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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alchemy)은 화학자들에게는 아주 친숙한 말이다. 그러나 연금술이란 말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 은 연금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연금술은 아마도 아들에게 자신의 과수원 어딘가에 금을 묻어 두었다고 유언한 아버지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아들은 금을 찾기 위해 온 밭을 헤쳐 보았지만 어디서도 금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과나무 뿌리를 파헤쳐 놓아 풍성한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금을 만들고자 했던 연금술사들은 금을 만드는 데는 실패하였지만, 이 과정에서 유용한 기구와 실험 방법과 신물질을 다수 발명(견)하여 인간에게 큰 혜택을 가져다주었다."
실패한 과학?
베이컨의 말처럼 연금술이 단순히 우연한 부산물을 얻게 된 실패한 사기술에 지나지 않을까? 사실 대부분의 중세회화에서 연금술사들은 철에 맞지 않는 외투를 입고 사이비 교주 같은 태도로 이상한 냄새가 나고 알 수 없는 실험을 하는, 다소 사기꾼 같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일반적으로 연금술은 1142년경에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이런 유의 비술(秘術)은 기원전 4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고대 중국, 인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금은 인간이 최초로 다룬 금속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강력한 통치자가 등장하여 야금술을 비롯하여 금에 관한 모든 것을 비밀 속에서 발전시켜 왔다.
헤르메스 트리메지스트(Hermes Trimegist : '위대한 헤르메스'라는 뜻)가 천상의 지배자인 창조주에게서 하늘의 지혜를 전수받았다는 구전과 그를 보여주는 헤르메스에 대한 기록(에메럴드 평판)들에서 그 신비한 모습을 조금 볼 수 있다. 그 후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BC490~BC430)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384~BC322)가 물, 불, 공기, 흙의 4원소가 만물을 만들어 내는데 이 반응을 일으키려면 제5원소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현자의 돌'이다.
이 연금술이 이슬람 세계에 전해지고 특히 우마이야드 야지드 다마스 왕의 아들인 칼리드가 왕위 계승도 마다하고 연금술에 전념하여 많은 발전을 이루어 중세 유럽에 전해지게 되었다. 중세의 신비주의 수도사들의 장미십자가회도 연금술의 비밀 보존과 관련이 있다.
뉴턴(Isaac Newton, 1643~1727)이 연금술의 마지막 현자로 인정되고 있으며, 라부아지에의 등장 이래 비술로서의 연금술은 정통 과학에 밀려 지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연금술이란 이교적 비술은 생명력을 잃지 않고 나름의 독립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연금술이 실패한 과학이 아니라면 원래 무엇이었다는 말인가? 연금술사들은 온 우주와 만물을 변화시키고 운행하는 어떤 원동력이 있는데 그것이 '보편 정신'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어 만물을 창조하고 모든 물질의 근원이 되며 생명의 토대가 된다고 믿었다. 말하자면 연금술은 기술이나 과학을 넘어서 철학이고 신학이었다. 그 보편 정신이 바로 '신의 정신'이며 이것을 구체화, 형상화한 것이 '현자의 돌'이라고 보았다. 그러니까 연금술사들의 진정한 목표는 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의 정신을 파악하여 만물 창조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현자의 돌'은 모든 불순하고 불완전한 금속을 정화하고 정신을 온전케 하여 종국에는 육체의 만병도 치료할 수 있는 불사의 영약이었다. 그들은 '신의 정신'을 병에 담길 원했다. 연금술의 상징이 된 펠리컨은 바로 이 병을 나타내며 실제 이들이 만들어 쓴 유리병의 모양은 펠리컨을 닮았다. 펠리컨이란 새는 자기 심장을 쪼아서 나오는 피를 죽은 새끼에게 먹여서 살리는 영험 있는 새로 믿어졌는데 연금술사는 펠리컨처럼 생긴 유리병으로 비밀스러운 반응을 시도하는 펠리컨과 같은 생명의 수호자였다.
연금술로 화학의 반응을 그리다
코시모(Piero di Cosimo, 1462~1521)는 로셀리(Cosimo Rosselli, 1439~1507)의 제자로서 전 생애를 피렌체에서 보낸 화가이다. 미술사가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는 『미술가 열전』에서 코시모를 "아주 특별하고 기발한 정신의 소유자"라고 묘사했으며, 역사가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 1892~1968)는 그의 작품들이 명작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이상하고 꿈꾸는 듯한 시적 황홀함의 신비한 유혹으로 엄청난 매력을 지녔다고 했다.
코시모의 대표작인 〈프로크리스의 죽음〉은 반라의 여인이 화면 가운데 누워 있고 한쪽에는 반인반수의 목신(Faun)이, 또 한쪽에는 큰 사냥개가 있으며 배경이 뭐가 뭔지 도대체 알 수 없다. 이 묘한 그림을 이해하려면 그림에 숨어 있는 많은 상징과, 제목이 말하는 신화의 배경을 알아야 한다.
이 그림은 고대 시인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 BC43~AD17)가 기록한 케팔로스(Cephalus)와 프로크리스(Procris)의 신화의 마지막 장면을 그린 것이다. 아르테미스(Artemis) 여신은 아름다운 처녀 프로크리스를 총애해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냥개와 절대 빗나가지 않는 창을 선물했다. 프로크리스는 케팔로스를 사랑하여 결혼하면서 그 개와 창을 남편에게 선물로 주었다. 에오스(Eos) 여신이 멋진 케팔로스에게 반하여 그를 납치하였으나 케팔로스가 아내를 끝내 배신하지 않자 도로 놓아주었다. 그 동안에 프로크리스는 오해로 질투심이 생기고 남편을 조금씩 의심하다가 케팔로스가 다른 여인을 사랑한다는 소문을 듣고 몰래 뒤를 밟는다. 케팔로스는 사냥을 마치고 숲에 누워 땀을 식히며 "어서 오라, 아우라!" 하고 노래 부른다. 풀숲에 숨어서 보던 프로크리스는 남편이 애인을 부르는 줄 알고 낙담하여 울었는데, 누워 있던 케팔로스가 동물의 기척인 줄 알고 창을 던졌다. 달려가 보니 창이 사랑하는 아내의 목을 정확히 관통하였다. 프로크리스가 죽어 가며 아우라와 사랑에 빠진 남편을 원망하자 그제서야 케팔로스는 어찌된 영문인지 알게 되나 이미 사랑하는 프로크리스는 죽은 뒤였다. '아우라'(Aura)는 바람이라는 뜻이고 케팔로스는 "바람아, 불어라!"는 말을 시적으로 한 것이었다.
이 그림은 연금술의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원래 신화에는 반인반수의 목신은 등장하지 않는다. 코시모가 연금술의 상징으로 그림에 넣은 것이다. 연금술은 태초의 근원을 찾는 신비로운 학문이다. 그래서 연금술에 빠진 코시모는 원시적이고 근원적인 야생에 매우 강하게 끌렸다. 케팔로스의 하체가 사슴일 뿐 아니라 얼굴도 동물답고 염소의 귀와 뿔까지 갖추었다.
죽어 가는 프로크리스의 육체는 황금과 붉은 천으로 감싸여 있다. 그것은 붉고 뜨거운 '현자의 돌'을 상징한다. 안타깝게도 '현자의 돌'인 그녀가 죽어 가는 것이다. 그녀 어깨 위에서, 물론 바로 어깨에 붙어서는 아니지만 새로운 생명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나무는 '현자의 돌'에 의하여 잉태된 생명을 상징한다.
케팔로스의 사냥개는 이 그림에서 두 번 나타난다. 하나는 프로크리스의 죽음을 슬퍼하며 관조적 태도로 조용히 내려다보는 앞의 큰 개이며, 또 하나는 흰 개와 검은 개가 싸우는 것을 지켜보는 배경의 개이다. 이 두 사냥개는 바로 위대한 연금술사 헤르메스를 나타낸다. 그는 이승과 내세를 오가는 죽음의 왕국의 안내자이며 연금술의 위대한 스승이다.
배경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세 마리의 개다. 한 마리는 방금 이야기한 헤르메스다. 흰 개와 검은 개는 화학의 대립되는 상태인 휘발성체와 고체를 나타낸다. 화학, 아니 연금술의 모든 반응은 이런 두 상태 사이의 변환과 대립이다.
그 옆에 있는 펠리컨은 연금술사들이 사용하는 유리병이다. 이 병 안에서 반응하여 승화하면 저 뒤에 날아다니는 새들로 표현된 기체가 된다. 여기서는 죽음의 승화이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새들은 모두 연금술사가 자주 사용하는 목이 매우 긴 반응병들을 나타낸다.
화면 뒤에 도시 풍경이 보인다. 코시모는 피렌체에 살았지만 그의 정신세계는 사람들이 바쁘게 일하고 잔치를 벌이고 시기하고 싸우는 도시와 매우 먼 거리를 두고 있다. 코시모에게 도시란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없이 무의미하기 때문에 그는 이 그림에서 배경을 흐릿하고 음산하게 단색으로 표현하였다. 그림 전체가 프로크리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철학과 신학을 넘나든 새로운 영역
〈프로크리스의 죽음〉은 "질투가 있는 곳에는 평화가 없다"는 가정의 도덕을 나타내기도 한다. 코시모는 여성들에게 남편을 의심하지 말며 질투가 얼마나 침통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드라마틱하게 경고한다. 당시 피렌체의 성도덕은 문란한 편이었다. 그는 근원적인 '신의 보편 정신'에로의 회귀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을 나타냈다.
코시모에게는 연금술이 비싼 금을 만드는 품격 낮은 욕심의 기술이 아니었다. 인간 정신을 지배할 권위를 가진 '신의 보편 정신'으로서 연금술의 부흥을 간절히 원하였고, 한편으로는 그런 연금술이 사람들의 몰지각으로 스러져 가는 슬픔을 프로크리스의 죽음으로 표현했다.
이 그림은 한 편의 '연금술의 정의'이다. 도덕심 없는 음산한 도시 풍경, 절대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애정을 잃지 않는 원시적 근원으로의 목신, 휘발성체와 고체의 반응을 주의 깊게 감시하는 충직한 사냥개로 나타난 연금술사, 수많은 유리병으로 쉼 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연금술사의 실험실, 붉고 뜨거운 황금을 만들 수 있는 '현자의 돌', 또 그의 죽음, 그 위에 자라는 생명의 나무 등으로 연금술이 단순히 실패한 낮은 품격의 욕심꾼들의 놀이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잘 나타냈다.
연금술은 우연한 부산물로 화학의 발전만 가져온 것이 아니다. 기독교에서 볼 때 다소 이교적이고 비술적인 면이 없진 않지만, 철학과 신학의 영역을 넘나들며 만물과 온 우주의 근원을 찾으려는 순수한 탐구심과 고귀한 정신이 연금술의 본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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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에 담긴 과학적 창의력! 과학자의 눈으로 본 미술에 관한 이야기와 미술과 함께하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명화 속에서 만나볼 수 있는 화학에 대한 흥미진진한..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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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프로크리스의 죽음〉 – 미술관에 간 화학자, 전창림, 어바웃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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