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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유와 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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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던 미학

차이와 사용의 생성을 통한 형상의 길

들뢰즈가 보기에 예술도 하나의 기호다. “창조는 기호에서 출발한다. 예술작품이 기호를 탄생시키는 만큼 예술작품은 기호에서 태어난다.”각주1) 그 대신 다른 기호보다 우월한 기호다. “왜 예술 기호는 다른 기호보다 우월한가? 다른 기호가 물질적이기 때문이다. ··· 예술 기호만이 비물질적이다.” 예술이 비물질적 기호라는 말은 질료나 감각에서 분리되어 있다는 의미보다는 창조적 작업이라는 데 강조점이 있다. 예술 작업 자체는 질료와 분리될 수 없다. “본질은 질료 속에서 육화한다.” 예술은 색깔 · 소리 · 언어를 사용하는 점에서 질료 속에서 작업하지만, 물질적 제한을 넘어 정신적 영역으로 나아간다.

색깔 · 소리 · 언어와 같은 예술의 재료는 변형이 쉽다. 쉽게 반죽이 되고 가늘게 풀어 헤쳐질 수 있기에, 완벽하게 창조적 · 정신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예술가란 지각과 시각에 관한 한 정서의 제시자요, 창안자며 창조자다.”각주2) 작품을 통해 특정 정서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만 창조성이 아니다. 예술은 단어 · 색채 · 소리 · 돌을 사용한 감각의 언어를 통해 우리를 새로운 생성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능동적 창조성을 지닌다.

어떻게 생성으로 이끌까? 먼저 예술은 본질적으로 재현을 넘어 차이로 나아가기에 생성으로 이끈다. “예술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본질은 하나의 차이, 궁극적 · 절대적 차이다.”각주3) 존재에 대해 사유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차이인데, 예술은 전형적으로 차이를 생성해내는 작업이다. 아무리 같은 대상을 묘사한 그림이라 하더라도 모든 미술작품은 어느 한순간의 동일성도 없이 차이로 향한다. 미술의 역사를 통틀어서 단 한번도 같은 작품이란 존재한 적이 없다. “부분이 전체를 미리 결정하고, 전체가 부분을 결정하는 유기적 총체로서의 예술작품이라는 진부한 예술론”을 예술작품 스스로가 부정한다. 학문이 동일성의 늪으로 우리를 끌어당긴다면, 예술은 다양성을 제공한다. 특히 비슷한 소재와 형식 속에서도 정신에 의해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내재적 · 본질적 차이로 인도한다. 진정한 반복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게 해준다.

예술은 의미를 넘어 사용으로 이끈다는 점에서도 생성 작업이다. “현대 예술작품은 의미에 관한 문제는 가지지 않으며 오로지 사용 문제만을 제기한다.” 현대 예술작품은 오랜 기간 발이 묶여 있던 의미화 영역에서 인간을 해방시킨다. 현대 미술작품은 하나의 의미에 머물지 않는다. 이것일 수도 있고 저것일 수도 있다. 스스로 원하는 바대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개방적이다. 예술은 오직 생산할 뿐 어떤 의미 안에 갇혀서 의미의 한 부분을 구성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예술은 생산 기계다. “현대의 예술작품은 기계며 그러므로 작동한다.” 단지 작품 생산이 아니라 새로운 기호를 생산하고 그만큼 새로운 사유를 생산한다. “예술 기호는 사유하도록 강요한다.” 상상력 · 기억력 · 지성능력을 자극하고 강제로 사용하게 한다. 이때 예술가와 독자는 엉킨 것을 풀고, 다시 구체화하는 사람이다. 예술 작업에서 사용된 사유를 통해 다수의 사유가 생산된다.

이를 위해 화가는 모방에 의존하는 구상 작업에서 벗어나야 한다. 재현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에 매달리는 어리석은 행위다. “회화란 형상을 구상적인 것으로부터 잡아 뜯어내야 한다. ··· 과거 회화는 구상에 회화적 의미를 부여하던 종교적 가능성에 의해 조건 지어졌지만 현대 회화는 무신론적 유희다.”각주4) 전통적 회화는 구상적 · 삽화적 · 서술적 성격에 사로잡힘으로써 의미화의 주변을 서성거렸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회화에는 재현할 모델이나 스토리가 없다.

미술이 구상적 · 삽화적 · 서술적 성격에서 벗어나는 길은 두 가지다. 추상적 형태로 향하는 길과 형상으로 향하는 길이다. 들뢰즈는 이 가운데 형상의 길에 주목한다. 예술 언어가 감각의 언어일 때 진정으로 구현할 수 있는 방식이 형상이기 때문이다. 형상은 감각에 결부되어 느낄 수 있는 형태이기에 감각의 언어에 적합하다. 형상의 길은 재현에 집착하는 구상과는 다른 방식이다. 비록 그림 속에 신체가 그려진다 하더라도 대상 재현이 아닌 감각 작용이다. 미술에서 신체는 자신을 향해 작업하기에 동시에 대상이고 주체다. “색은 신체 속에 있고 감각은 신체 속에 있다. 공중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감각을 통해 색이나 모양으로 이미지화되어 그려진 신체는 본래의 신체와는 별개의 기호로 나타난다.

베이컨의 〈머리 연구〉는 형상의 길이 구상의 방법과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를 보여준다. 얼굴의 사실적 특징을 구성하는 눈, 코, 입, 귀가 사라지고 전체로서의 머리만 남은 상태다. 왜 작품 제목을 얼굴 연구가 아닌 머리 연구로 했는지 알 만하다. 들뢰즈는 베이컨의 작업을 이렇게 설명한다. “기관의 말초적인 것을 그리는 사실주의 화가와는 반대로 베이컨은 끊임없이 기관 없는 신체와 신체의 강렬한 사실을 그린다.” 구상 방법은 개인의 특징을 재현하기 위해 얼굴의 각 기관 묘사에 고도로 집중한다. 하지만 형상 방법은 화가의 감각에 의해 재조명된 이미지를 그린다. 이를 위해 베이컨은 신체를 변형시키고 형상과 머리라는 물질을 통합시킨다. 그러므로 화가에게 사실이란 대상이 아닌 감각이다.

리오타르도 예술의 창조성과 정신성을 강조한다. 예술작품은 단순한 분석 대상을 넘어 자체로서의 위상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실재라고 부르는 것과 동일한 실재를 그리고 정신분석학적 담론과 동일한 진지함을 예술작품에도 인정해주어야 한다.”각주5) 예술작품은 어떤 실재의 모상으로서 종속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서양 철학은 진리에 해당하는 것과 미와 쾌락에 해당하는 것을 부당하게 분리해 왔다. 예술을 현실에서 벗어난 특수한 공간, 예술가와 이에 관심을 갖는 사람의 제한된 공간 정도로 여겼다. 특히 프로이트를 비롯한 정신분석학 경향은 예술작품을 정신분석 대상으로 치부함으로써 예술 영역을 증후군 영역과 통합시켰다. 이제는 예술작품의 위상 자체가 변해야 한다. 예술작품을 내용과 구별되는 단순한 이미지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어느 한편에 의한 일방적 분석이 아니라 예술 자체를 창조적 사유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철학에 부여하는 권위와 예술을 구별할 필요가 없다.

목적과 중심, 서사에서 벗어난 다양성으로서의 미술

데리다는 목적은 물론이고, 목적 없는 합목적성을 중심으로 아름다움을 정의하는 관점도 거부한다. “목적으로부터 완전히 절단된 것만이 아름다울 수 있다.”각주6) 일차적으로 예술을 특정 이념이나 종교적 · 정치적 목적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견해를 거부한다. 나아가서는 특정 목적을 거부하는 대신 일반화된 합목적성으로서의 예술을 주장하는 칸트와도 거리를 둔다. 칸트는 ‘목적 없는 합목적성’을 주장하며, 자연적 미, 전적으로 야생적인 미가 이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미적 판단 이전의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느끼는 즉각적 흥미야말로 선한 영혼의 징후라는 점에서 자연적 미를 강조한다. 또한 모든 튤립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 이 튤립만이 아름답다. 특정한 시공간 속에서 느끼는 즉각적 흥미라는 점에서 칸트에게 “미는 항상 단 한번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 된다. 자연적 미와 단 한번으로 고착된 미가 합목적성의 핵심이다.

하지만 데리다가 보기에 순수한 자연적 미라는 합목적성도 예술에 일정한 방향성을 갖는 목적을 부여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고착된 미를 추구하기에 일관성 · 절대성까지 가미된다. 순수한 것이 순수하지 않는 것보다 더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사고방식 자체가 문제다. “최대한의 고착이 과연 있는가? 그리고 최대한의 자유는 어디에 있는가?” 최대한의 순수, 순수 자체는 존재할 수 없다. 시간의 흐름에서 분리된 단 한순간의 순수한 고착도 없다. 두 가지 모두 관념의 절대성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합목적성일 뿐이다.

예술작품에서 중심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의 구분에도 비판적이다. “철학은 항상 부수적인 것에 반대했다. 그러나 정확히 무엇에 반대하는 것인가? 파레르곤은 에르곤에 반대되며, 옆에 있으며, 동시에 부착되어 있지만 어느 한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작품 구성에 관여하고 작품의 구성 요소로 작용한다.”각주7)

에르곤(Ergon)은 완성된 미술작품, 파레르곤(Parergon)은 작품을 둘러싸는 액자를 의미한다. 그동안 철학이나 미학은 항상 중심과 부차를 구분하고 중심에 의미를 부여해왔다. 미술에서도 액자는 작품의 한 요소일 수 없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미술작품 내의 각 표현 요소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중심인물과 부수적 인물, 중심 사물과 부수적 사물, 혹은 인물과 배경 등으로 분리하고 한 쪽에 일방적 우위를 두었다. 중심만이 본질적으로 순수하게, 내재적으로 아름다울 수 있었다. 그리하여 부수적인 것은 내재적 · 본질적 요소가 아니면서,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여분 · 첨가 · 부착된 보충으로 여겨졌다. 절대적 원리를 중심에 놓고 파생된 개념과 현실을 계통적으로 배열하는 철학의 편향과 맞물려 있다.

중심과 부수적인 것의 구분은 무너져야 한다. “중심과 표상의 통일성에 관한 정의와 예술작품의 안과 바깥의 경계 설정은 이미 이상하다.” 현실 세계의 사물이나 현상에서 중심과 부차, 안과 밖의 경계를 절대적으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나기 십상이다. 건축물만 하더라도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창문은 건물 외부에 해당하는가 아니면 건물 내부에 해당하는가?” 또한 건축물 기둥은 중심에 해당하는가 아니면 부수적 부분에 해당하는가?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축물조차 구별이 어려운데 의식 영역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진리와 허구가 아니라, 허구와 허구가 있을 뿐이다.” 중심을 진리에, 부수적인 것을 허구에 연결시키는 사고방식 자체가 허구다. 중심과 부차의 구분 자체가 허구이기에 허구와 허구가 있을 뿐이다.

〈루크레치아〉

크라나흐, 15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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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는 크라나흐의 〈루크레치아〉를 통해 문제의식을 펼친다. 루크레치아는 정절을 지키는 여인을 뜻하는 말로, 많은 화가에게 인기 있는 주제였다. 여인이 목숨으로 정절을 증명하려는 듯 칼끝을 가슴으로 향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왼손과 오른손에 걸쳐 있는 투명 베일이 하복부를 가로지른다. 데리다는 의문을 던진다. “파레르곤은 어디에 있는가? 육체를 향하는 단검인가? 이 경우 파레르곤의 일부분만이 그녀의 유방과 배꼽이 이루는 삼각형이 중심 부분을 가리키고 있다. 혹은 목걸이가 파르레곤인가?” 아니면 투명 베일을 파레르곤이라 해야 할까? 통념상으로는 여인의 육체가 중심이고 나머지가 부수적 요소라고 하겠지만, 정작 정절이라는 주제와 연관시켜 보면 가슴을 향한 칼이 중심일 수도 있다. 혹은 엄격한 중세적 도덕률 아래에서 신화를 비롯해 일정한 제한적 장치를 통해서야 가까스로 나신을 묘사할 수 있었던 조건을 고려하면 투명 베일이 중심일 수도 있다.

보편적 목적이나 중심을 설정하려는 시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술은 그동안 순수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던 요소, 중심에 밀려 부수적 표현 수단으로 전락한 요소에 주목해야 한다. 더 나아가 그림 안의 논리적 · 체계적 관계를 해체함으로써 개별 요소 사이의 우연적이고 동등한 관계를 인정해야 한다. 개별 요소와 표현 사이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리오타르가 보기에 무엇보다도 미학의 주요 관심에 결정적 전환이 일어났다. “현대 미학의 문제는 ‘무엇이 미인가’가 아니라 ‘예술이 된다는 것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다.”각주8) 기존의 관심은 주로 아름다움의 본질적 의미를 찾으려는 데 집중됐다. 오랜 기간 재현 방식이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보편 기준을 만들어 예술작품에 올바른 서사와 표현 형식을 요구했다. 하지만 재현으로서의 미술은 그러한 방식을 욕망하는 자에게만 의미 있는, 지극히 일부분의 표현 형식일 뿐이다.

현대 미술에서 기본적으로 미적 판단기준 자체가 없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무엇이 예술일 수 있는지에 대한 규칙도 없다. “예술작품 스스로가 규칙과 범주를 찾아낸다. 예술가와 작가는 미래에 만들어질 규칙을 만들기 위해 아무런 규칙도 없이 작업하고 있다.” 뒤샹의 작업도 여러 가능성 중의 하나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제 어떤 서사적 내용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예술이 해방되었다는 점이다. 작품에서 화가가 시도한 표현 자체가 미학을 대신한다. “포스트모던한 것은 근대적인 것에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 자체로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에 보편적으로 권장될 수 있는 좋은 표현 형식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취향의 합의도 불가능하다. “총체성에 전쟁을 선포하자. 표현할 수 없는 것의 증인이 되면서 차이를 활성화하고 그 이름의 명예를 구출하자.” 예술가의 개별 취향과 관객의 개별 취향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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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순 집필자 소개

인문학이 생생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순간 화석으로 굳어진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인문학적 사유를 일상의 사건과 삶에 밀착시키는 방향으로 글을 써왔다. 동서양 미술작품을 매개로 철학적·사회적 영역으로 ..펼쳐보기

출처

사유와 매혹 2
사유와 매혹 2 | 저자박홍순 | cp명서해문집 도서 소개

미술로 서양 철학 전체를 조망하는 새로운 개념의 철학사이다. 미술작품을 단순한 참고 도판으로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 작품을 분석해 철학의 흐름과 어떻게 맞물려 변..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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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현대 철학과 미술 생철학 공리주의 · 실증주의 · 실용주의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학 실존주의 구조주의 후기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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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후기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던 미학사유와 매혹 2, 박홍순,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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