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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술관에 간
화학자
라이트

〈에어 펌프의 실험〉

산소를 그린 화가

라이트, 〈에어 펌프의 실험〉, 1768년, 183×244cm, 캔버스에 유채, 영국 런던 테이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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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라이트 더비(Joseph Wright of Derby, 1734~1779)는 1734년 9월 3일 영국 더비에서 태어나 일생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내고 1779년 8월 29일에 더비에서 죽었다.

더비는 18세기 영국 산업혁명의 중심지였다. 라이트는 그다지 유명한 화가는 아니었지만 새로운 세계를 보는 눈을 가지고 있어서 중요한 역사적 기록을 놀라운 필치로 그려냈다. 당시까지만 해도 회화는 역사화가 아니면 초상화가 거의 전부였으며, 화가들은 왕족들의 주문에 따라 이런 그림들을 그려주는 일로 생계를 유지했다. 풍속은 격이 떨어지는 회화 소재였으나 라이트는 역사적 의식을 가지고 산업혁명과 과학에 대한 그림을 남겼다.

그림에 나타난 과학의 호기심

먼저 이 그림이 그려진 배경을 살펴보자. 그림이 완성된 1768년은 영국에 산업혁명이 전개된 때로 일반 대중이 과학에 큰 호기심과 흥미를 가진 시기였다. 화학계에서도 산소를 발견한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 1733~1804)와 셸레(Karl Wilhelm Scheele, 1742~1786), 연소 반응을 규명한 라부아지에와 베르톨레(Claude Louis Comte Berthollet, 1748~1822) 등이 활약하고 여러 원소가 속속 밝혀진 시기였다. 또한 이 그림과 같이 대중 앞에서 화학 실험을 재현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화가는 그림 곳곳에 많은 상징을 숨겨 놓았다. 오른쪽 구석의 창문 밖으로 달을 그려 넣었다. 당시 영국에는 루나 소사이어티(Lunar Society)라는 모임에서 산업혁명에 즈음하여 일어난 새로운 과학에 관해 토론을 하곤 했는데 라이트는 그것을 그려 넣은 것이다.

이 그림은 아직 산소의 정체가 대중에게 완전히 알려지기 전이었던 당시, 한 화학자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실험을 통해서 산소의 정체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는 장면이다. 유리병 안에 새를 넣고 에어 펌프로 공기를 빼면 새는 죽는다. 산소가 생명의 원소라는 사실은 당시의 대중에게는 상당히 신기하고 새로운 사실이었다.

유리병 안에 든 새는 대단히 아름다운 앵무새인데, 실제 실험은 쥐나 참새같이 작고 비용이 저렴한 동물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화가는 사실대로만 그리는 것은 아니다. 관객이 사람들의 극적인 표정을 보느라 유리병 안에 든 작은 동물을 지나칠 수도 있기 때문에 장식적인 앵무새를 역시 장식적인 몸짓을 담아 그려 놓았다.

그림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라이트는 대중의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등장인물의 다양성으로 아주 잘 표현하였다. 가운데에서 실험을 주도하는 긴 붉은색 가운을 입은 화학자의 머리칼이나 표정이 당시 화학자의 대중적 이미지를 나타낸다. 아직 연금술의 여운이 남아 있는 것일까? 어딘지 초췌해 보이고 머리칼도 더러워 보이며 완고한 표정과 어울리지 않는 옷들이 마치 마술사 같다.

왼쪽에는 한 쌍의 연인이 있는데 다른 모든 사람이 실험에 직접적인 데 비하여 이들은 서로에게만 눈길을 주고받으며 실험에는 거의 무관심한 것처럼 보인다. 라이트는 왜 이들을 그려 넣었을까? 당시 대중이 과학에 호기심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모든 대중이 그러했던 것은 아님을, 더 많은 대중이 과학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화가의 친과학적 바람을 나타낸 것은 아닐까?

탁자 위에는 마그데부르크의 반구까지 그려져 있다. 연인들 아래의 두 사람은 정말 실험에 매료된 표정과 몸가짐을 잘 보여준다. 한 관찰자의 손에는 시계가 들려져 있다. 새가 죽는 시간을 재려는 것일까? 오른쪽 끝에는 깊은 생각에 잠긴 사람을 그려 놓아서 전반적으로 동적인 화면에 정적인 부분을 첨가하여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었다.

그 위에는 새장 문을 잡은 소년이 있고, 가운데에 있는 큰 소녀는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것같이 보이며 작은 소녀도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새를 바라보고 있다. 아이들은 과학적 호기심보다는 새의 불쌍한 처지에 마음이 더 많이 가 있다. 아버지일 것 같은 남자가 소녀를 달래고 있다. 라이트는 미래의 주역인 이 아이들의 태도로부터 과학의 불행한 미래를 보여준다.

시인이 자신의 철학과 시상을 글로 표현하듯이 화가도 그림에서 상징을 통해 많은 것을 나타내려고 한다. 그림에서 숨은 상징들을 하나하나 찾아내는 것은 그림을 감상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조명 효과로 과학의 미래를 비추다

등장인물의 표정을 이처럼 극적으로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키아로스쿠로 기법 덕분이다. 라이트는 부분조명을 무대조명처럼 이용하는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의 키아로스쿠로 기법, 즉 화면 전체는 거의 밤처럼 어둡고 화면 가운데만 밝게 표현하여 분위기와 긴장감을 높이는 기법을 계승하여 실험의 호기심과 긴장감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하는 데 놀라운 효과를 내었다.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는 이탈리어 '밝다'(chiaro)와 '어둡다'(oscuro)가 결합된 말이다.

라이트, 〈촛불에 비친 두 소녀와 고양이〉, 1768~69년, 캔버스에 유채, 76×61cm,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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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1609~10년, 캔버스에 유채, 125×100cm, 이탈리아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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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주제와 그 주제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얼굴을 부분적으로 비추는 조명으로 그들의 표정을 아주 효과적으로 표현하였다. 가장 밝은 화면의 중심이 되는 탁자 가운데 놓인 유리잔 뒤에 촛불이 있다. 이 작은 촛불이 화면의 유일한 광원이다. 아이들에게 촛불로 화학을 재미있게 가르치던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의 대중 강연 모습이 화면 뒤에 숨어 있는 듯하다.

이 그림은 화학과 미술이 만나는 자리에 적격이다. 근대화학의 기초를 세운 연금술의 시대와 근대화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라부아지에 시대를 잇는 중요한 산업혁명의 시기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그림이기 때문이다. 내용도 당시에 가장 대중의 관심을 끈 연소와 생명체 호흡의 관건이었던 산소의 정체에 대한 실험인 점이 흥미롭다. 보면 볼수록 화학자에게 친근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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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림 집필자 소개

한양대학교 화학공학과와 동 대학원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 국립대학교(Universite Piere et Marie Curie)에서 고분자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결정구조의 아름..펼쳐보기

출처

미술관에 간 화학자
미술관에 간 화학자 | 저자전창림 | cp명어바웃어북 도서 소개

명화에 담긴 과학적 창의력! 과학자의 눈으로 본 미술에 관한 이야기와 미술과 함께하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명화 속에서 만나볼 수 있는 화학에 대한 흥미진진한..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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