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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술관에 간
화학자
드가

〈오페라 극장의 무용교실〉

동역학과 정역학의 공존

드가, 〈오페라 극장의 무용교실〉, 1878년, 캔버스에 유채, 81×76cm,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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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역학은 물체 내부의 변화를 다루는 학문이고, 동역학은 물체의 거시적 이동을 다루는 학문이다. 역학은 외부의 힘을 받은 물체가 내부적 스트레스(stress), 외부적 스트레인(strain)으로 반응하는 것을 말한다. 드가(Hilaire Germain Edgar De Gas, 1834~1917)가 그린 많은 발레 그림은 겉으로는 동적인 운동을 보여준다. 그러나 드가 그림의 특색은 내적이고 정적인 긴장을 함께 표현하는 것이다. 스트레인을 억제하면 스트레스가 증가한다. 드가 그림의 매력은 바로 이 대립에서 오는 긴장감에 있다.

클래식과 모던의 조화를 꿈꾼 화가

드가는 1834년 프랑스 파리의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유복하게 자라나 다른 화가들처럼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고 미술에 전념할 수 있었다. 아버지를 이어 사업가가 되기 위해 명문 루이르그랑 학교에 들어갔으며, 드로잉에서 발군의 실력을 나타내며 졸업했다. 1853년 법과대학에 입학하였으나 그만두고, 1855년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하여 미술가의 길로 들어섰다.

미술 애호가이면서 열린 지식인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의 결정을 존중하여 적극적으로 후원해 주었다. 드가는 미술학교에서 앵그르를 만났고 그의 조언대로 드로잉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루브르 박물관에서 르네상스와 고전주의에 이르는 작품을 700점 이상 모사하는 훈련을 했다.

드가는 카페 게르부아에서 마네와 친해졌고 마네를 중심으로 모이던 인상파 화가들과도 친해졌다. 과거와는 다른 현대성이 필요하다는 그들의 생각에 동조하여 마네가 주도하는 인상파전에 창립회원으로 참여하였고 이후 7회 한 번만 빼고는 계속 참가하였다.

그러나 드가의 화풍을 인상파라고 할 수는 없다. 그의 화풍을 정교한 드로잉과 고전적 구성에 바탕을 두었기에 순간의 빛을 포착하는 데 전념한 인상파에 동화될 수 없었다. 그는 카페 게르부아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며 고전성과 현대성을 조화시키려는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대립의 긴장감을 통한 조화

〈오페라 극장의 무용교실〉을 보면 마치 한 장의 사진을 보는 느낌이 든다. 이 그림에는 등장인물이 모두 일곱 명인데, 연습 중인 세 명의 발레리나와 휴식 중인 두 명의 발레리나, 한 명의 귀부인(아마도 어느 발레리나의 엄마일 것이다), 그리고 화면 속 유일한 청일점인 발레 교사 쥘 페로이다.

드가는 열세 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이후로 그의 인생에 여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아마도 너무 어리고 예민한 시기에 곁을 떠난 어머니로 인해 여성으로부터의 박탈감이 여성혐오증으로 발전한 것 같다. 그런데도 그는 귀부인, 무희, 가수, 배우 등 많은 여인을 그렸다. 그가 그린 어린 발레리나나 배우의 자태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성적인 모티브가 담겨 있다. 하늘거리고 투명한 무용복 때문에 소녀들의 육체가 더욱 인상 깊다.

발레는 고전과 현대를 조화시키려는 그에게 아주 적절한 주제였다. 그리스인들이 인체로부터 추구하였던 조화와 통일의 미학이 현대의 발레리나에게서 잘 나타난다. 당시 발레 그림은 장식적인 효과가 있어서 상당히 잘 팔렸다.

당시 일본 목판화 우키요에는 인물을 대담하게 클로즈업시키고 중요 오브제(objet)를 과감하게 자르는 화면 구성과, 단순하고 선명한 색상 등으로 프랑스 화단에 충격을 주었다. 우키요에의 판화는 고전적 미술 교육을 철저히 받은 드가의 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오페라 극장의 무용교실〉에서도 오른쪽 소녀의 몸이 예기치 않은 화면 절단으로 반이나 잘려 나가고, 배경은 동양의 병풍처럼 몇 개의 수직과 수평선으로 구획되었다.

19세기 일본 목판화 우키요에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19세기 일본 목판화 우키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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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의 예술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대립의 긴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대립되는 두 오브제 사이의 불안한 균형에서 오는 긴장감을 드러낸다. '바쁜 동작을 하고 있는 연습생들 vs 휴식하는 사람들', '발레와 관련 있는 사람들 vs 발레에 관심 없이 신문을 읽고 있는 부인', '여자 vs 남자', '하얀색 vs 검은색' 등 몇 개의 대립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대립의 긴장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화면의 가장 가운데에 갑자기 텅 빈 공간을 설정한다. 이렇게 그의 그림에서는 주제와 거리를 둔 소외된 존재가 종종 나타난다.

드가는 르네상스 화가들이 자주 쓰는 기법인 거울도 사용했다. 화면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큰 홀의 나머지 부분에 서 있는 참관인 중의 몇은 발레에 관심 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드가는 그들이 보고 있는 창밖의 파리 풍경을 뒷부분의 거울에 그려 넣었다.

〈오페라 극장의 무용교실〉은 우연히 포착된 한 순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구성이 면밀하게 계산되었다. 순간적인 발레 동작의 동적 불안정은 검은 색채의 무게까지 더한 귀부인의 정적인 안정과 대립된다.

드가, 〈발레 수업〉, 1871년, 패널에 유채, 19×27cm,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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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의 또 다른 발레 그림 〈발레 수업〉을 보면 왼쪽에는 사람들이 너무 치우쳐 있고 검은색의 무거운 피아노까지 있지만 오른쪽에는 불안한 공간이 있다. 그리고 연습에 열중하는 소녀들이 있고 등을 긁는 소녀가 있다. 이렇게 조화롭지 못한 구도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그러나 이것도 사실은 아주 면밀하고 의도적인 계산 위에 이루어 놓은 긴장된 대립이다.

미술의 정물성에 대한 도전

드가, 〈관중석 앞의 경주마들〉, 1866~68년경, 캔버스에 유채, 46×61cm,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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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는 운동감을 연구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그는 발레와 함께 당시 붐을 일으킨 경마에도 관심이 많아 경마장, 경주마, 기수 들의 그림도 많이 그렸다. 경주마를 그린 그림인 〈관중석 앞의 경주마들〉을 보면 모두 출발선에 정렬해 있는데 맨 끝의 말은 제어불능 상태로 날뛰고 있다. 관람자의 시선은 가운데 서 있는 심판의 말에서 시작하여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 날뛰는 말까지 가서 왼쪽에 모여 있는 관중을 살피다가 다시 말들을 따라 순환한다. 이것은 그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운동성이다. 발레리나건 경주마건 모두 그에겐 동작을 연구하기 위한 도구였다.

당시 영국의 사진가 머이브릿지(Eadweard J. Muybridge, 1830~1904)는 순간의 연속동작을 사진을 통해 가시화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는 열두 대의 사진기를 말의 주행로에 설치하고, 말이 각 사진기 앞을 지나며 끊는 선에 사진기의 셔터를 연결하여 25분의 1초 속도로 열리고 닫히도록 장치했다. 그 결과 말의 순간동작이 차례로 기록되었다.

제리코, 〈엡섬에서의 경마〉, 1821년, 캔버스에 유채, 91×122cm,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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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이브릿지, 1878년 12월 14일자 플아스 신문 「라 나튀르」에 게재된 〈달리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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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업 결과가 1878년 12월 14일자 프랑스 신문 「라 나튀르」에 게재되었고, 이전에 그려진 말의 움직임이 틀렸다는 것이 드러났다. 제리코(Jean Louis Ardré Théodre Géricault, 1791~1824)의 〈엡섬에서의 경마〉에서 두 앞발과 뒷발을 동시에 쭉 펴고 달리는 그림은 멋지게 보이지만 틀린 묘사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시인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는 풍요로웠던 19세기 중반 파리 한량들의 생활 태도를 일컬어 '플라뇌르'(Flaneur)라고 했다. 플라뇌르란 한가롭게 거니는 사람을 말하는데, 드가야말로 플라뇌르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드가는 자신을 파리의 클럽이나 카페를 드나들며 문화적 토론을 즐기는 도시적 플라뇌르라고 생각했다. 스물아홉 살에 그린 자화상을 보면 잘 차려 입고 당당하고 거만한 풍모를 한 그의 플라뇌르적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드가, 〈자화상〉, 1863년, 캔버스에 유채, 26×19cm, 포르투갈 리스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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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는 카페나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고 생각하고 기억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화실에 돌아와서 화폭에 그렸다. 이제까지와는 매우 다르게 가까이 눈을 대고 본 장면이나 올려다 본 시선으로 파악한 화면을 창조했다.

드가는 전통적인 미술 교육 위에 인상주의, 일본 우키요에 판화, 사진술에서 받은 신개념을 왕성한 탐구심으로 받아들여 독특한 그만의 예술 세계를 창조하였다. 유화뿐 아니라 파스텔·수채화·목탄 등 재료를 다양하게 사용하였고 혼용 기법도 자유롭게 구사하였다.

말년에는 조각까지 손대어 몇 개의 뛰어난 조각도 남겼다. 특히 청동으로 만든 조각에 천으로 진짜 무용복까지 입힌 청동 조각상은 그다운 걸작이라 할 수 있다.

드가는 자연보다 인공을, 순간보다 본질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드로잉을 사랑한 화가였다. 그는 자신의 묘비에 "드가는 드로잉을 진정 사랑했다"라고 새겨 달라고 부탁하고 1917년 9월 27일 세상을 떠났다.

드가, 〈소녀 무용수〉, 1879~81년경, 청동에 직물 스커트와 비단 댕기,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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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림 집필자 소개

한양대학교 화학공학과와 동 대학원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 국립대학교(Universite Piere et Marie Curie)에서 고분자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결정구조의 아름..펼쳐보기

출처

미술관에 간 화학자
미술관에 간 화학자 | 저자전창림 | cp명어바웃어북 도서 소개

명화에 담긴 과학적 창의력! 과학자의 눈으로 본 미술에 관한 이야기와 미술과 함께하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명화 속에서 만나볼 수 있는 화학에 대한 흥미진진한..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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