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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야기 독일

제1차 세계대전 전야

1914년 5월,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측근인 하우스(House) 대령을 유럽에 파견하여 현지의 사정을 관찰하도록 했다. 당시 대령이 제출한 보고서의 한 구절을 보자.

이곳의 사태는 비정상적입니다. 광적인 군사주의, 바로 그것입니다. 각하를 대신하여 어느 누가 현재와는 다른 양해를 창출하지 않는 한 며칠 후에는 가공할 만한 대변동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유럽의 그 누구도 이런 양해를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이곳에는 증오, 질투가 들끓고 있습니다. 영국은 독일이 완전히 붕괴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럴 경우 영국은 그의 숙적인 러시아와 홀로 대적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독일이 계속 증강된 해군을 고집한다면 영국으로서는 대안이 없을 것입니다. 평화를 위하여 가장 좋은 길은 영국과 독일이 해군 군비에 대하여 합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국이 너무 가까워지면 우리에게도 불리할 것입니다.

하우스 대령의 우려는 한 달 후인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황태자가 살해당하는 것으로 현실화되었다. 두 발의 총탄에 황태자와 황태자비가 즉사한 이 사건이 바로 4년 반 이상이나 유럽을 전쟁의 도가니로 휘몰아 넣었던 사라예보 사건이다.

사라예보 사건이 터지자 오스트리아는 먼저 독일의 태도를 확실히 알고, 그 지원을 받아 놓는 일이 급선무였다. 7월 5일 오스트리아는 호이요스(Hoyos) 경을 베를린에 파견하여 세르비아 응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7월 5일 독일에서는 카이저가 중요한 회의를 주재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홀베크 수상, 치머만 외무차관, 팔켄하인 육군상 등이었다. 그들은 모두 오스트리아를 지원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그리하여 다음 날 아침 홀베크는 오스트리아 대사 소기에니(Sogyeny)에게 오스트리아 정부가 세르비아에 대하여 어떠한 정책을 결정하든지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동맹을 믿어도 좋다는 백지위임장(carte blanche)을 전달했다. 카이저는 당시 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하여 지극히 안일하게 대처했고, 다음 날 예정되어 있었던 요트 여행도 예정대로 떠났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전선으로 떠나는 독일군 병사

이들은 전쟁이 빨리 끝나고 크리스마스를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전투에 참여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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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스트리아는 다음 날 회의를 개최하여 세르비아의 전쟁에 동의하며, 독일의 지원을 확신했다. 사태를 중요하게 인식했건 아니건, 독일이 오스트리아에 지원을 약속한 사실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참호의 병사들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독일과 프랑스 양군이 참호에 갇혀 싸우는 참담한 전쟁이 되었다. 당시 종군작가였던 병사 바르뷔스는 "전쟁이란 놈은 허리까지 차는 물이고, 진흙이고, 오물이고,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저분한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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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스트리아에 보낸 독일의 백지위임장은 독일의 입장에서 보면 방어적인 조치였다. 오스트리아가 발칸 반도에서 어떠한 행동을 취하려고 할 때마다 독일은 항상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사정을 홀베크 수상은 그의 비서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그들을 충동질하면 그들은 우리가 자기네들을 끌어들였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로 하여금 단념토록 한다면 곤경에 처해 있는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꼴이 될 것이다. 그럴 경우 그들은 서방 국가로 돌아갈 것이고 우리는 마지막 동맹국을 잃게 될 것이다."

러시아와 세르비아의 음모가 성공한다면 독일은 동맹국을 상실할 뿐만 아니라 강대국으로서의 독일의 기반 자체가 흔들릴 것이며, 독일은 분쟁을 국지화할 수 있고 영국은 최소한 중립을 지켜주리라 판단했다. 그러나 이는 당시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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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식 집필자 소개

함부르크대학교에서 역사학과 정치학으로 석사 학위를 마치고, 같은 대학에서 독일 현대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귀국 후 단국대학교와 경기대학교에 출강하였다. 공저로는 <유럽연합 체제의 이..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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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독일사
이야기 독일사 | 저자박래식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독일은 게르만족의 이동과 부족 국가의 시기를 거쳐 근대국가 체제로 성장하면서 유럽에서 입지를 강화해간다. 게르만 민족에서 독일의 통일까지, 역동적인 독일사의 현장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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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제1차 세계대전 전야이야기 독일사, 박래식,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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