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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반 사진기는 화가들에게는 위협이 되었다. 며칠 혹은 몇 달씩 온갖 애를 쓰며 수정에 수정을 가해야 겨우 한 점 그릴까 말까 한 그림에 비해 사진은 너무도 손쉽게 세상을 복제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시기 화가들의 그림이 물감의 물질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거나 붓 자국을 거칠게 남기고, 실제에는 있을 수 없는 다채로운 색상으로 화면을 채워버린 것은 사진에 대한 회화의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그림은 더 이상, ‘사진 같은’ 수준에 머물 수는 없었다. 그림은 더욱 ‘그림다워야’ 했다.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는 하루가 다르게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고 있던 사진기에 열광했다, 그는 사진기로 찍었을 때나 가능한 독특한 구도를 자신의 그림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페르난도 서커스의 라라〉는 화가가 이젤을 들고 그 앞에 앉아 잡기 힘든 각도로, 객석에 앉아 한껏 렌즈를 위로 향한 뒤 찍은 사진처럼 보인다.

드가는 인상파 화가들의 결성부터 마지막 전시회까지 늘 그들과 함께했지만, 빛에 따라 달라지는 색의 변화를 순간적으로 잡아내 그 인상을 기록하고자 한 그들이 풍경화에 집착하는 것은 공공연히 비난했다. 오히려 데생을 회화의 기본이라 주장한 드가는 같은 동료들 입장에서는 케케묵은 고전주의자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는 살롱전 입선을 염두에 둔 초기작을 빼고는 결코 영웅과 신화 그리고 종교가 판치는 역사화를 그리지 않았다. 그는 발레리나들이 공연을 하거나 쉬고 있거나 혹독한 훈련을 하는 모습을 그렸고, 혹은 당시 가장 허드렛일에 속하는 세탁 일을 하는 아낙, 공중에 달린 쇠고리를 입에 문 채 묘기를 펼치는 서커스 단원, 때론 그런 공연을 관람하거나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치 사진처럼 그리곤 했다. 특히 그가 그린 일련의 누드화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그녀들의 방심한 상태를 “마치 열쇠구멍으로 몰래 들여다본 것처럼” 그려 오늘날의 몰래 카메라를 연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