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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경 사회학자 길필란(S.C. Gilfillan)은 "로마제국은 납 중독으로 멸망했다"는 매우 충격적인 내용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당시 로마인들은 납의 지나친 애용가들이었다. 그들은 음식을 담는 그릇은 물론, 물을 연결하는 배수관과 화장품, 염료 등에 이르기까지 납 성분을 활용했다. 무엇보다 끔찍한 일은 로마인들이 '납설탕'이라는 감미료를 즐겨 먹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로마인들이 즐겨 마셨던 와인은 천연효소를 사용하여 주조하였기 때문에 신맛이 강했다. 그들은 신맛을 없애기 위해 납으로 만든 주전자에 포도즙을 넣고 끓여 사파(sapa)라고 하는 단 맛이 나는 초산납(납설탕)을 만들어 와인에 섞어 마셨다. 당시 사파는 와인 뿐 아니라 다른 식품에도 감미료로 사용되었다. 심각한 납중독을 일이키는 사파는 뇌 손상, 불임, 뼈 훼손, 신장 장애 등을 야기하면서 로마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특히 납이 미백 화장품의 주요 성분으로 사용되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여성들을 괴롭혔다. 클레오파트라(Cleopatra, BC69~BC30)는 황화안티몬을 주원료로 하는 '콜'(khol)이라고 하는 검은 가루로 그 특유의 눈 화장을 했고(이후 콜은 마스카라로 발전하게 된다), 이로 인해 안질에 시달렸다. 수많은 초상화의 모델이 된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1533~1603) 여왕은 '베니스분'이라는 납성분을 함유한 백분으로 천연두 자국과 거친 피부를 가렸다.
납이 든 화장품은 동양의 여성에게도 치명적이었다. 최근 일본 산업의과대학이 발표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막부시대 무사 계급의 후손들의 골격에서 다량의 납 성분이 발견되었다는 흥미로운 자료가 눈에 띈다. 당시 일본 무사들의 아내들이 사용하는 화장품은 후대에 치명적인 납중독을 일으키면서, 불임과 함께 기형아, 장애아, 지적장애아의 출산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다소 인과관계의 비약이 있어 보이긴 하나, 납중독이야말로 막부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중대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는 것이다.
화장품으로 인한 납 부작용은 20세기 초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 쌀가루로 만든 백분에 접착력이 뛰어난 납가루를 혼합하여 '박가분'(朴家粉)이라 불리는 화장품이 당시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였다. 물론 박가분을 사용한 여성들의 얼굴이 온전할 리 없었다. 수많은 여성들이 심각한 피부질환에 시달렸으며 일부 여성은 납중독 증상이 심해지면서 정신장애까지 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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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에 담긴 과학적 창의력! 과학자의 눈으로 본 미술에 관한 이야기와 미술과 함께하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명화 속에서 만나볼 수 있는 화학에 대한 흥미진진한..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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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납의 문화사 – 미술관에 간 화학자, 전창림, 어바웃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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