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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홀바인(Hans Holbein, 1497~1543)은 뒤러와 함께 독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미술사에는 세 명의 홀바인이 등장한다. 두 명의 한스 홀바인과 암브로시우스 홀바인이다. 〈대사들〉을 그린 화가인 한스 홀바인과 그의 아버지는 같은 이름이고, 암브로시우스 홀바인은 한스 홀바인의 형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한스 홀바인 엘더(the Elder), 아들은 한스 홀바인 영거(the Younger)라고 부른다. 아버지도 당시 대단한 화가로 인정받았는데, 그의 판화 중에 아들 홀바인 형제를 그린 그림이 있다.
한스 홀바인은 1497년(또는 1448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태어나 형 암브로시우스와 함께 화가인 아버지에게 미술을 배웠다. 1515년 스위스 바젤에서 미술을 공부하며 이탈리아를 자주 여행하다가 르네상스 미술에 매료되었다. 특히 다 빈치의 미술을 흠모하여 깊게 연구하였으며 그의 미술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형 암브로시우스는 스물다섯 살을 넘기지 못하고 요절하여 화가의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하였다.
그림 속 소품에 담긴 인생의 함의
당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가 태어난 마을에서 옆 마을 정도나 가보고 일생을 마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한스 홀바인은 독일·스위스·이탈리아·영국 등을 드나들던 국제적인 인물이었으며, 이 나라들의 이름 높은 사람들과도 친분이 있었다.
홀바인은 영국의 장관이던 친구 토마스 모어(Thomas More, 1477~1535)의 주선으로 영국 왕 헨리 8세(Henry VIII, 1491~1547)의 궁정화가로 초청되어 영국으로 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모어는 왕의 결혼을 반대한 죄로 감옥에 투옥된 상황이었다.
홀바인은 불안해하던 중에 우연히 장 드 댕트빌(Jean De Dinteville)이라는 프랑스 외교관을 만났다. 그는 젊은 나이에 상당한 위치에 올랐고, 작지만 꽤 훌륭한 성채도 가진 명망 있는 가문의 젊은이였다. 그는 홀바인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실제 인물 크기로 부탁하였다. 그는 야심 있는 인물로서 홀바인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가로 세로가 각각 2미터가 넘는 대작을 자기 가문 소유의 성에 걸 생각이었다. 이리하여 한스 홀바인의 명작 〈대사들〉이 탄생하였다.
다행히 이 그림을 그린 뒤 홀바인의 재능을 알게 된 헨리 8세가 모어의 투옥에도 불구하고 궁정화가로 초청한 일은 그대로 진행되었다.
홀바인은 모델의 외모만 그린 것이 아니라 화가로서 느낀 모델의 성격과 내면세계까지 그렸다. 〈대사들〉에서 왼쪽에 있는 댕트빌은 자신의 명망(물론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까지를 더한)을 나타내기 위하여 흰 담비 털로 안감을 댄 망토를 입었고 왕실 훈장을 가슴에 달았다. 권위의 상징으로 칼집까지 들었는데, 칼집에는 그의 나이 29가 새겨 있다. 그림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댕트빌의 친구인 조르주 드 셀브(Georges de selves)이다. 그는 열여덟 살에 주교가 된, 종교계의 떠오르는 실력가였다.
그림에는 댕트빌의 주문으로 수많은 소품이 동원되었다. 우선 위 선반의 물건들부터 보자. 댕트빌 쪽에 천구의가 놓였는데 별자리 그림이 수상하다. 즉 이 천구의는 실제 천구의라기보다는 댕트빌의 애국심을 나타낸다. 프랑스를 상징하는 수탉이 독수리를 공격하는 모습이 별자리를 빙자하여 나타나 있다. 그 옆에 있는 것은 원통형 달력이다. 날짜는 4월 11일을 나타내고 있다.
가운뎃부분의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놓인 나무로 만든 기구는 시간과 천문을 측정하는 토르케툼[Torquetum : '투르켓'(Turquet)이라고도 부름]인데 중세 기독교인들의 산물이다. 그 오른쪽에는 뒤러의 〈멜랑콜리아 Ⅰ〉에서도 나왔던 10면각해시계다. 주교 쪽으로 놓인 책에는 25(XXV)라는 숫자가 써 있는데 이는 주교의 나이다.
아래 선반에서는 우선 지구의가 눈에 띈다. 지구의에는 유럽이 가운데 있으며 댕트빌의 성채가 있는 고향 폴리시가 그려져 있고, 그가 외교관으로 활약한 도시들과 당시 새로 발견된 아메리카 대륙이 그려져 있다. 말하자면 그림으로 나타낸 경력사항쯤 되는 셈이다.
기도문 책으로 보이는 책갈피에 십자가가 놓여 있으며, 앞쪽에 찬송가가 펼쳐져 있고 "성령이여 오셔서 나의 영혼을 깨우소서"라는 마틴 루터의 찬송이 보이는데, 댕트빌의 신앙을 나타낸 것이다. 어쩌면 화가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덮으려는 기도인지도 모른다.
당시는 음악이 지성을 높이기 위한 중요한 수단 중 하나였는데 그래서인지 류트가 상당히 크게 그려져 있다. 바닥의 모자이크 무늬는 영국 최고 권위의 상징인 웨스트민스트 사원의 바닥 무늬와 똑같이 그렸다. 아마도 댕트빌의 주문이었을 것이다.
이 많은 소품은 댕트빌이 당시의 지식들, 즉 7과목(문법, 수사학, 논리학, 천문, 기하, 대수, 음악)에 모두 관심이 많으며 정통하다는 사실을 장황하게 보여준다. 거기에 자신을 세상 권력의 화신처럼, 종교계의 권력자를 대치시켜 놓아 모든 것을 소유한 것으로 그리고 있다. 이 그림은 댕트빌 자신의 경력과 희망하는 미래까지 모든 것을 담은 경력증명서였다.
허무하게 굴절된 인생
류트를 다시 보자. 음악은 찬송에 쓰일 뿐 아니라 세상 영화와 쾌락도 나타낸다. 그런데 이 류트는 이상하게도 줄 하나가 끊어져 있다. 댕트빌의 의도와는 달리 이제 홀바인의 허무에 대한 메시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게 뭔가? 가운데 아래쪽에 상어 뼈 같은 이상한 물체가 상당히 크게 그려져 있다. 정면에서 봐서는 무슨 그림인지 알 수 없는 왜곡된 상이다. 관람자가 이 그림을 정면에서 보면 우선 사방 2미터가 넘는 크기와 두 주인공의 화려한 모습에 놀란다. 그리고 해박한 지식과 투철한 신앙을 나타내는 여러 정교한 과학적인 소품을 보며 다시 한 번 감탄한다. 그러고는 바로 이 이상한 왜상(歪像, anamorphosis)을 접한다. 무언가 기분이 음산하고 신비롭고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느끼며 한참을 갸우뚱거리다가 출구인 오른쪽 문으로 나간다. 그때 아까의 알 수 없는 왜상에 대한 이상한 기분을 떨칠 수 없어서 그림을 뒤돌아보는 순간, 모든 부귀와 영화는 다 사라지고 오직 뚜렷한 해골만이 나타난다.
독자들도 실제로 그것을 볼 수 있다. 이 그림을 오른쪽 약간 위쪽에서 비껴 볼 수 있도록 세워서 곁눈으로 보라. 이 그림이 경외감을 주며 홀바인의 최대의 걸작으로 꼽히는 것은 바로 이 왜상 때문이다.
1615년 네덜란드의 과학자 스넬(Willebrord van Roijen Snell, 1591~1626)이 발견한 굴절률의 법칙을 보면 두 매질의 굴절률이 각각 N1, N2라면 상대굴절률은 으로 나타난다. 즉 두 매질의 굴절률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왜곡 각도가 커지게 되는 것이다.
재물과 권력, 부귀와 영화의 세상과 성스러운 영혼의 세상은 서로 다른 매질이다. 우리 인간은 살아 있을 때는 죽음을 바로 보지 못한다. 살아 있을 때의 시간과 영생 또는 사후 영혼의 시간은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살아생전에도 젊은 때와 늙어서의 시간 속도가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가.
각 매질에서의 투과 속도를 각각 V1, V2, 빛의 속도를 C라면, CV1×N1=V2×N2이므로 =
가 된다. 즉 각각의 투과 속도 차이가 클수록 왜곡은 커진다. 부귀와 영화와 탐욕의 세상에 대한 인식과, 죽음 이후의 영원한 세계에 대한 인식 차이가 클수록 왜곡은 더 커져서 우리에게 더욱 난해하게 보일 것이다.
여기서 홀바인이 주는 메시지는 많은 명작에서 해골로 나타내는 "죽음을 기억하라"(momento mori)이다. 허무하게 끝날 수밖에 없는 인간의 과시와 욕심이 헛되다는 것이다. 그는 댕트빌의 주문대로 많은 지식과 권력과 명예를 나타내는 소품들로 요란하게 그림을 치장하였지만,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성경』 「전도서」 1장 2절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홀바인 자신의 이름 또한 우연하게도 '구멍난 뼈'(holbein)이다. 당시 유럽에는 많은 전염병이 창궐하였으며 가정마다 병으로 죽은 식구가 없는 집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누구도 죽음의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리라. 홀바인 자신도 결국 런던에서 흑사병에 감염되어 마흔여섯 살의 짧은 생애로 세상을 등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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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에 담긴 과학적 창의력! 과학자의 눈으로 본 미술에 관한 이야기와 미술과 함께하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명화 속에서 만나볼 수 있는 화학에 대한 흥미진진한..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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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대사들〉 – 미술관에 간 화학자, 전창림, 어바웃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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