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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술관에 간
화학자
마티스

〈춤〉

색의 주기율

색채 표시법에는 RGB 체계와 CMY 체계가 있다. 컴퓨터로 색채 작업을 할 때면 둘 중 어느 하나로 지정해 주어야 한다. RGB는 모니터상에서 작업할 때의 빛에 의한 가산혼합의 색채이고, CMY는 잉크나 물감을 사용할 때의 감산혼합 색채로 시안(Cyan : 인쇄 잉크로서 원색인 파랑보다 약간 밝은 파랑), 마젠타(Magenta : 인쇄 잉크로서 원색인 빨강에서 약간 분홍 계열을 띠는 색), 옐로(Yellow)을 말한다.

이론적으로는 물감을 섞을 때 이 세 가지 색으로 모든 색을 만들 수 있다. CMY를 다 섞으면 검정이 되는데, 이런 혼색을 감산혼합이라고 한다. 물감의 색소가 다른 색은 흡수하고 특정한 색만 반사하므로 두 색을 섞으면 양쪽의 색소가 각기 특정의 흡수대가 있어서 색을 나타내는 광자를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빛의 혼합을 이루는 3원색은 빨강(Red), 녹색(Green), 파랑(Blue), 즉 RGB다. 이 세 빛을 다 섞으면 흰빛이 된다. 빛이 합해지면 광자가 더 증가하므로 가산혼합이라고 한다.

인상파 화가들은 색을 섞을 때 감산혼합이 되어 색이 더 어두워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병치혼합을 사용하였다. 즉 순색을 팔레트 위에서 섞지 않고 캔버스 위에 병치시켜 우리 눈의 망막에 동시에 닿게 하여 빛의 혼합이 된 색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단색은 색이 아니다

마티스, 〈춤〉, 1909~10년경, 캔버스에 유채, 259.7×390.1cm,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헤리티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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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Henri Émile BenoIt Matisse, 1869~1954)의 작품 〈춤〉은 빨강, 녹색, 파랑, 단지 세 가지 색뿐이다. 이 세 가지 색은 빛의 3원색이다. 물감으로 그렸지만 빛의 3원색이 만들어 내는 현란함이 우리 눈을 자극한다. 또한 빨강과 녹색은 보색이다. 보색 관계에 있는 두 색을 섞으면 흰색이 된다. 한 가지 색만 바라보다가 하얀 종이로 눈을 돌리면 그곳에 보색의 잔상이 생긴다.

한 가지 색만 칠하면 주위에 보색 효과가 나타난다. 보색에 둘러싸인 색은 더욱 강렬한 느낌을 준다. 마티스는 분명히 물감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고 채색하였지만 빛의 3원색, 즉 RGB 3색을 사용하였다. 마티스의 작품에는 이처럼 RGB를 사용한 그림이 많다.

〈춤〉은 마티스의 그림을 꾸준히 사들이던 러시아 부호 세르게이 시츄킨(Sergei Ivanovich Shchukin, 1854~1936)의 의뢰로 탄생한 걸작이다. 마티스 예술의 진수인 단순성과 강렬함이 극대화한 그의 대표작이다. 푸른 하늘과 녹색 언덕이 극도로 단순화되었고, 다섯 명의 무희는 강렬한 붉은색으로 도드라져 있으며, 서로 손을 맞잡고 돌아가는 무한의 생명력을 만들어 냈다. 마티스는 색채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화면을 평면화하였다. 그는 단색의 색채는 의미가 없으며 색과 색이 만나면서 색들 간의 관계에 의해 진실된 색이 나타난다고 믿었다.

시츄킨은 〈춤〉을 모스크바에 있는 자신의 대저택 계단에 걸어 놓았다. 그는 이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마티스에게 이 그림과 짝이 될 만한, 음악을 주제로 한 그림을 또 의뢰했다. 마티스는 번잡하게 손님을 맞이하는 현관에서 층계로 헐떡거리며 올라갈 때와는 달리 2층에 올라서서는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분위기의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춤〉과 같은 색, 같은 형태의 구성이지만 조용하고 차분한 〈음악〉을 그리게 된 것이다. 바이올린과 피리의 선율이 색채와 함께 쾌활한 진동을 만들어 풍부한 감동을 주는 또 하나의 걸작이 탄생하여 불후의 2부작이 완성되었다.

마티스, 〈음악〉, 1910년, 캔버스에 유채, 260×389cm,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헤리티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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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함에서 원숙한 절제의 조화미로

마티스는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르카토캉브레지라는 지역의 중류층 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당시 대부분의 중류층 젊은이처럼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법률을 공부하여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고향에 돌아와 법률사무소의 서기가 되었다.

마티스는 맹장염으로 입원해 있던 중 옆 환자가 취미로 미술교본의 풍경화를 모사하는 것을 보고 흥미를 느껴 어머니가 가져다 준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수술 후 법률사무소에 복직해서도 계속 그림을 그렸다. 매일 아침 섬유 디자인 학교에서 데생을 배운 뒤 출근하였고, 점심시간에도 틈틈이 그림을 그렸으며, 퇴근 후에는 밤늦게까지 그림을 그리는 생활을 계속했다.

마티스는 결국 안정된 직업과 아버지의 반대를 뒤로 하고 미술을 공부하러 파리로 떠났다. 1892년 프랑스 최고의 미술 명문 에콜 데 보자르에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에콜 데 자르 데코라티프의 야간부를 다녔다. 여기서 평생의 친구인 화가 알베르 마르케(Albert Marquet, 1875~1947)를 만났다. 이후 재도전 끝에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했지만, 전통 기법만을 가르치는 분위기에 실망하던 중 상징주의 대가인 모로(Gustave Moreau, 1826~1898)의 화실에서 그림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모로는 대상을 화폭에 옮겨 담는 데 급급하지 말고 대상의 내면과 동화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가르쳤다. 이때부터 마티스에게서 색채화가로서의 천재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897년 마티스는 소시에테 나시오날 전람회에서 상을 받고 자신감이 생겼으며, 여러 모임에도 나갔다. 그러던 중 당시 신인상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피사로(Camille Pissaro, 1830~1903)를 만났고 그를 통해 세잔도 알게 되었다. 마티스는 훗날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화가가 누구냐고 묻자 주저 없이 세잔이라고 답했다. 시냐크(Paul Signac, 1863~1935)와 교류하면서 신인상파 점묘풍에도 영향을 받았으며, 고흐와 고갱(Paul Gauguin, 1848~1903)에게서는 격렬함을, 세잔에게서는 색채 대비와 조화를 본받았다.

그러나 마티스는 그들과 완전히 다른 그만의 예술을 창조하였다. 그는 끊임없이 탐구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화풍은 언제나 큰 폭으로 변하고 성숙해졌다. 그는 일관된 단순함과 강렬함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그의 색에 대한 열정은 20세기 회화의 일대 혁명이라 평가받는, 원색의 대담한 병렬을 강조하는 야수파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차츰 마티스는 강렬하고 개성 있는 색채 효과의 표출을 절제하기 시작하였고 화면은 조화와 평온을 추구하며 성숙해졌다. 1910년 뮌헨에서 열린 이슬람미술전과 그 이듬해부터 두 차례에 걸친 모로코 여행의 영향으로 통일된 색채의 장식적인 요소, 특히 아라베스크나 꽃무늬를 배경으로 한 평면적인 구성의 독특한 작품을 창조하였다.

마티스는 순도 높은 색면들이 서로 인접하면서 독특한 색감을 창조하는 그만의 예술을 확립함으로써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와 함께 현대미술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말년에 몸이 불편해지면서는 색종이를 오려 붙이는 독특한 화풍(〈푸른 누드〉)을 창조하며 새로운 회화의 지평을 열었다.

마티스, 〈푸른 누드〉, 1952년, 색종이에 가슈, 116.2×88.9cm, 프랑스 니스 마티스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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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림 집필자 소개

한양대학교 화학공학과와 동 대학원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 국립대학교(Universite Piere et Marie Curie)에서 고분자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결정구조의 아름..펼쳐보기

출처

미술관에 간 화학자
미술관에 간 화학자 | 저자전창림 | cp명어바웃어북 도서 소개

명화에 담긴 과학적 창의력! 과학자의 눈으로 본 미술에 관한 이야기와 미술과 함께하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명화 속에서 만나볼 수 있는 화학에 대한 흥미진진한..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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