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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술관에 간
화학자
마티스

〈마담 마티스〉

색채만으로 입체를 표현하다

마티스, 〈마담 마티스(녹색 선)〉, 1905년, 캔버스에 유채, 40.5×32.5cm, 덴마크 코펜하겐 국립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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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는 형태도 무게도 없다. 그러나 마티스(Henri Émile BenoIt Matisse, 1869~1954)는 〈마담 마티스〉라는 작품에서 색채만으로 형태와 입체감, 그림자, 원근, 심지어 모델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 성공하였다. 색채를 이렇게 현란하게 다룬 화가가 또 있었던가? 이 그림을 '녹색 선'이라고도 부르는데, 인물의 이마에서 코로 내려오는 얼굴 가운데에 녹색 선이 있기 때문이다. 녹색 선을 중심으로 얼굴과 화면을 둘로 구분하고 보색 관계에 있는 색들, 즉 빨강과 녹색, 노랑과 보라를 대비시켜 얼굴의 입체감과 모델 내면의 긴장감을 표현하였다.

색채만으로 생명력을 표현하다

1895년 3월 마티스는 모로의 화실에 들어갔다. 스승 모로는 단순한 손재주보다는 훈련된 눈과 지적인 통찰력을 강조하였다. 화가와 모델-인물이든 자연이든-과의 교감이 이루어진 후에 그림을 그릴 것을 가르쳤고, 대가들의 작품에 몰입하여 모사를 많이 해볼 것을 주문하였다.

마티스는 이런 훈련 뒤에 비로소 자기의 주관적인 작품을 그려낼 수 있었다. 그는 당시에 이미 모로 화실의 다른 모든 견습생과 차별되었고, 루오(Georges Rouault, 1871~1958)와 쌍벽을 이루는 수제자로서 자질을 인정받았으며, 학생들 사이에서 지도자 역할을 했다.

마티스는 자신보다 쉰 살이나 연상인 인상파의 거두 피사로를 만나 인상 깊은 조언을 몇 차례 들었고, 시냐크를 비롯한 신인상파 화가들과도 교류하였다.

마티스, 〈호사, 평온, 쾌락〉, 1905년, 캔버스에 유채, 98×118cm,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국립 현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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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가 남프랑스를 여행하면서 빛의 표현에 대해 나름대로의 화풍을 확립했을 때의 작품인 〈호사, 평온, 쾌락〉을 감상해 보자. 신인상파의 이론을 바탕으로 자신의 화풍을 창조하며 그만의 보색 효과를 중심으로 하는 대비효과의 구사가 매우 뛰어난 색채의 향연을 볼 수 있다. 시냐크는 이 작품을 아주 높이 평가하여 1905년 앵데팡당전의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마티스는 자신의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본능을 억제하고 이론에 따라 색채를 설정하는 것이 참기 어려웠다. 그는 남프랑스를 여행하고 돌아온 1900년을 전후하여 파리에서 유행하는 화풍과 자신의 길이 다름을 느끼고 이제까지의 모든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였다.

마티스, 〈삶의 기쁨〉, 1906년, 캔버스에 유채, 175×241cm, 미국 펜실베이니아 메리온 링컨 대학 반스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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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가 평생을 바쳐 추구한 가치는 생명력을 색채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는 지중해에 있는 콜리우르라는 작은 해변 마을에서 햇빛 가득한 여름을 지낸 뒤 색채를 발산하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느낌을 〈삶의 기쁨〉이라는 그림에 담아냈다. 이 그림은 마티스적인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걸작이다. 눈으로 관찰한 사실뿐만 아니라 화가가 상상하는 모든 것을 색채의 리듬으로 표현한 이 작품을 기점으로 그의 야수파적인 화풍이 꽃 피게 되었다.

색으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경지

마티스는 1905년 〈모자를 쓴 여인〉과 〈창〉을 살롱 도톤느(Salon d'Automne)에 출품하였다. 이 전시회에는 드랭(Andrè Derain, 1880~1954)과 루오 등의 화가들이 작품을 출품했는데, 이들 작품들은 '색채의 구데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도발적이고 다양한 초기의 야수파적 경향을 보였다. 충격적인 이들의 색채를 보고 예술비평가 루이 보셀(Louis Vauxcelles)이 야수 같다고 한 데서 야수파란 용어가 탄생했다.

그들의 그림은 평면적이고, 그림자가 없으며, 어느 곳도 물체의 색을 그대로 그리지 않았다. 갖은 원색을 사용하여 색채의 병치와 병렬로 그림의 모든 요소를 나타냈고, 심지어 화가의 감정까지 여과하지 않았다. 당시 관람객들은 충격을 받았고 비난하였으며 불쾌하게 여기기까지 하였다.

마티스, 〈모자를 쓴 여인〉, 1905년, 캔버스에 유채, 79.4×59.7cm,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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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들이 다소 마구 널려 있는 〈모자를 쓴 여인〉과 달리 〈마담 마티스〉는 전체적으로 안정되었다. 마티스는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를 교묘한 균형으로 조화시킨 이 그림에서 단지 감각적인 색채를 터트린 것만이 아니라 색채를 능란하게 다루어 색채의 주인으로서 색채로 나타낼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를 보여주었다.

야수파는 조직적이고 준비된 사조가 아니었다. 단지 억압되었던 색채의 자유분방한 표출이라는 공통점밖에 없었던 야수파 화가들은 각자의 성향대로 곧 자기들만의 길로 흩어졌다. 야수파는 20세기에 다양하게 나타난 현대미술 신사조들의 태동을 열었다.

마티스는 야수파를 대표하는 화가가 되었다. 그는 야수주의가 쇠퇴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야수파의 화법을 유지·발전시키면서 그만의 예술 세계를 완성해 나갔다. 그의 이러한 현대적인 화풍과 예술 이론은 본격적인 모더니즘 미술이 꽃피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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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림 집필자 소개

한양대학교 화학공학과와 동 대학원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 국립대학교(Universite Piere et Marie Curie)에서 고분자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결정구조의 아름..펼쳐보기

출처

미술관에 간 화학자
미술관에 간 화학자 | 저자전창림 | cp명어바웃어북 도서 소개

명화에 담긴 과학적 창의력! 과학자의 눈으로 본 미술에 관한 이야기와 미술과 함께하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명화 속에서 만나볼 수 있는 화학에 대한 흥미진진한..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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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마담 마티스〉미술관에 간 화학자, 전창림, 어바웃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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