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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리 명승기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명당

청암정과 석천계곡

요약 테이블
문화재 지정 명승 제60호
소재지 경북 봉화군

내성천의 상류, 봉화의 석천계곡은 비경이다. 울창한 숲 사이로 난 협곡은 아주 좁게 파여 S자형으로 큰 굽이를 이루고 있다. 마치 태극의 문양처럼 휘돌아 흐르는 사행천이다. 아름다운 석천계곡을 따라 난 옛길을 거슬러 오르다가 한 굽이 왼쪽으로 돌면, 곧바로 고졸하고 청량하기 그지없는 풍광을 만나게 된다. 여울 건너로 길게 자리한 석축 위의 정자가 창송으로 감싸여 있는 모습은 한 폭의 풍경화나 다름없다. 정자 앞의 계곡은 커다란 너럭바위, 깨끗한 강자갈과 모래, 그리고 수정같이 맑은 계류가 옛날의 순수한 경치를 그대로 간직하며 흐르고 있다.

이 계곡을 지나야만 천상의 새라는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천하의 명당을 만날 수 있다. 석천계곡은 바로 이러한 이상향의 세계, 신선이 사는 선계로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장소다. 이 계곡은 통과의례가 이루어지는 마을의 문으로 닭실마을의 대문과도 같은 곳이다. 정자 앞의 개울을 건너 다시 한 번 오른쪽으로 굽이진 협곡을 돌아서면 닫혔던 시야가 눈앞에 펼쳐지면서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인 ‘금계포란지국(金鷄抱卵之局)’의 명당을 만나게 된다.

닭실마을

전통 기와집으로 구성된 닭실마을의 전경으로 왼쪽 끝이 청암정이고, 바로 그 옆이 종가다. 문화재연구소 제공.

ⓒ 김영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닭실마을은 오늘날 유곡리(酉谷里)에 해당한다. 유곡이란 ‘닭실’을 한자로 그대로 옮긴 말로 ‘금계포란’의 풍수형국에서 유래한 마을 이름이다. 닭실마을의 동쪽에 있는 옥적봉은 수탉, 서쪽의 백운령은 암탉을 닮았다고 한다. 현재 닭실마을은 봉화읍에서 울진 방향으로 난 신작로인 36번 국도에서 마을로 들어가지만, 예전에는 석천계곡을 지나는 길이 주된 진입로였다. 내성천의 지류를 따라 올라가는 길로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봉화읍에서 영동선 철길 아래로 흐르는 내성천을 따라 북쪽으로 200m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물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여기서 우측의 개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더 가야 석천계곡으로 향할 수 있다.

닭실마을은 전통한옥으로 구성되어 있어 영남 지방의 기품 있는 반촌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 이곳은 조선 중기 지리학자 이중환(李重煥, 1690~1752)이 《택리지(擇里志)》에서 4대 길지 중 하나라고 칭송한 명당이다. 또한 닭실마을은 안동권씨 세거지로 가문에서도 닭실권씨라는 독립적인 세력을 이루었고 종가인 충재 권벌(權撥, 1478~1548)의 고택을 중심으로 다수의 한옥이 마을 전체를 구성하고 있다. 중종조의 문신으로 강직한 성품을 지녔던 권벌은 기묘사화로 파직을 당하자 이곳에 집을 지어 닭실마을의 터를 닦았다.

봉화 닭실마을의 청암정(靑巖亭)과 석천계곡은 함께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석천계곡은 문수산을 분수령으로 남서류하는 창평천과 닭실마을 뒤에서 흘러내리는 동막천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한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석천계곡에는 석천정사가 있는데, 이 주변은 닭실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이처럼 청암동천이라 불리는 수려한 석천계곡의 경치는 길지로 평가되는 닭실마을과 함께 신선의 세계로도 승화된다.

석천계곡

S자형으로 굽이진 석천계곡에 있는 석천정사와 그 위로 아늑하게 자리한 닭실마을의 모습이다.

ⓒ 김영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청암정은 권벌이 닭실마을에 종가를 지으면서 조성한 정자로 1526년(중종 21) 거북 모양의 너럭바위 위에 세워졌다. 그리고 주변에 못을 판 후 냇물을 끌어들여 물을 채워놓고, 장대석으로 좁고 긴 돌다리를 축조해 청암정에 다다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청암정은 바위를 평평하게 다듬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살리면서 주춧돌과 기둥 길이를 조정하여 지은 집으로 주추의 높이가 각각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자연을 활용하여 정자를 세운 옛사람들의 지혜와 자연암반을 이용하여 청암정을 짓고 주위에 연못을 만든 매우 탁월한 조경기법을 볼 수 있다.

청암정

거북바위 위에 지어진 청암정은 연못과 장대석 다리 등이 어우러진 매우 아름다운 고정원이다. 문화재연구소 제공.

ⓒ 김영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청암정이 놓여 있는 너럭바위는 물속에 든 거북으로 비유된다. 물속에 거북이가 자리하고 있고, 그 위에 정자가 놓인 형상이라는 것이다. 정자 한쪽에 마련된 방에는 마루가 깔려 있다. 처음에는 온돌방으로 꾸며졌고, 바위 둘레에 연못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집을 짓고 난 후 온돌방에 불을 지폈는데, 바위가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괴이하게 여기던 차에 한 스님이 이곳을 지나다가 이 바위를 가리켜 거북바위라고 말했다. 정자의 방에 불을 지피는 것은 거북이 등에다 불을 놓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여 아궁이를 막은 다음 주변의 흙을 파내고 물을 담았다고 한다. 이렇게 물을 줌으로써 청암정을 등에 지고 있는 거북이가 살기 좋은 지세를 만들 수 있었다. 거북바위에 지어진 청암정은 날아갈 듯 날렵한 모습으로 바위 위에 가볍게 올라앉아 있으며, 정자 내에는 ‘청암정’이라는 당호와 함께 미수 허목이 전서체로 쓴 ‘청암수석(靑巖水石)’ 편액이 걸려 있다.

석천계곡은 닭실마을의 동쪽과 서쪽을 흐르는 창평천과 동막천이 마을 앞에서 합류하여 하나가 된 후에 물이 빠지는 수구를 감추듯이 돌아 나가는 곳에 위치해 있다. 이처럼 수구가 닫혀 있기 때문에 닭실마을의 상서로운 지기가 유실되지 않고 응축되어 명당지세의 터전을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

석천계곡에는 권벌의 맏아들인 권동보(權東輔, 1517~1591)가 지었다는 석천정사(石泉精舍)도 자리하고 있다. 그는 양재역벽서 사건으로 아버지 권벌이 삭주로 귀양을 가 1년 만에 사망하자 관직을 버리고 20년간 두문불출한 올곧은 선비였다. 선조 때 아버지의 무죄가 밝혀지자 복관되어 군수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전원으로 돌아가 이 계곡 위에 석천정사를 지었다. 그는 이곳에서 산수를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

석천정사

암반, 계류, 창송으로 우거진 능선이 정자의 건물과 함께 빼어난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문화재연구소 제공.

ⓒ 김영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석천정사는 계곡의 암반 위에 석축을 쌓은 뒤 지어진 팔작지붕의 한옥이다. 정자 아래로는 맑은 계류가 흐르고 뒤로는 창송으로 우거진 능선이 배경이 되어 인공의 정자와 원생의 자연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석천정사의 난간에 기대면 계곡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석천계곡의 모습 또한 빼어난 절경이 아닐 수 없다.

청암정과 석천계곡은 본래 사적이었으나 고정원이 명승으로 편입되면서 2009년 명승이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고정원을 발굴해 명승으로 지정하려는 노력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은 매우 미흡한 상태다. 경주의 포석정을 비롯해 서출지, 안압지, 부여의 궁남지 등은 아직도 사적으로 분류되어 있다. 이러한 고정원을 명승으로 다시 재분류하는 작업과 함께 다수의 고정원을 발굴하여 명승으로 지정하는 일이 향후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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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범 집필자 소개

서울시립대학교 원예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석사,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표 저서로는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우리 명승기행: 역사문화 명승 편》, ..펼쳐보기

출처

우리 명승기행
우리 명승기행 | 저자김학범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소소하지만 소중한 우리 유산의 중요성과 의미를 다시 한 번 일깨운다. 특징에 따라 명승 49곳을 고정원, 누원과 대, 팔경구곡과 옛길, 역사·문화 명소, 전통산업·문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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