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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텍사스주 깃발에는 큰 별 하나가 그려져 있는가?

텍사스

Texas
텍사스(Texas)

텍사스 주 깃발

ⓒ Alkari/wikipedia | Public Domain

Texas(텍사스)는 미국 중남부에 있는 주(州) 이름이다. 원래 이 지역에 살던 아메리카 인디언 카도(Caddo)족의 언어로 ‘친구들(friends)’을 뜻하는 Tejas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뜻에 충실하기 위해서인지 텍사스주의 모토(motto)는 ‘Friendship(우정)’이다. 텍사스주는 서북쪽으로 뉴멕시코주, 북쪽으로 오클라호마주, 동쪽으로 루이지애나주와 아칸소주와 접한다. 남쪽으로는 리오그란데강을 따라 멕시코와 국경을 이룬다. 텍사스라고 하면 사람들은 카우보이와 사막을 연상하지만, 사막은 전체 면적의 10퍼센트 미만이다.

텍사스주의 가장 큰 도시는 휴스턴(Houston(인구 220만 명)), 주도(州都)는 오스틴(Austin(인구 89만 명))이다. 텍사스주의 면적은 69만 6,241제곱킬로미터(가로 최장 1,244킬로미터, 세로 최장 1,270킬로미터)로 미국 50개 주 가운데 알래스카주 다음으로 넓고, 인구는 2,769만 5,284명(2015년)으로 캘리포니아주 다음으로 많으며, 인구밀도는 1제곱킬로미터당 40.8명으로 26위다.

미국에선 ‘텍사스 드림’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텍사스는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2000년 이후 미국 49개 주에서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텍사스로 이주해왔으며, 2012년에만도 모두 10만 6,000명이 텍사스로 이주했다. 일자리 덕분이다. 2012년 한 해 동안 텍사스에선 27만 4,700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났는데, 이는 미 전역에서 늘어난 일자리의 12퍼센트에 해당한다. 게다가 세금도 낮다. 1990년대 중반부터 정책적으로 감세 정책을 펴온 텍사스엔 주(州) 소득세가 없다.

텍사스의 주산업은 에너지다. 석유 매장량이 많아 미국 내 총생산량의 35퍼센트를 차지한다. 하루 17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데, 텍사스가 단일 국가라면 세계 10위의 산유국에 해당하는 양이다. 최근엔 셰일가스 개발 붐까지 겹쳐 에너지 연관 산업이 초호황을 누리고 있다.

‘텍사스 드림’을 좇아 히스패닉(중남미계 이주민)들이 몰려들면서 전통적인 보수 성향의 표밭을 위협하고 있다. 히스패닉 인구는 1990년 440만 명으로 텍사스 전체의 25.5퍼센트에 불과했으나, 2012년에는 38퍼센트로 급증했다. 2030년쯤이면 히스패닉 인구 점유율이 텍사스에서 절반을 웃돌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인도 많다. 2010년 인구센서스 결과 텍사스에는 6만 7,750명(불법체류자 제외)의 한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캘리포니아(45만 1,892명), 뉴욕(14만 994명), 뉴저지(9만 3,679명), 버지니아(7만 577명)에 이어 5번째로 많다. 10년 전인 2000년 인구센서스 때의 4만 5,571명에서 48.7퍼센트가 급증했다. 한인 이주민이 늘면서 아메리칸항공은 2013년 5월 인천과 댈러스 간 직항로도 개설했다.

텍사스는 1845년 12월 29일 미국의 28번째 주가 되었는데, 그 전까지 텍사스는 멕시코 땅이었다. 멕시코 이전엔 프랑스, 그 이전엔 스페인이 지배했다. 이런 역사로 인해 생겨난 말이 ‘six flags over Texas’다. 텍사스 지역은 16세기 이래 스페인, 프랑스, 멕시코, 텍사스공화국, 미국남부연방(남북전쟁 시절), 미합중국의 국기들이 번갈아 휘날렸다는 뜻이다. 그 파란만장한 역사의 가장 중요한 대목을 살펴보자.

1821년 미국인들은 멕시코 정부의 초청을 받아 오늘날 ‘텍사스 개척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티븐 오스틴(Stephen Austin, 1793~1836)의 주도 아래 텍사스에 정착했다. 첫 이주 때에는 300여 가족이었지만, 1830년엔 텍사스 목화 재배지에 미국 백인 2만 명 이상, 노예 2,000명이 살게 되었다. 곧 텍사스 내에서 미국인의 수는 멕시코인의 수를 앞질렀다. 1834년 오스틴은 멕시코 당국에 텍사스를 멕시코에서 분리해달라고 요청했다가 체포되어 구금당했다.

멕시코를 재정복하려는 스페인의 시도(1829년)를 잘 막아낸 바 있는 멕시코 대통령 산타 안나(Santa Anna, 1794~1876)는 텍사스를 포함한 멕시코 전체 영토를 포괄하는 헌법을 공포했다. 그러나 텍사스의 미국인들은 멕시코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하고, 1836년 3월 1일 텍사스는 ‘자유롭고 독립된’ 공화국이라면서 독립을 선언했다.

이에 산타 안나는 6,000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 텍사스의 미국인들을 응징하러 나섰다. 3,000명의 멕시코 병력이 샌안토니오(San Antonio)로 접근하고 있을 때, 그곳에는 윌리엄 트래비스(William B. Travis, 1809~1836) 대령의 지휘 아래 미국인 187명이 계속 저항하고 있었다. 미국 수비병들은 알라모(Alamo)라는 성당의 담을 등지고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이 소수의 병력은 지금은 전설의 장소가 된 알라모에서 산타 안나 대군을 맞아 10일을 버티며 멕시코군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지만, 3월 6일 거의 몰살당하고 말았다.

텍사스 미국인들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텍사스 독립운동에 참여하면 승리 후 텍사스 땅을 주겠다”고 선전 공세를 폈고, 이에 따라 뉴욕, 조지아, 플로리다, 미시시피 등 전역에서 미국인들이 몰려들었다. 1836년 4월 21일 양군은 마침내 샌 하신토(San Jacinto)에서 대결했다. 수적으로 크게 밀리는 텍사스군은 “알라모를 기억하라!(Remember the Alamo!)”는 전쟁 구호를 외치며 낮잠을 즐기고 있던 멕시코군을 급습했다. 18분 간의 전투 끝에 멕시코군은 수백 명이 사망한 반면 텍사스군의 사망자는 9명에 불과했다. 멕시코군 수백 명이 포로가 되었는데, 이 중엔 대통령 산타 안나도 있었다. 살아남은 멕시코군은 리오그란데강 너머로 퇴각했다.

텍사스군 사령관 샘 휴스턴(Sam Houston, 1793~1863)은 안나에게 텍사스의 독립을 약속하면 풀어주겠다고 제안했다. 휴스턴은 이 제안을 받아들인 안나를 워싱턴으로 보냈고, 앤드루잭슨(Andrew Jackson, 1767~1845) 대통령은 텍사스 독립을 약속받은 후 그를 멕시코로 돌아가게끔 했다. 5월 14일 체결된 벨라스코(Velasco) 조약으로 이제 텍사스는 독립공화국이 되었다. 텍사스인들은 곧바로 자신들의 헌법을 제정하고, 샌 하신토 전투 이후 괴저(壞疽)로 죽어가고 있던 휴스턴을 새로운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독립 직후 텍사스공화국은 미국에 병합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텍사스인들은 미합중국에 합병되고자 하는 그들의 갈망을 표시하기 위해 텍사스 깃발에 큰 별 하나를 그려넣었다. 오늘날에도 텍사스를 ‘론스타 공화국(Lone Star Republic)’으로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날 텍사스 주의 공식적인 별명도 ‘The Lone Star State’며, 텍사스주의 깃발에도 큰 별 하나가 그려져 있다. 한국의 외환은행 인수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켰던 사모펀드 론스타도 1991년 텍사스에서 처음 설립되었기에 그런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잭슨은 대통령 재임 마지막 날에야 비로소 텍사스의 독립을 인정했지만 병합은 여전히 외면했다. 무엇보다도 텍사스 편입으로 인해 초미의 중대사인 노예 문제에 기름을 붓게 되는 걸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미주리 협정 이후 노예주 아칸소와 자유주 미시간이 25번째와 26번째 주로 각각 편입되었는데, 노예제를 채택한 텍사스 편입은 그런 균형을 깨는 걸 의미했다.

텍사스 문제가 주요 이슈 중의 하나로 제기된 1836년 대선에서 잭슨의 후계자인 마틴 밴 뷰런(Martin Van Buren, 1782~1862)은 선거인단 294표 중 170표를 얻어 승리함으로써 제8대 대통령이 되었다. 밴 뷰런은 1782년 12월 5일생으로 미국 시민으로 태어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었다. 밴 뷰런은 물론 그의 후임 대통령들도 텍사스 병합을 망설였지만, 1844년 대선에서 텍사스 병합을 외치는 호전주의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가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제11대 대통령 제임스 포크(James K. Polk, 1795~1849)다.

당시 텍사스는 공화국으로 독립하면서 멕시코와의 국경선을 놓고 갈등을 벌이고 있었다. 멕시코는 뉴에세스강(Nueces River)을 국경선으로 주장한 반면, 텍사스는 그보다 약 16킬로미터 아래에 있는 리오그란데강(Rio Grande River)을 국경선으로 주장했다.

1845년 5월 포크는 텍사스를 아예 미국 땅으로 간주하면서 멕시코인들의 ‘침입’에 대비해 아직 확정도 안 된 국경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1,500여 명의 병력과 함께 재커리 테일러(Zachary Taylor, 1784~1850) 장군을 텍사스에 파견했다. 케네스 데이비스(Kenneth C. Davis)는 “텍사스 병합은 19세기판 로또 열풍처럼 당시 미국 전역을 휩쓸고 있던 대대적인 광란의 한 징후였다”며, “1845년에는 이 열병에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말한다. 그 열풍을 타고 텍사스는 1845년 12월 29일 미국의 28번째 주가 되었지만, 이는 동시에 ‘멕시코-미국 전쟁(Mexican-American War)’을 몰고 왔다.

1846년 4월 25일부터 1848년 2월 2일까지 1년 9개월여 간 벌어진 이 전쟁의 승자는 물론 미국이었다. 이 전쟁으로 미국 측은 1,700여 명이 전사, 1만 1,000여 명은 병사했으며, 멕시코군 사상자는 5만여 명에 이르렀다. 전쟁의 마무리 작업으로 1848년 2월 2일 멕시코시티 근처에서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Treaty of Guadalupe Hidalgo)이 체결되었고, 3월 상원의 인준을 받았다. 이 조약의 결과 멕시코는 전 국토의 절반이 넘는 240만 제곱킬로미터를 잃었다. 텍사스는 물론 장래의 캘리포니아 주, 네바다주, 유타주, 뉴멕시코와 애리조나의 대부분과 와이오밍과 콜로라도 일부가 이에 포함된다. 리오그란데강이 멕시코와 미국의 새로운 국경선이 되었다.

땅을 강제로 빼앗은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구입한 것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명분을 위해 미국은 멕시코에 1,500만 달러를 지불했다. 이에 장단 맞추듯 미국의 한 신문은 “우리가 정복해서 강제로 빼앗은 것은 전혀 없다”며, “하나님께 감사드리자”고 했다. 물론 오늘날에도 미국인들은 그 땅을 돈을 주고 샀다고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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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Texas」, 『Wikipedia』; 박승희, 「미국은 지금 텍사스 드림」, 『중앙일보』, 2013년 10월 24일.
  • ・ 박승희, 「한인들도 텍사스로···10년 새 50% 늘어 6만여 명」, 『중앙일보』, 2013년 10월 24일.
  • ・ 케네스 데이비스(Kenneth C. Davis), 이순호 옮김,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책과함께, 2003/2004), 214~217쪽; 하워드 진(Howard Zinn) · 레베카 스테포프(Rebecca Stefoff), 김영진 옮김, 『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역사』(추수밭, 2007/2008), 113쪽; 고종석, 『도시의 기억』(개마고원, 2008), 327쪽; 「Mexican-American War」, 『Wikipedia』.

강준만 집필자 소개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사회에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 대표 저서로는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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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영어 인문학 이야기 1
재미있는 영어 인문학 이야기 1 | 저자강준만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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