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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리 명승기
물외무우의 한거

초연정 원림

요약 테이블
문화재 지정 명승 제25호
소재지 전남 순천시
무거움은 가벼움을 근거로 하고
重爲輕根
고요함은 소란스러움을 바탕으로 하지
靜爲躁君
그리하여 성인은 종일토록 행함에
是以聖人 終日行
어느 한쪽으로 치중하지 않아
不離輜重
비록 아름다운 경치를 볼지라도
雖有榮觀
안거하며 초연하게 바라보네
燕處超然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글이다. 노자는 “초연(超然)이란 인간 내면의 근본, 근저에 가까워진 상태에서 외부의 세계와 공명을 일으키는 경지를 말한다. 초연이 되지 않고 몰연(沒然)이 되면 바탕과 괴리되어 미혹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무릇 성인은 언제나 초연에서 언행하고 사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말엽 유불선에 모두 능했던 월창거사 김대현(金大鉉)은 《술몽쇄언(術夢풏言)》에서 ‘초연’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세상에는 간혹 세간의 속된 일에서 벗어나 홀로 근심 없이 사는 이가 있다.” 이렇듯 조선시대 사류에게는 물외(바깥세상)에 초연하여 높은 절개를 지닌 채 세속에 물들지 않고 근심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높게 생각하는 풍조가 있었다.

초연정 원림은 순천시 송광면 삼청리 왕대마을의 모후산(918m)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모후산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와 모후산 아래 중봉에서 흘러내린 능선이 아래위로 주암호에 맞닿아 양쪽 능선 안에 자리한 곳이 바로 왕대마을이다. 마치 육지 속의 섬과 같은 매우 안온한 마을이다.

초연정 원림의 전경

모후산 계곡에 위치하여 원생의 자연, 깊은 산속에 있는 느낌을 준다. 왕대마을에서 모후산으로 오르는 길에서 보면 초연정의 지붕이 아래로 보이고 그 앞으로는 마치 원시림이 펼쳐져 있는 것 같다.

ⓒ 김영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주암댐의 건설로 형성된 주암호에 물이 차면서 그 위로 놓인 신평교만이 왕대마을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었다. 신평교를 지나 삼청길을 따라 오르면 유경마을이 나오고 조금 더 올라가면 왕대마을에 다다른다. 초연정은 이 마을의 뒷산인 모후산 아래, 마치 속세를 초월한 듯한 모습으로 위치하고 있다. 이 정자는 원래 1788년(정조 12) 대광사(大光寺)의 승려가 창건하여 수석정(水石亭)이라 이름 짓고 수도하던 곳이다. 그 후 1809년(순조 9)에 청류헌(廳流軒), 조진충(趙鎭忠)이 중창하여 순창조씨의 제각으로 사용했으며, 그의 아들 조재호(趙在浩)가 다시 중건하고 1888년(고종 25)에 송병선이 초연정이란 이름으로 개칭했다.

초연정

새싹이 돋아나는 신록의 초연정이다. 주변에 자라고 있는 낙엽수들이 아직은 우거지지 않아 초연정 안팎으로 시야가 탁 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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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앞뒤에 툇마루가 있는 단층에 홑처마 팔작지붕의 정자다. ‘초연정(超然亭)’ 현판 옆에 ‘아천석(我泉石)’이라고 쓰인 현판, 건물의 개보수 관련 내용을 기록한 중수기, 그리고 송병선, 조후섭(趙後燮), 조인섭(趙仁燮) 등의 시문을 기록한 여러 개의 편액이 걸려 있다.

초연정 원림은 초연정과 주변의 외원(外苑)을 포함하여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 정자가 대부분 풍경이 수려한 강변이나 구릉에 지어져 확 트인 경관을 감상하는 것이 목적인데 반해 초연정은 마을 뒷산의 깊은 계곡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매우 드문 형태라 할 수 있다. 초연정에서는 나무에 가려져 바로 앞에 흐르는 계곡은 보이지 않으나 맑은 물소리가 들리는 것이 매우 특이하다.

초연정 외원의 계류

초연정 원림에는 인공적 요소가 거의 조성되지 않았다. 외원이라 할 수 있는 정자 앞의 계곡에는 암반과 계류 등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단지 인공적 요소라면 이러한 외원 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순환로가 개설되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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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정에는 큰 바위가 자리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고려 공민왕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홍건적의 난 때 공민왕 일행이 이곳 모후산에 머물렀다 하여 유경(留京)이라 부르다가 마을에서 300m 정도 떨어진 곳으로 다시 피신했다고 해서 왕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초연정의 바위에는 공민왕이 파천했던 당시 왕을 호위하던 5명의 장수가 깃대를 꽂았던 흔적이 있다고 하여 ‘깃대바위’라고도 부른다. 높은 암반 위에 축대를 1단으로 쌓고 건물을 앉혔으며, 바로 아래에는 연못의 유구가 있고 주변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초연정 앞의 모후산 자연 계곡은 유량은 많지 않으나 물이 맑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주변의 아름다운 암반과 암벽, 다양한 식물이 서로 어우러져 독특한 자연미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초연정 원림은 전통적인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조경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자연유산으로서의 가치가 큰 명승이기도 하다.

남도의 깊은 산속에 위치한 초연정은 그 이름대로 세속에서 벗어나 홀로 근심 없이 살아가기에 매우 좋은 환경을 지닌 별서정원이다. 이곳에서는 모후산과 중봉 사이로 멀리 형성된 계곡이 울창한 숲과 함께 조망된다. 특히 초연정 옆에 있는 커다란 바위는 상단부가 평평하여 이 위에 올라앉으면 앞으로 펼쳐지는 전망이 한층 더 넓게 열린다. 이 바위에 정좌를 하고 앉는다면 세상의 온갖 번뇌와 시름을 잊어버리고 물외무우(物外無憂)의 경지인 초연의 세계로 쉽게 몰입할 수 있을 것 같다.

초연정 원림이 위치한 순천시는 일찍이 많은 명승을 보유한 지방자치단체다. 국보, 보물, 사적, 천연기념물, 명승 등 모든 문화재가 종목별로 다 지정되어 있다. 2007년 12월 7일 처음으로 ‘초연정 원림’이 국가지정 명승 제25호로 지정된 후 ‘조계산 송광사 · 선암사 일원’, ‘순천만’ 등의 자연유산이 명승으로 지정되어 현재 순천시는 모두 3건의 명승을 보유하고 있다.

‘조계산 송광사 · 선암사 일원’은 오랫동안 불교문화를 발전시켜온 귀중한 불교 유적인 송광사와 선암사를 비롯해 이를 둘러싸고 있는 조계산의 자연 경관이 잘 보존됨으로써, 그 가치를 인정받은 명승이다. 또한 순천만은 수많은 철새를 품고 있는 너른 갯벌과 드넓게 형성된 갈대밭이 소중한 경승지로 평가되어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이처럼 순천시는 문화재청의 명승 업무가 활발해지기 시작한 초기부터 많은 명승을 보유했다. 그 이유는 바로 순천시가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산자수명한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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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범 집필자 소개

서울시립대학교 원예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석사,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표 저서로는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우리 명승기행: 역사문화 명승 편》, ..펼쳐보기

출처

우리 명승기행
우리 명승기행 | 저자김학범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소소하지만 소중한 우리 유산의 중요성과 의미를 다시 한 번 일깨운다. 특징에 따라 명승 49곳을 고정원, 누원과 대, 팔경구곡과 옛길, 역사·문화 명소, 전통산업·문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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