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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Edouard Manet, 1832~1883)의 마지막 걸작이 된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에는 마네 예술의 특성이 잘 나타난다. 폴리베르제르 술집의 종업원이 마네의 부탁으로 마네의 화실로 와서 모델을 섰다고 한다. 뒤의 거울을 통해 드러났듯이 그녀는 어떤 남자 손님과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그의 말을 듣는 것 같지는 않다. 그녀는 분주하고 복잡한 술집 내부의 난산한 풍경과 함께 관람자에게 술집 종업원으로서의 아무 의미도 없는 고달픈 삶을 무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듯하다. 마네는 그러한 그녀 앞에 장미 두 송이를 헌화하여 그녀를 현대의 비너스로 격상시키고 있다. 흰 장미는 순결을, 붉은 장미는 사랑을 상징한다는 전통적인 도상학을 들먹이지 않아도 주위에 가득 널려 있는 술병들 사이에 비너스에게 헌납된 장미꽃은 묘한 비애를 느끼게 한다.
쿠르베가 만국박람회에서 심혈을 기울인 작품인 〈화가의 화실〉이 낙선하자 자비를 들여 박람회장 근처에 자신만의 개인전을 열고 그 카달로그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그림을 더 이상 모방하지 않을 것이다……생동감 있는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 나의 목표다"
모더니즘은 '예술 자체의 예술'을 표방한 쿠르베의 아방가르드 정신 선언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선언이 성문화되기 이전에 이미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 1798~1863)에 의하여 모더니즘 화풍은 시작 되었다. 화가들의 이러한 모더니즘에의 인식은 문학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예술을 위한 예술론」보다 오히려 빨랐다. 마네도 이렇게 이야기 하였다. "나는 내가 본 것을 그리며 다른 사람이 보기에 좋은 것을 그리지 않는다. 나는 거기 있는 것을 그릴뿐이며, 있지도 않는 것을 그리지는 않는다." 마네는 본 것을 그렸다. 그러나 그는 눈으로만 대상을 보지 않았다. 마음의 눈으로 대상의 깊은 내면을 보았다.
내면을 표현하는 거울효과
주제 그림인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에 차용된 거울 효과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림 오른쪽 술집 여종업원의 뒷모습과 신사의 모습이 거울에 비친 모습일진데, 그녀의 정면과, 그녀의 뒷모습과, 그녀 앞에 앉은 것으로 예상되는 남자가 다 일직선상에 있게 되어 모두 가려지게 될 것이란 이야기다.
그러나 필자는 불가능한 공간 설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의 뒤에 있는 거울이 술집 벽에 부착된 대형 거울이어서 술집 내부가 배경화면처럼 연출되었고, 그녀의 앞에 앉아 있는 신사와 마주보는 광경을 화가는 약간 빗겨 오른쪽에서 그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대상 요소들의 배치와 화가의 시선' 그림 참조). 단지 여자가 거울 면에 평행으로 서있지 않고 화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만 고려하면 된다. 그래도 여자 앞에 놓인 탁자가 사선이 되어야 하는 문제가 남긴 한다. 미술은 과학이 아니니까, 이 정도에서 화가의 재량이 들어갔다고 생각하자.
과학으로는 볼 수 없는 내면을 표현
마네는 특히 내면을 표현하는데 탁월했다. 마네가 내면을 표현하는 힘을 잘 나타내 주는 또 하나의 걸작을 감상해 보자. 이 그림의 제목이기도 한 그림의 모델 베르테 모리소(Berthe Morisot, 1841~1895)도 화가이다. 언니 에드마(Edma)와 함께 1861년부터 유명한 풍경화가인 장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에게 6년간이나 사사 받았다. 모리소는 1868년 팡탱 라투르(Fantin-Latour)의 소개로 마네를 만나 이후로 예술혼을 서로 주고받았으며, 그의 모델을 자주 서 주었다. 마네는 그녀를 모델로 〈발코니〉, 〈휴식〉, 〈베르테 모리소〉 등의 걸작들을 탄생시켰다. 1874년 마네 동생 외젠(Eugene Manet)과 결혼하여 마네의 집안사람이 되었다. 1892년 남편이 죽고 난 후 자신도 병들어 1895년 3월 2일 파리에서 삶을 마감하였다.
자의식과 자존감이 남달랐던 화가 베르테는 모델을 설 때도 자신 만의 개성을 강하게 표현하였으며 화가의 주문에 따라 수동적인 포즈를 취하지 않았다. 마네도 그녀의 이러한 포즈를 그대로 받아들였으며 매우 만족해했다. 〈베르테 모리소〉를 통해서 우리는 마네가 표현한 베르테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감과 자신감을 볼 수 있다.
배경과 모자와 옷은 최대한 단순하게 붓질만 남겼으며 명암이 확연히 양분되게 그린 얼굴의 윤곽이 그녀의 미모와 어울린 그녀만의 개성을 잘 나타낸다. 확실히 이전의 인물화(초상화)들과는 다르다. 붓질이 거칠고 과감한 생략이 있지만 오히려 모델의 인격은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더욱 정교하고 사실적인 인물들은 그냥 화면 속의 인물이며 관람하고 있는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 거리감이 있다. 그러나 마네의 이 그림을 보면 그녀가 옆집에서 만났던 이웃 같기도 하고 그녀의 사생활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모델인 베르테의 모습을 사진이나 그림으로 보는 것 같지 않고 그녀의 정신을 만나는 것 같은데, 이것이 모델의 내면을 그리는 마네의 힘이다.
배경과 외곽선의 독특한 해석
마네는 스페인의 대가들 중 벨라스케스(Diego Rodriguez de Silvá Velazquez, 1599~1660)와 고야(Francisco Jose de Goya, 1748~1828)를 대단히 존경하였다. 특히 벨라스케스를 화가 중의 화가라고 생각하며 그의 그림을 수없이 모사하며 연구하였다. 그의 초기 인물화 중 가장 걸작에 속하는 〈피리 부는 소년〉은 벨라스케스의 영향이 많이 나타난 그림이다. 벨라스케스의 〈메니프〉나 〈바야돌리드의 파블리오스〉에서 배경을 약화시키거나 거의 없애면 중심인물이 부각된다는 점을 배웠다. 그 당시 파리 화단의 유행이었던 일본화의 영향도 보이는데 단순한 색채와 강렬한 외곽선으로 인물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소년 바지의 외곽선은 동양의 서예와 같은 일획의 선으로 강한 효과를 성공시키고 있다. 앞선 대가들의 화풍을 자기 것으로 습득한 마네의 열린 마음과 충분히 훈련된 기교에 시대를 앞선 정신이 더하여져 탄생한 걸작이다.
마네의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개성을 강하게 나타내며 한 화면 안에 여럿이 등장하더라도 서로간의 관계성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 관계성은 오히려 마네가 진정 원했던 모델 각자의 내면을 표현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대체로 마네의 모델들은 화면 속에서 무표정하며 정지된 자세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내면의 전달은 더욱 효과적으로 성취된다. 마네의 〈풀밭에서의 점심〉도 네 사람의 인물들이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인다. 각자 자기의 표정과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오른쪽 남자만이 다른 인물들에게 말하는 것 같은데 나머지 사람들은 전혀 그의 말을 듣는 것 같지 않다. 그 둘은 관객을 빤히 쳐다보며 무표정 속에서 서로의 내면을 보이고 있다. 그런 점은 〈피리 부는 소년〉도 마찬가지다. 피리를 부는 것 같지 않다. 단지 피리를 입에 대고 관객을 쳐다보는데 오히려 그 소년의 순수한 마음과 성스러움이 돋보이게 표현되었다. 이 소년 모델은 마네의 아들인 레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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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에 담긴 과학적 창의력! 과학자의 눈으로 본 미술에 관한 이야기와 미술과 함께하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명화 속에서 만나볼 수 있는 화학에 대한 흥미진진한..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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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 미술관에 간 화학자, 전창림, 어바웃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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