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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전통포구의 마을숲
법성진 숲쟁이
문화재 지정 | 명승 제2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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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전남 영광군 |
칠산 바다에 돈 실러 나간다
영광 법성으로 돈 실러 가세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포구 법성포는 조기로 유명하다. 칠산 바다와 법성포구의 조기 파시는 말 그대로 돈이 넘치는 어물시장이었다. 법성포는 서해에서 가장 품질 좋은 조기가 잡히는 칠산 앞바다에서 들어오는 조기배로 파시를 이루었기 때문에 “영광 법성으로 돈 실러 가세”라는 말이 〈뱃노래〉로 불릴 정도로 많은 보부상들이 모여들어 매우 번창했던 포구다. 법성포는 삼국시대부터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중국, 일본과의 해상 교통로에 위치했던 우리나라 서해안의 대표적인 항구였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에 위요되어 아늑한 지형을 이루고 있는 법성포는 매우 특이한 경관을 보여주는 해안마을이다. 법성포의 포구에서 마을 뒤편을 두르고 있는 능선을 바라보면 지평선에 가로로 길게 조성되어 있는 수림대를 볼 수 있다. 바로 영광의 명소인 ‘법성진 숲쟁이’다. 고려시대 이래 전라도에서 가장 번창한 포구였던 법성포와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인의산 자락의 잘록한 능선과 법성진성(法聖鎭城) 위에 조성된 숲이다.
‘숲쟁이’란 숲정이의 사투리로 마을이나 도시 근처에 특별한 목적으로 조성된 숲을 의미하는 용어다. 또한 ‘쟁이’란 재, 즉 성(城)을 의미하는 어휘로도 쓰여 ‘숲쟁이’는 숲으로 된 성을 말하기도 한다. 오늘날 도시의 허파와도 같은 도시녹지, 혹은 도시공원과 비교되는 공원녹지로서 전통마을의 시설로 친다면 곧 마을숲이라 할 수 있다. 본래 마을숲은 대부분 마을이나 도시의 입구, 혹은 물이 흘러 나가는 곳에 수구막이로 조성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법성진 숲쟁이는 특별한 위치에 아주 특별한 형태로 조성되었다.
이 숲은 법성포 마을에서 홍농 방향으로 연결된 도로의 고갯마루 부분에 좌우측으로 능선을 따라 법성리와 진내리에 걸쳐 조성되어 있다. 법성포의 후면을 두르고 있는 산세는 인의산을 시작으로 좌측 능선이 대덕산 방향으로 이어지고 우측 능선은 진내리 방향으로 뻗어 내린다. 서쪽의 진내리 방향으로 인의산의 자연림이 끝나는 남쪽 부분에서 시작되는 숲쟁이는 차도가 가로지르는 부분까지 완만한 하향 경사면에 조성되어 있다. 또한 다시 도로 건너편으로 연결되어 오르막 경사로 이루어진 산 능선을 따라 길게 선형으로 마치 두 개의 산을 연결하듯이 숲이 형성되어 있다. 산 능선을 따라 형성된 마을숲으로는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다. 이 숲은 본래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인데 지방도로가 개설되면서 두 개로 나뉘어져 현재는 도로 위에 놓인 부용교가 숲을 연결하고 있다.
진내리 능선 위에 식재된 숲쟁이는 특이하게도 법성진성을 따라 조성되어 있는데 1514년(중종 9) 이 성을 축조할 때 함께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법성진성의 윗부분에 줄지어 서 있는 수림대는 성이 끝나는 산 아래까지 심겨져 있고 전체 길이가 300m에 달한다. 수종은 느티나무가 가장 많고 그밖에 팽나무와 개서어나무가 다소 섞여 있다. 그러나 진내리 능선의 법성진성을 따라 심겨진 나무는 곰솔이 대부분이다. 아마도 느티나무, 팽나무 등의 활엽수를 대체해 근래에 새로 심겨진 것으로 보인다.
마을숲은 일반적으로 휴양 위락의 기능을 수행하는 마을공원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마을숲에는 공원 시설이 형성되는데 법성진 숲쟁이에도 와우정과 부용교를 비롯해 다양한 시설이 조성되었다. 진내리 방향의 숲에도 야외무대, 그네, 씨름장과 같은 시설이 만들어졌으나 현재는 숲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과도한 시설들은 철거되었다.
일반적으로 마을숲은 마을의 고유한 문화 활동의 장소로서 기능한다. 그중 가장 많이 행해지는 것이 마을제사인데 보통 공동 의례로 행해진다. 그래서 마을숲에는 성황목, 제각, 장승, 솟대, 돌탑처럼 마을의 문화를 상징하는 전통적인 시설이 설치되는 경우가 많다. 법성진 숲쟁이에도 이처럼 전통문화를 상징하는 문화 요소가 존재하고 마을제의 또한 행해지고 있다. 이 숲에는 진내리 방향에 당산이 있고, 숲 내에서는 매년 음력 5월에 유명한 법성포 단오제가 거행된다.
법성포 단오제는 400년을 이어온 서해안 최대의 단오절 행사로 강릉 단오제와 함께 동서 단오제로 쌍벽을 이루는 전통제의이자 축제다. 조선 중기부터 매년 시행된 전국 규모의 행사다. 법성포 단오제가 이토록 규모가 큰 행사로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법성포에 호남 지방 전역에서 세금으로 거둬들인 곡식을 보관하는 조창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였고, 봄이면 서해안 최대의 조기 파시가 열려 수많은 상인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기 때문이었다.
법성진 숲쟁이는 방풍의 기능도 하고 있다.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아울러 마을의 경관을 아늑하게 만드는 풍수적 장치와 아름다운 경관을 위한 풍치 목적으로도 조성되었다. 또한 거대한 노거수의 숲을 이루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놀이와 휴식, 문화행위를 수용하는 장소가 되었다.
숲쟁이를 주무대로 한 단오제는 오랜 세월 동안 법성포의 축제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장구한 역사와 전통에도 불구하고 1907년경 일제에 의해 강제로 중단되어 그 맥이 끊어졌었다. 조창이 있던 법성에서 의병과 일본군의 전투가 자주 발발하여 취해진 일본의 강압 때문이었다. 거의 40여 년간 단절되었던 단오제는 광복 후 1946년에 다시 부활했다. 단오제는 용왕제, 인의제, 당산제 등의 제의행사로 먼저 시작된다. 제의를 드리는 절차가 끝난 후에는 선유놀이, 공연, 투호, 그네뛰기, 씨름, 제기차기 등 다양한 행사가 이어진다. 선유놀이는 조세를 실어 나르던 수십 척의 배가 동원되어 선상에서 풍악을 울리며 즐기는 뱃놀이로 조선시대부터 법성포에 전해 내려오는 전통놀이다.
법성은 불교의 전래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백제시대 불교가 처음 전해질 때 법성포구를 통해 들어왔다고 한다. 인도의 고승 마라난타 존자가 실크로드와 중국 동진을 거쳐 백제 침류왕 원년(384)에 해로를 통해 우리나라에 최초로 입국한 곳이 바로 법성포다. 법성포의 백제시대 지명은 아무포(阿無浦)였다. 이것은 마라난타가 아미타불 정토신앙을 전래한 포구라는 것에서 연유했으며, 그 후 성인이 성스러운 법을 전한 포구라는 뜻의 법성포(法聖浦)로 다시 바뀌게 된 것이라 한다.
‘영광 법성진 숲쟁이’는 법성진성과 마을숲이 어우러진 전통문화 경관이다. 다양한 문화적 의미가 깃들어 있는 숲쟁이는 법성포와 함께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또한 영광의 단오제가 행해지고 조선시대 수군진의 모습을 보여주며 파시로 번창했던 포구의 영광을 전해주는 의미 깊은 장소다. 이러한 영광의 지역문화를 잘 보여줄 수 있도록 계속해서 가꾸어야 할 소중한 역사 · 문화 명승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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