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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트
pop art팝아트가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조류 중 하나임을 부정할 사람은 별로 없다. 팝아트는 만화 · 광고 등으로 대중성을 얻은 이미지를 사용해 대중문화의 한 단면을 그려낸다. 해밀턴의 〈오늘날 가정을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는 팝아트의 시작을 알렸다. 최신 가전제품과 생활도구로 가득한 현대 가정의 모습을 콜라주 기법으로 표현했다. 보디빌더 남자가 쥔 사탕 포장지의 ‘POP’이란 글자에 착안하여 비평가가 ‘POP-ART’라는 말을 사용한 후 이러한 경향의 미술을 팝아트로 부르기 시작했다. 해밀턴(Hamilton, 1922~2011)을 비롯하여 존스(Johns, 1930~ ), 올덴버그(Oldenburg, 1929~ ), 릭턴스타인(Lichtenstein, 1923~1997), 워홀(Warhol, 1928~1987) 등이 활발하게 활동했다.
근육질의 남자와 늘씬한 몸매의 여성이 자신을 뽐내듯이 정면을 응시한다. 마치 도색잡지에 등장할 듯한 남녀가 성적 매력을 발산한다. 남성은 “당신도 강해질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여성은 “당신도 저처럼 날씬해질 수 있어요.”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구석구석으로 눈을 돌리면 현대문명의 산물이 가득하다. 텔레비전, 소파 위에 펼쳐진 신문, 녹음기 등이 보인다. 계단에서는 가정부가 진공청소기로 청소한다. 한 쪽에는 포드자동차 휘장이 걸려 있다. 벽면에는 전통 액자에 그림인지 사진인지 모를 인물이 있는데 그것보다 거의 네 배나 커 보이는 만화 표지가 걸려 있다. 창문 밖으로는 대형 극장 간판도 보인다.
팝아트는 ‘고상한’ 미술에 대한 도전이었다. 흔히 문화를 순수예술과 대중예술, 고급문화와 저급문화로 분류한다. 보통은 저급문화에 대중예술을 등치시킨다. 이러한 분류는 다수 대중과 자신을 구분하려는 엘리트주의적 발상의 표현일 것이다.
해밀턴은 대중이 공유하는 감성과 이미지를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 나름의 방식으로 시대의 단면을 무심히 드러내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래서 팝아트 작품에는 자본주의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상징을 보여주는 온갖 상품이 등장한다. 텔레비전 · 라디오 · 녹음기와 같은 가전제품은 물론이고 통조림 ·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 음식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포드 시스템에 의해 대량 생산되고 보급된 자동차가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한다. 어딜 가나 깜빡이는 신호등, 교통 표지판도 현대를 상징하는 소재 중 하나다. “찾고 있던 소재는 유행 · 변조 · 소비성 · 기지 · 색정 · 글래머 등이었다. 저렴하고, 대량 생산적이고, 젊고, 대규모 사업적인 것이어야만 했다.”라고 언급한 것을 보면 해밀턴은 자기 작업의 의미를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팝아트 화가들은 평소 대중에게 익숙한 디자인을 그대로 빌려 쓰기도 하는데, 존스의 〈세 개의 국기〉도 그중 하나다. 전 세계 사람이 다 알고 있을 법한 미국 국기를 그대로 차용했다. 전통적 재료인 왁스에 용해된 염료를 사용해 성조기를 삼단으로 쌓아올린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몇몇 성조기 연작도 내놓았는데, 국가를 대표하는 권위의 상징을 마치 하나의 진열된 상품처럼 취급하고 있다. 미술작품과 사물의 경계, 예술적 이미지와 상품 이미지의 경계를 허물어뜨림으로써 전통적 예술관에 반기를 들었다. 숫자, 과녁, 지도 등도 그가 즐겨 다룬 대중적 이미지였다.
올덴버그의 〈모든 것이 들어 있는 두 개의 치즈버거〉도 현대사회의 대표적 상품을 그대로 미술작품으로 전환시켰다. 치즈버거가 두 개 있다. 작품 제목에 ‘모든 것이 들어 있는’이라고 적혀 있듯이 햄버거에 들어갈 주요 재료가 다 들어가 있다. 일단 햄버거 빵이 입을 벌리고 있고 맨 밑에 야채가 있다. 바로 위로 치즈가 있고 토마토 조각도 보인다. 재료를 부드러운 햄버거 소스가 감싸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실물 햄버거의 크기보다 훨씬 커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하드보드, 석고 등의 재료를 사용해 일상용품을 묘사한 많은 조각을 발표했다. 주로 타자기 · 선풍기 · 햄버거 · 아이스크림 · 담배꽁초 등을 소재로 사용한다. 하지만 다른 작가와 구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확대시킨 작품의 크기다. 과장을 통해 일상용품을 낯설게 만든다. 가공할 크기 때문에 감상자들은 작품을 보면서 일종의 괴리감을 느낀다.
앤디 워홀은 특히 현대 소비사회 특성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작업을 한다. 포스터 · 만화 · 통조림 · 전기제품 · 자동차 등 대량 소비 시대의 기성품을 주요 소재로 한다. 대량 복제가 가능한 실크스크린을 이용하여 다양한 색채로 반복적 이미지를 보여주는 작품을 주로 제작했다. 만화의 한 컷, 신문 보도사진의 한 장면, 영화배우의 브로마이드 등 대중적 이미지를 실크스크린으로 캔버스에 전사(轉寫) 확대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자신의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를 거부했다. “기계처럼 어떤 작업을 하든지 간에, 내가 그렇게 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 나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싶다면, 내 그림과 영화와 그리고 나의 겉모습을 그냥 보기만 하면 그곳에 내가 있을 것이다. 감추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워홀의 〈마릴린 먼로〉는 미술과 복제 기술의 밀접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실크스크린 기법은 대량 복제가 가능한 인쇄 방법을 이용하여 미술품의 대량 생산을 효과적으로 실현했다. 표현 방법뿐만 아니라 표현 대상에서도 철저히 소비사회의 논리와 문법에 충실했다. 당시 가장 인기 있던 할리우드 스타 마릴린 먼로가 사망하자 대중의 시선이 쏠렸고, 언론은 연일 그녀의 삶을 소개했다. 대중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자 워홀은 그녀를 작품에 끌어들인다. 실크스크린으로 얼굴을 연속적으로 병렬하거나 하나씩 독립적으로 제작했다. 유명인을 그리면 자신도 유명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실제로 마릴린 먼로 이외에도 엘리자베스 테일러, 제인 폰다, 존 F 케네디 등 미디어가 주목하는 할리우드 스타와 유명 인사의 얼굴을 활용한 작품을 집중적으로 쏟아냈다.
‘미술의 상업화’와 동시에 ‘상업의 미술화’를 추구했다. 물론 현대 문화 중에 상품 아닌 것이 있겠는가? 하지만 단지 미술에 바코드를 붙이는 데 머물지 않고, 철저히 상업적인 것을 미술 영역으로 끌어들여 성공한 화가다. 어떤 면에서는 자신에게 솔직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원래 상업미술가로 시작했는데 이제 사업미술가로 마무리하고 싶다. 사업과 연관된 것은 가장 매력적인 예술이다.”라고 할 정도로 미술과 상품의 경계를 허물어버렸다.
릭턴스타인은 〈키스〉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 만화나 만화영화의 정지 장면을 자주 사용한다. 비행기 폭격 장면이 나오고 원더우먼이 등장한다. 마치 텔레비전의 한 장면이 툭 튀어나온 듯 하고, 길거리를 거니는 청소년의 티셔츠에서 본 듯한 느낌도 준다. 그는 《뉴욕 타임스》로부터 “미국에서 가장 형편없는 예술가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이후 평론가의 호평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다. 만화 속 인물이 아닌 직접 유명한 사회 인사를 다루기도 했는데, 작업을 통해 결국 만화 주인공으로 둔갑한다. 중국혁명의 선두에 서서 승리를 이끌어낸 마오쩌둥을 묘사한 작품도 내놓았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마오쩌둥은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같은 미국 영화의 주인공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어디에서도 험한 대장정 과정에서의 비장함이나 고뇌는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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