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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리 명승기
고반원터에 지은 별서

임대정 원림

요약 테이블
문화재 지정 명승 제89호
소재지 전남 화순군
동복현(同福縣) 사평촌(沙坪村)에 집을 지었는데
계산(溪山)의 수석(水石)이 매우 아름다웠다
그 원(園)을 고반이라 하고
자호(自號)를 ‘고반원 주인(考槃園主人)’이라 했다
- 남언기, 《고반유편(考槃遺編)》 중에서

16세기 후반 퇴계로부터 ‘동방의 도학을 전수할 사람’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남언기(南彦紀, 1534~?)는 전라도 동복현 사평촌에 정자를 짓고 은둔한다. 그는 이 정원을 고반원이라 하고, 자신의 호를 스스로 고반이라 짓는다. 고반이란 《시경(詩經)》의 〈위풍(衛風) 고반편〉에 “고는 이룬다는 뜻이고, 반은 머뭇거려 멀리 떠나지 않는 모양이니 은거할 집을 이룬다는 말이다(考成也 槃盤桓之意 言成其隱處之室也)”라고 주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고반은 은일자가 은거할 집을 마련했다는 뜻으로 세속을 떠나 산수를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화순의 임대정 원림은 남언기가 조성한 고반원에서 유래했다. 그는 고반원에 초막을 짓고 자연을 벗하며 일생을 보냈다. 남언기는 1568년(선조 1) 학문이 뛰어나 동몽교관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이곳에 내려와 오로지 학문을 닦고 은일생활을 즐겼다. 그 후 300여 년이 지난 19세기 후반 민주현(閔胄顯, 1808~1882)이 귀향하여 고반원의 옛터에 정자를 건립하고 임대정(臨對亭)이라 명명했다.

임대정은 송나라의 명유, 주돈이(周敦頤)가 지은 시에서 가져온 명칭이다. 주돈이는 자신의 향촌생활을 “새벽 물가에 임하여 여산을 바라보네(終朝臨水對廬山)”라고 묘사했는데, 염계 주돈이를 흠모하던 조선사회의 유림들은 그를 본받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민주현 역시 주돈이의 시구에서 취한 자구를 합성해 그가 새로 지은 정자를 임대정이라 명명한 것이다. 이처럼 조선사회에 크나큰 영향을 준 주돈이는 특히 연꽃을 사랑했다. 그는 연꽃을 군자의 꽃이라 칭하며 〈애련설(愛蓮說)〉이라는 시를 남긴다.

진나라의 도연명은 국화를 가장 사랑했고
당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모란을 사랑했다
하지만 나는 유독 연꽃을 사랑한다
(중략)
향기는 멀리 있을수록 더욱 맑으며
우뚝하고 맑게 심어져 있어 멀리 바라봄이 좋고
가까이 감상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평하건대 국화는 은일을 상징하는 꽃이요
연꽃은 꽃 중의 군자일 것이다

전남 화순읍에서 동남쪽 보성 방향으로 10km 정도 가면 남면사무소 소재지인 사평리에 이른다. 이곳은 조선시대 행정구역으로는 동복현에 속했다. 현재 사평촌(지금의 사평리)을 돌아 흐르는 외남천가에 임대정 원림이 자리하고 있다. 외남천에 놓인 사평교를 건너자마자 우측 방향으로 난 사평길을 따라서 500m 정도 내려가면 임대정 원림에 다다른다.

임대정 원림은 상원과 하원으로 나누어진다. 정자가 있는 상원은 지대가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하고, 하천 방향의 낮은 지대에는 지당 중심의 하원이 조성되어 있다. 사평길에서 상사마을로 분지된 마을도로에 진입하면 곧바로 임대정의 상원으로 연결된다. 이곳에서 가장 처음에 만날 수 있는 정원 시설은 자연석으로 세워놓은 입석이다. 이 돌에는 ‘사애선생장구지소(沙厓先生杖屨之所)’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여기서 ‘장구’라 함은 지팡이(杖)와 신발(屨)을 의미하는데 ‘장구지소’는 즐겨 찾던 곳, 혹은 흔적이 묻어 있는 장소라는 뜻이다. 즉 임대정 원림은 ‘사애 민주현이 즐겨 찾던 곳’을 말한다.

임대정의 상원은 정자를 중심으로 정원이 형성되어 있다. 높은 지반에 위치하고 있지만 매우 평평하다. 상원의 남쪽 끝부분에는 임대정이 자리하고, 정자 앞으로는 작은 규모의 사각형 연못(방지)이 조성되어 있다. 이 방지에는 한가운데 둥근 섬(원도)이 있는데 이 지당은 우리 선인들이 가장 중요시했던 음양의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방지 안의 섬 정면에는 조그마한 입석이 세워져 있고 ‘세심(洗心)’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깨끗한 마음을 지니고자 한 선비의 정신이 깃든 글이다.

임대정 근경

방이 있는 유실형 정자인 임대정은 호남 지방에 많이 지어진 정자 형태다.

ⓒ 김영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방지 앞에는 평평한 돌을 놓아두었는데 3면에 모두 음각이 되어 있다. 앞면에는 ‘걸쳐 앉는 돌’을 의미하는 기임석(跂臨石), 오른쪽 면에는 ‘연꽃의 향기가 멀리 흩어지는 것’을 뜻하는 피향지(披香池), 왼쪽 면에는 ‘연꽃의 맑은 향기를 붙잡아 당긴다’는 의미의 읍청당(揖淸塘)이 새겨져 있다. 피향지와 읍청당은 각기 ‘향’과 ‘청’이라는 글자가 중간자로 구성된 어휘인데 주돈이의 〈애련설〉의 “향기는 멀리 있을수록 더욱 맑다(香遠益淸)”는 구절에서 유래되었다. 이러한 각자들은 모두 조선의 유림으로서 민주현이 따르고자 했던 선비의 정신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상원의 방지는 산골짜기에서 끌어들인 물을 수원으로 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넘친 물이 홈통(飛溝)을 통해 폭포처럼 하원의 지당으로 떨어진다. 하원은 낮은 지형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상지와 하지 두 개의 연못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연못은 자연 형태를 지니고 있는데, 수구를 통해 연결된다. 상지는 남쪽에 위치하며 안에 두 개의 섬이 있고 하지는 북쪽에 자리하여 한 개의 섬을 못 안에 두고 있다. 섬 안에는 모두 남쪽 지방에서 잘 자라는 배롱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아울러 소나무, 느티나무, 벚나무, 은행나무, 향나무, 단풍나무, 대나무 숲이 어우러져 정원을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하원의 하지

못 안에 하나의 섬이 조성되어 연이 가득 심겨진 하원의 하지 모습이다.

ⓒ 김영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임대정 원림 외에도 호남 지방에는 이러한 고정원이 많다. 담양의 소쇄원, 명옥헌 원림을 비롯해 보길도의 부용동 원림에 이르기까지 다른 어느 지방보다도 많은 고정원이 보존되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지금까지도 시서화(詩書畵)를 즐기고 풍류와 전통을 지키려고 하는 남도 사람들의 오랜 문화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임대정 원림은 2012년에 비로소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전국에는 아직도 방치된 채 남아 있는 고정원이 많다. 하루빨리 아무런 손길 없이 훼손되어 가고 있는 다수의 고정원을 조속히 찾아내 국가유산으로 지정하고 보존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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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범 집필자 소개

서울시립대학교 원예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석사,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표 저서로는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우리 명승기행: 역사문화 명승 편》, ..펼쳐보기

출처

우리 명승기행
우리 명승기행 | 저자김학범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소소하지만 소중한 우리 유산의 중요성과 의미를 다시 한 번 일깨운다. 특징에 따라 명승 49곳을 고정원, 누원과 대, 팔경구곡과 옛길, 역사·문화 명소, 전통산업·문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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