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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리 명승기
참선의 원림

청평사 고려선원

요약 테이블
문화재 지정 명승 제70호
소재지 강원 춘천시

춘천의 소양댐에서 배를 타고 호수의 북쪽에 다다르면 깊은 골짜기를 에워싸고 있는 높은 산봉우리를 만날 수 있다. 이 산이 참선의 도량으로 유명한 청평사(淸平寺)를 품고 있는 오봉산이다. 고려시대 선종조에 이자현(李資玄, 1061~1125)이 입산하면서 청평산이라 불렸으나 오늘날 다섯 개의 봉우리가 발달되어 있다고 해서 오봉산이 되었다. 오봉산 줄기로 감싸인 아늑한 분지에 위치한 청평사 원림은 산수가 빼어난 경승지로 계곡, 영지, 소, 너럭바위, 기암괴석, 폭포 등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춘천부사를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 박장원(朴長遠)은 시문집 《구당집(久堂集)》에서 청평사를 유람하며 이렇게 읊고 있다.

나라 안의 많은 명산을 수없이 보아왔건만
두 손을 마주 잡고 사면을 에워싸듯 두르면서
비거나 부족함이 없이 온화하고 빼어나며
기이하기로 이 산에 비길 곳 없도다

청평사 원림은 선학(禪學)에 매진한 이자현에 의해 참선의 경역으로 승화된다. 그는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한 후 대악서승(大樂署丞)에 올랐으나 벼슬을 사직하고 청평산에 입산하여 보현원을 문수원이라 고치고 당(堂)과 암자를 지었다. 그리고 청평식암(淸平息庵)이라는 글자를 바위에 새겨 청평사 일대를 선원의 공간으로 다듬었다.

청평사

오봉산 줄기의 견성암 봉우리 아래에 나지막히 자리한 청평사의 모습이다.

ⓒ 김영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청평사 원림은 선동(仙洞)으로 진입하는 대문과도 같은 거북바위를 지나면서 시작된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아름다운 폭포다. 선계로 향하는 오르막에는 상폭과 하폭 두 개의 폭포로 이루어진 구송폭포가 하얀 물줄기를 푸른 담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구송폭포 구역에는 구송대, 구송정터, 성향원터, 석굴, 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폭포를 지나 더 올라가면 사각형의 못인 영지(影池)가 있다. 영지는 연지와 달리 연꽃을 심지 않는다. 못의 수면을 고요하게 해 수면이 가지는 투영효과에 의해 그림자를 드리우게 하는 여러 사찰에 조성된 지당의 한 종류다.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은 청평사 영지를 보고 “네모난 못에 천 층의 봉우리가 거꾸로 들어 있다(方塘倒揷千層峀)”고 표현했다. 이 영지는 북단에 자연석을 지하에 중첩되게 깔고 석축을 쌓았는데, 계곡물이 이 석축 아래로 스며들어 영지 수면 아래에서 물이 솟아오르게 하는 특이한 입수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곳에는 세향원터, 부도, 청평루 등도 함께 위치하고 있다.

영지

고려시대 못의 형태를 보여주는 지당인 영지는 사물을 물에 비치게 할 목적으로 사찰에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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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를 지나 조금 더 오르면 선동교가 계곡을 가로질러 놓여 있고, 이곳을 건너면 오봉산 줄기의 견성암 봉우리 아래에 다소곳이 자리 잡은 청평사의 절집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청평사의 가람은 여러 개의 단을 조성하여 그 위에 절집이나 마당을 두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사지를 이용해 입지할 수밖에 없는 산지사찰의 형태를 잘 보여준다. 청평사는 일주문이 없고 중문인 회전문(보물 제164호)을 통해 대웅전으로 진입한다. 경내는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회전문만 남은 채 빈 절터로 되어 있었다. 이후 1977년 극락전의 복원을 시작으로 현재는 경내 대부분의 절집들이 복원되었다.

청평사의 사찰 구역을 지나 서측 계곡을 따라가면 청평사 아래에서 갈라진 서천이 흐르고 있다. 절 바로 아래 계곡에서부터 선동 입구까지 이어지는 서천 구역은 계류와 수석, 암반이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운 경승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곳에는 와룡담폭포, 와룡담, 송대, 환적당 부도, 설화당 부도, 기우단뿐만 아니라 근래에 세운 해탈문도 자리하고 있다.

서천 구역을 거슬러 산길을 계속 오르면 계곡이 좁아지면서 경사가 급해지는 협곡 지형에 다다르게 된다. 이자현의 친필이라는 ‘청평선동(淸平仙洞)’이 암각된 암벽이 나타나는데 그 아래로 난 바위 경사로는 마치 신선의 세계로 진입하는 길이 험난하듯이 밧줄에 의지하지 않고는 올라가기 쉽지 않다. 이 바위 협곡을 통과하면 비로소 선동, 즉 신선이 사는 동천에 이르게 된다. 이곳은 속세와 완전히 격리되어 있어 선계와 같은 느낌을 주는 곳으로 이자현이 즐겨 찾던 참선 장소다.

각자

이자현의 친필로 알려져 있는 청평식암 각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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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 입구에서 300m 정도 오르면 가파른 수직암벽에 이르게 된다. 이 입암(立巖) 옆에 문수원 중건 당시 이자현이 세운 암자인 식암(息庵)이 있다. 이자현은 식암에서 몇 달 동안 나오지 않고 참선에 몰두했다고 한다. 지금은 이 자리에 새롭게 적멸보궁이라 이름 지은 건물이 세워져 있다. 적멸보궁 옆 암벽에는 ‘청평식암’이라는 각자가 새겨져 있다. 더불어 석대, 선동암터, 나한전터, 석암상폭, 석암하폭, 선동 부도, 진락공 세수터, 척번대 등 동천을 상징하는 요소들이 즐비하다.

이제 이곳에서 산길을 따라 능선을 오르면 오봉산에서 이어진 지맥에 위치한 견성암터가 나온다. 험준한 산세로 청평사 구역 내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며 견성암터를 비롯하여 천단, 소요대가 위치하고 있다. 청평사 원림의 경치와 소양호 호반의 모습이 한눈에 조망되는 부감(俯瞰) 경관이 아름답다. 천단 부근에는 촛대바위, 송대바위, 거북바위 등 기암괴석이 위치하고 있어 자연 경관의 모습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견성암 구역

견성암 구역에서 아래로 부감되는 조망 경관이다. 근경으로는 촛대바위가 위치한 아름다운 기암괴석, 멀리는 소양호가 내려다보인다. 춘천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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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바위

견성암 구역의 천단 주변에 위치하고 있는 기암인 거북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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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나라에 현존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정원 유적은 매우 희소하다. 조선왕조 500여 년을 지나는 동안 많이 훼손되기도 했지만 남아 있는 유적조차 주로 북한 지역에 분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충남 아산에 있는 맹사성 고택이 있지만 정원 유구가 정확히 당시의 것이라고 할 수 없고, 이에 관한 내용도 거의 문헌에 의존하고 있어 그 실체를 짐작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면 청평사 고려선원은 고려시대 원림 유적을 대표하는 조경유산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고려의 참선을 위한 도량으로서 청평사의 의미는 매우 크며 고려시대 정원에 관한 면모를 찾아낼 수 있는 유일한 선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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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범 집필자 소개

서울시립대학교 원예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석사,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표 저서로는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우리 명승기행: 역사문화 명승 편》, ..펼쳐보기

출처

우리 명승기행
우리 명승기행 | 저자김학범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소소하지만 소중한 우리 유산의 중요성과 의미를 다시 한 번 일깨운다. 특징에 따라 명승 49곳을 고정원, 누원과 대, 팔경구곡과 옛길, 역사·문화 명소, 전통산업·문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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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청평사 고려선원우리 명승기행, 김학범,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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