인 입지적 특성으로 산의 위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수 있으며, 동남쪽으로는 크게 자라는 느티나무를 심어 낮의 햇볕을 차단해 시원함을 더해주고 있다. 경역 또한 명료하다. 연못 아래로는 정원의 경계부에 소나무가 줄지어 자라고 있어 담장 역할을 대신하며, 배롱나무, 느티나무 등이 잘 배식되어 호남 지방 별서정원의 형식을 잘 보여준다. 붉게 무리지어 꽃이 핀 원림의 모습은 도연명의 무릉도원에 비유되기도 한다.

오희도는 1602년(선조 35)에 사마시와 1614년(광해군 6)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에 큰 뜻이 없었다. 이는 당시 광해군 재위기의 어지러운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를 모시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어머니와 후산마을에 정착해 산기슭에 망재(忘齋)라는 조그마한 서재를 짓고 공부에 매진했으며, 때때로 고개 너머에 있는 장계골에서 자연을 즐겼다. 정철의 아들 정흥명이 지은 《명옥헌기(鳴玉軒記)》에는 명옥헌을 오희도의 손인 오대경이 중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자를 오른쪽으로 하고 돌아 계류를 거슬러 오르면 조그마한 바위가 있는데 이곳에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썼다는 ‘명옥헌 계축(鳴玉軒 癸丑)’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명옥헌에 걸려 있는 ‘삼고(三顧)’라는 편액은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오희도를 중용하기 위해 멀리 찾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조는 반정 직전에 세상을 돌며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찾아다녔는데 이때 만난 선비 오희도를 등용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명옥헌 원림은 근래 태풍으로 인해 배롱나무 몇 그루가 피해를 입었다. 또한 고사한 배롱나무의 후계목으로 대체해서 심은 유목이 적절하지 않은 위치에 다소 많이 식재되어 있는 상태다. 이로 인해 조망이 가로막혔고, 명옥헌 원림의 의미를 훼손하는 비석과 시설물도 있어 명승으로서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정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소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명옥헌 원림은 조선시대 고정원을 대표하고 충분한 진가를 지니고 있는 전통정원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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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범 집필자 소개

서울시립대학교 원예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석사,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표 저서로는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우리 명승기행: 역사문화 명승 편》, ..펼쳐보기

출처

우리 명승기행
우리 명승기행 | 저자김학범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소소하지만 소중한 우리 유산의 중요성과 의미를 다시 한 번 일깨운다. 특징에 따라 명승 49곳을 고정원, 누원과 대, 팔경구곡과 옛길, 역사·문화 명소, 전통산업·문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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