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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중세의 인구
시대 | 중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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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부터 6세기 사이 토지의 황폐화와 경작지의 감소, 페스트의 확산으로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후 9세기가 되어서야 서서히 증가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9세기부터 10세기까지 약 100여 년 사이 급속도로 증가했다. 14세기 초반 독일의 인구는 6세기 인구의 두 배나 되었지만, 이렇게 증가한 인구는 1347년 페스트의 전염으로 절반이나 줄었다.
갑작스러운 인구 감소는 노동력 부족으로 이어졌다. 경작지가 황폐화되어 농경지와 주거 지역도 점차 감소하게 되었다. 중세 초기에는 인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이 살지 않은 지역이 많았으며,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삼림 지대는 자연적인 울타리로 주거 지역과 경작 지역을 구분했다.
인구가 증가하면 생활 공간을 필요로 한다. 프랑스는 8세기 후반부터 새로운 주거지를 찾아 나섰는데, 이는 다른 나라들보다 1세기나 빨리 시작한 것이다. 프랑스는 늪지대를 경작하고, 북해의 해안 지역에 제방을 쌓아 간척지를 개척하고, 원시림을 개간했으며, 고산 지역의 평탄한 면과 교통망을 확장시켜 연락을 취할 수 있게 함으로써 새로운 거주지를 확보하였다.
초기에는 기존의 촌락을 확장하는 작업부터 했으나 서서히 새로운 주거 지역과 마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거주지는 위성 도시의 성격을 띠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래된 도시 근교에는 생기지 않았다. 예를 들어 도시 이름 뒤에 하겐(-hagen), 홀츠(-holz), 발트(-wald), 로데(-rode), 라트(-rath), 리트(-ried), 로이트(-reuth)가 들어간 지명이 대표적인 도시들이다.
인구 증가로 12~13세기 동부 지역에 신개간지를 개척하면서 많은 인구가 그 지역으로 이주했다. 독일인이 동유럽으로 이주하면서 루마니아 북쪽에 있는 지벤뷔르겐까지 독일인이 정착했다. 이때 동유럽으로의 이주로 많은 촌락들이 탄생했으며, 촌락 간의 접촉과 교류가 활발해졌다. 그러나 이렇게 계속 증가하던 인구도 결국 중세 후기에 다시 감소하였고, 농촌에서 경작할 노동력도 감소하여 농촌의 토지는 황폐화되었고 숲은 증가하여 농경지를 잠식하였다.
한편 중세의 인구 증가가 삶의 질 향상에는 기여하지 못했다. 당시 일반인들은 그들의 생활에 공간적 제한을 받았다. 반면 영주와 성직자들은 여러 지역에 산재해 있는 그들의 농토를 관리하기 위해 자주 여행했으며, 영지에서 왕처럼 대우받았다. 물론 당시에는 교통의 불편함 때문에 여행에 고통이 뒤따랐다. 짐을 운반하는 말이 장거리 여행으로 생기는 스트레스와 피로 때문에 급사하는 경우도 있었고, 산길이나 한적한 곳에서 산적들이 나타나 여행자들을 위협하고 금품을 갈취하기도 했다.
11~12세기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이동과 여행이 점점 빈번해졌다. 순례자, 유랑인, 학생들의 왕래가 활발해져서 새로운 길이 개척되고, 길의 조건도 조금씩 좋아졌기 때문이었다. 여행자를 위해 나그네 병원이 건립되었고 숙박업이 등장했다. 이런 변화는 수도원이나 개인 민박업자들이 상업적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중세 일반인의 활동 범위는 교통수단의 미발달 등 여러 가지 제한 때문에 활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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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독일은 게르만족의 이동과 부족 국가의 시기를 거쳐 근대국가 체제로 성장하면서 유럽에서 입지를 강화해간다. 게르만 민족에서 독일의 통일까지, 역동적인 독일사의 현장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