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미술관에 간
화학자
고흐

〈귀를 자른 자화상〉

처절한 고통 속에 핀 예술

고흐, 〈귀를 자른 자화상〉, 1889년, 캔버스에 유채, 51×45cm, 개인 소장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음악, 미술, 문학 등 예술의 각 분야에서 질병과 창조성의 연관을 나타내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는 서른두 번이나 수술을 받고 다리 하나를 잘라 내면서 걸작 〈부러진 척추〉를 낳았고,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는 원래 신부였으나 천식 때문에 미사를 집전할 수 없어 성가대를 지휘하다가 교회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하여 〈사계〉 같은 음악을 남겼다.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도 원래 피아노 연주자로 대성하기를 바랐으나 손가락 마비를 앓게 되면서 절망과 고통 속에서 작곡을 시작하였다.

문학도 다를 바 없다.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도 꽃가루나 먼지가 들어오지 못하게 자신의 침실을 코르크를 사용하여 꼭꼭 밀봉할 정도로 극단적인 알레르기 공포증이 있었으며, 심장판막증과 그에 따른 신경쇠약으로 고통 받으며 유명한 자전적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남겼다.

칼로, 〈부러진 척추〉, 1944년, 캔버스에 유채, 40×30.5cm, 멕시코 멕시코시티 돌로레스 올메도 컬렉션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직선을 그리지 못한 화가

삶은 행복만도 고통만도 아니라고 하지만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삶을 보면 거의 고통의 연속인 것으로 보인다. 그림을 평생 단 한 점밖에 팔지 못해 늘 동생에게 의지하여 얹혀사는 처지였으므로 경제적인 스트레스와 자괴감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고흐는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달리 자신의 어린 시절이 넉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괴로워했으며, 그들을 위해 희생하고자 성직자의 길을 택했으나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또 몇 명의 여자를 사랑했지만 모두 비극으로 끝나고 외로움에 젖어 살았다. 동료 화가들과의 관계도 좋지 못했고, 한때 그렇게나 좋아한 고갱과의 싸움 끝에 자신의 귀를 자른 사건 뒤에는 정신병원을 들락거렸으며, 결국은 권총 자살로 고통스러운 인생을 마감했다.

오베르 교회의 실제 모습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고흐, 〈오베르 교회〉, 1890년, 캔버스에 유채, 94×74.5cm,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고흐의 그림을 두고 의학자와 심리학자 들은 창조성과 고통 간의 연관성을 많이 연구하였다. 그에게는 알코올중독, 매독, 포피린증, 귓병, 정신착란 등 수많은 질병이 따라다녔다. 그의 그림은 형태와 색 그리고 주제까지도 병적 징후로 받아들여졌다. 〈오베르 교회〉에서와 같이 직선을 그리지 못하고 이글거리는 선들과, (자신의 표현대로) 채도 높은 노랑을 특히 많이 쓰고, 보색 효과를 극대화하는 보라색이나 진한 코발트를 과감하게 사용한다거나, 비극적인 분위기로 점철된 40점이나 되는 자화상이 모두 그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고흐는 심각한 조울증 환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창작에서는 하루 만에 그림을 끝낼 정도로 대단히 조급하였고, 아를에서 고갱과 생활할 때는 모든 것을 고갱에 맞출 정도로 집착증이 심하였다.

위대한 예술과 고통의 함수 관계

예술에서는 고통과 병이 '잃음'만은 아니다. 우울증도 예술가에게는 칭송받는 덕목이다. 뒤러의 판화 〈멜랑콜리아 I〉은 이해하기 어려운 많은 과학적·예술적 소품에 둘러싸인 한 사람이 고독과 고통에 차서 생각에 빠져 있다. 작품 제목이 멜랑콜리아(우울증)이며 작품에서도 '멜랑콜리아'란 팻말이 찬란한 태양과 아름다운 무지개에 걸쳐 있다. 뒤러 자신도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그는 "우울증이 위대한 천재성으로 빛날 수 있다"고 했다.

고흐는 정식 학교에서 미술을 배운 적이 없다. 그림을 판 적도 거의 없다. 그가 죽기 전에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지금 어지러운 하늘 아래 펼쳐진 밀밭을 그리고 있으며, 지독한 슬픔과 고독을 그리고 있다"고 썼다. 아마도 그의 마지막 그림으로 여겨지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일 것이다. 이글거리는 밀밭 위를 검푸른 하늘이 짓누르고 음침한 한 무리의 검은 새떼가 낮게 날아간다. 노랑과 파랑·녹색의 강렬한 보색 대비, 여기에 그의 슬픔과 고독과 분노가 나타나 있다.

고흐, 〈까마귀가 나는 밀밭〉, 1890년, 캔버스에 유채, 50.5×103cm,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린 지 얼마 안 되어 이 밀밭에서 권총으로 자신을 쏘았다. 그리고 거의 한 점도 팔지 못한 800점이 넘는 그림을 동생에게 남겼다. 그림 값이 올라 동생에게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을 테지만 그의 그림은 사후 5~6년간이나 거래되지 않았고, 동생 테오도 다음해에 죽어서 하늘은 끝까지 고흐에게 조금의 기쁨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신에게 시간이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그의 이런 처절한 고통 속에 핀 예술은 100여 년이 지난 우리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준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전창림 집필자 소개

한양대학교 화학공학과와 동 대학원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 국립대학교(Universite Piere et Marie Curie)에서 고분자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결정구조의 아름..펼쳐보기

출처

미술관에 간 화학자
미술관에 간 화학자 | 저자전창림 | cp명어바웃어북 도서 소개

명화에 담긴 과학적 창의력! 과학자의 눈으로 본 미술에 관한 이야기와 미술과 함께하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명화 속에서 만나볼 수 있는 화학에 대한 흥미진진한..펼쳐보기

전체목차
전체목차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Daum백과] 〈귀를 자른 자화상〉미술관에 간 화학자, 전창림, 어바웃어북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