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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8월 1일 조간신문의 한 귀퉁이에는 뜬금없이 산소 얘기가 박스 기사로 실리곤 한다. 신문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지면에 연재되는 코너 명칭은 대략 '역사 속 오늘' 같은 것이다. 기사의 내용인즉슨 영국의 신학자이자 화학자인 프리스틀리가 1774년 8월 1일에 우리가 매일매일 호흡하는 산소를 발견했다는 얘기다.
의학에서는 사람이 5분간 산소를 호흡하지 못하면 뇌사 상태에 빠지고 8분이 지나면 죽는다고 한다. 이처럼 산소는 인류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원소이지만 사람들은 그 존재를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에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지구상의 동물 가운데 인간이 가장 총명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또 얼마나 무지한 존재인가 생각하게 된다. 수천 년 동안 산소 덕택에 살아왔으면서도 산소의 존재를 몰랐으니 말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8월 1일자 조간신문의 '역사 속 오늘' 기사에 프리스틀리 말고도 두 명의 화학자가 더 등장한다는 점이다. 셸레와 라부아지에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 세 명의 화학자는 서로 산소 발견의 공적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잠시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자.
1774년 프리스틀리는 커다란 렌즈로 빛을 모아 산화수은(Hg2O)을 연소시키자 수은과 함께 이름 모를 기체가 발생하는 걸 관찰했다. 그는 이 기체를 당시 유행하던 화학이론인 플로지스톤(Phlogiston)설에 적용하여 '탈플로지스톤 공기'라고 명명했다. 산소를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실험은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이후 라부아지에는 물질이 타는 것과 금속이 녹슬고 재로 변하는 것은 모두 산소와 반응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산소의 연소와 산화이론을 정립해낸 것이다. 아울러 라부아지에는 프리스틀리가 발견한 기체가 실은 공기 속에서 1/5의 부피를 가진다는 사실도 알아냈고, 무엇보다 인간의 호흡에 필수적인 원소라는 것도 규명했다. 라부아지에는 1777년 이를 '생명의 공기'로 부르면서 신맛(oxys)을 내는 것(genes)이란 뜻으로 'Oxygen'(산소)라는 이름을 붙였다.
프리스틀리는 라부아지에의 연구 결과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 화학 분야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업적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산소의 발견에 대한 당시의 평가가 라부아지에로만 모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산소와 관련해서 억울한 화학자는 프리스틀리만이 아니었다. 스웨덴 출신의 화학자 셸레는 프리스틀리보다 2년 앞선 1772년경 실험을 통해 산화수은이나 여러 질산염들을 가열하여 일반 공기보다 더 연소를 잘하는 무색, 무취의 기체를 발견했다. 그는 이 기체를 '불 공기'(fire air)라 명명한 뒤, 1775년경 실험 과정을 기술한 논문을 출판사에 보냈지만, 논문은 출판사의 내부사정으로 책으로 출간되지 못한 채 한동안 편집자의 서랍 안에 갇혀 있었다. 논문 안에 엄청난 실험결과가 수록돼 있다는 사실을 출판사는 2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어쨌거나 후대 사람들은 '산소의 발견'이라는 위대한 과학적 업적을 생각할 때마다, 한 명이 아닌 세 명의 화학자를 동시에 떠올리게 됐다. 아울러 과학자들은 '발표'와 '이론 정립'이야말로 '발견'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교훈을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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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에 담긴 과학적 창의력! 과학자의 눈으로 본 미술에 관한 이야기와 미술과 함께하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명화 속에서 만나볼 수 있는 화학에 대한 흥미진진한..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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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산소를 발견한 세 명의 화학자 – 미술관에 간 화학자, 전창림, 어바웃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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