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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관념론 미학
칸트, 즐거움과 숭고로서의 미와 주관적 보편타당성을 지닌 미
칸트는 미학에서도 합리론과 경험론을 결합시킨다. 먼저 경험론 미학의 핵심인, 즐거움과 취미로서의 아름다움을 주장한다. “하나의 표상에서 전혀 인식의 요소가 될 수 없는 주관적인 면은 표상과 결합되어 있는 쾌 또는 불쾌다.”각주1) 그리고 아름다움이라는 “쾌에 의해 판단하는 능력을 취미”라고 규정한다. 아름다움 역시 대상과 연관된 표상에서 오지만 주로 주관적 쾌와 불쾌라는 감정에 의거하기 때문에 객관적 인식의 요소이기는 어렵다. 객관적 개념과 연관될 수 없기에 아무런 필연성도 알려줄 수 없으며, 선험적 타당성을 주장할 수도 없다. 어떤 것이 아름다운지 아닌지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표상을 지성에 연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에 의해 주관적 쾌 또는 불쾌의 감정에 연결시킨다. “취미 판단은 인식 판단이 아니며, 논리적이 아니라, 미감적 · 감성적이다.” 미감적 · 감성적이란 규정 근거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샤프츠베리의 무관심성도 수용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취미 판단은 “대상 또는 표상 방식을 일체의 관심 없이 흡족이나 부적의(不適意)함에 의해 판정하는 능력”이다. 미에 대한 즐거움은 대상을 소유하거나 이익을 기대하는 등의 이해관계에서 독립해 있는 무관심함에서 온다. 취미의 충족만이 유일하게 자유로운 충족이다. 감각이나 추상적 이성의 이해관계도 없이 오직 즐거움이라는 흡족한 감정만을 줄 때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경험론 미학에서 조심스럽게 모색해 오던 미의 상대성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이 더 구체적이다. 기본적으로 미는 주관적 성격을 지니므로 불가피하게 상대성을 지닌다. “무엇이 아름다운지를 개념에 의해 규정하는, 객관적 취미규칙은 있을 수 없다.” 취미의 원형은 각자가 자신 안에서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는 순전한 이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흑인은 경험적 조건 아래에서 백인과 다른 형태의 미에 대한 규범 이념을 가질 수밖에 없고, 중국인은 유럽인과 다른 규범 이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경험론의 미학을 반복하는 것은 아니다. 합리론을 결합시킨 독특한 관념론 미학이론을 통해 대상 반영으로서의 모방이론을 거부한다. 특히 미에 대한 서로의 공통 감정을 통해 주관성의 본질을 서로의 주관성이 접근하는 상호주관성으로 이해하는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칸트가 보기에 주관적 · 상대적 성격을 지닌다고 해서 모든 종류의 취미가 다 같은 정도의 지위나 비중을 갖지는 않는다. 야만적 상태의 미가 있다면, 더 고차원적 미가 있다. “취미가 흡족을 위해 매력과 감동의 뒤섞임을 필요로 하고, 심지어 이것을 자기에 대한 찬동의 척도로 삼는 곳에서, 취미는 항상 아직도 야만적이다.” 즉흥적 · 일시적 매력이나 감동도 취미의 일종임은 분명하지만 낮은 차원의 미에 속한다. 매력과 감동은 대부분 감각 질료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미는 질료적 대상을 전제로 하기에 부수적 미에 해당한다.
고차적 미는 자유로운 상상력에 기초하여 형식의 합목적성에만 근거하는 순수한 취미판단이다. 질료에서 상대적 독립성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자유로운 미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존재자의 이성 이념”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예를 들어 천국 · 지옥 · 영원 · 창조나 사랑 · 명예 · 죽음 등은 사물 형식을 넘어 상상력을 통해 미감적 이념 능력이 최고로 발휘될 수 있는 고차적 미를 실현한다.
고차적 미를 정당화하기 위해 본질적으로 주관적이지만, 보편타당성을 띠는 주관적 보편타당성을 주장한다. 주관성 내에서 보편타당성을 추구할 수 있는 근거는 미에 대한 공통의 감정에서 온다. “취미판단에서 생각되는 보편적 동의의 필연성은 주관적 필연성인데, 공통감의 전제 아래에서는 객관적인 것으로 표상된다.” 공통감은 선험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구성원 간에 사회적 동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모든 사람이 타당하다고 여길 수 있는 보편적 동의라는 점에서 다른 사람의 찬성에 의존한다. 인간은 사교적인 존재인데, 자기 쾌감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어 하고, 그런 일에 능숙한 자를 세련된 인간이라고 판정하기 때문에 동의할 가능성이 열린다. 이를 통해 상호적인 주관성으로서의 주관적 보편타당성을 가진 이상화된 미의 추구가 가능하다.
칸트는 이상화된 아름다움으로서 숭고미를 강조한다. “숭고한 것이란 그 도달 불가능한 사물이나 현상이 이념 안에서는 현실로 느껴지도록 하는 자연의 대상이다.” 일반적 미는 대상의 형식에 관련되지만, 숭고는 형식의 제한을 넘어선다. 대상의 형식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수학적 숭고와 역학적 숭고로 제시한다. 수학적 숭고는 수학의 모든 규칙처럼 단지 사유만으로도 감관의 모든 척도를 뛰어넘는 마음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다. 역학적 숭고는 무제한적이라고 느낄 정도의 자연의 위력을 의미한다. 측량하기 어려울 정도로 압도하는 자연의 힘은 사물의 형식을 뛰어넘는 위력을 제공한다. 위력이 감상자에게 직접 해를 미치지 않을 때 숭고함을 느낀다. 숭고함은 사물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미로서 주관적 보편타당성을 지니기에 예술이 일관되게 추구해야 한다.
칸트는 여기에 천재 개념을 결합시킨다. “예술은 천재의 기예다. 천재란 기예에 규칙을 주는 천부의 자질이다. ··· 천재란 어떠한 특정한 규칙도 주어지지 않는 것을 만들어내는 재능이다.” 질료의 한계를 넘어서 상상력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는 재능을 통해 고차적 미, 숭고로서의 미로 나아갈 수 있다. 천재만이 사물 형식에 매여 있는 모방 정신에 전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천재는 예술에 스스로 규칙을 부여함으로써 본보기라 할 수 있는 전형을 창출한다. 스스로 규칙을 산출하는 칸트의 천재 개념은 정형화된 표현방식에 치중하던 신고전주의를 넘어 예술가의 독창성을 중시하는 낭만주의 예술에 큰 영향을 준다.
셸링, 모방이론 비판과 정신 활동으로서의 특성적 회화
칸트가 미를 감정에서 오는 취미 판단으로 규정했다면 셸링은 정신 활동을 더욱 강조한다. 미술은 “영혼에 뿌리를 두는 정신적 사상과 개념을 표현”각주2)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은 영혼과 자연 사이를 잇는 끈 구실을 하며 또한 오로지 둘 사이의 살아 있는 중심에서만 힘이 미칠 수 있다. 미술을 칸트처럼 개념에서 도출될 수 없는 감정 활동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예술은 감격이라 부르는, 지극히 내적인 심정과 정신의 생생한 움직임에서만 생겨난다.” 미술에서 형태는 정신 활동을 통해 개념에서 산출된다.
미학에서 가장 큰 오류는 모방이론이다. “아름다움이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 예술이 언제나 자연에 뒤질 수밖에 없다면, 이른바 실재하는 자연을 능가하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는가?” 모방이 예술이라면 예술은 항상 자연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녀야 한다. 미술이 외형적 모방에 머문다면 자연을 대상의 죽은 집합이거나 아니면 마치 사물이 놓여 있는 창고쯤으로 여기는 단견에 불과하다. 자연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자연을 신성하고 부단히 창조를 행하는 세계의 근원 힘으로, 모든 것을 자기 자신에게서 산출하고 또한 활동적으로 생산해내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사물의 힘을 있게 하는, 사물 안에 있는 창조적 생명을 아름다움으로서 표현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파악하고 표현하는 것은 정신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셸링은 미술에 가장 큰 해악을 끼치는 모방이론이 당시 미술 사조에서는 신고전주의로 변형되었다고 비판한다. 신고전주의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걸쳐 프랑스 계몽사상과 프랑스대혁명의 영향을 받으면서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퓌슬리의 〈고대 유물 앞에서 절망하는 예술가〉는 신고전주의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한 예술가가 그리스 · 로마 조각 앞에서 절망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의 앞에는 파손된 조각의 일부분인 거대한 손과 발이 놓여 있다. 예술가는 그리스 · 로마의 고전주의 예술이 이룩한 성과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고 있다.
셸링은 신고전주의 역시 모방의 일종, 어떤 면에서는 더욱 극악한 모방이라고 비판한다. “모방의 대상은 바뀌었고, 모방이 남았다. 자연 대신 숭고한 고대 작품이 등장했으며 학생은 이 작품의 외적 형태를 담아내고자 힘쓰지만, 이들을 채우고 있는 정신은 결여된 상태다.” 신고전주의는 고대 역사나 신화, 혹은 표현 방식에 주된 관심을 갖기에 자연을 직접 모방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은 더 노골적 모방에 불과하다. 퓌슬리의 그림에 등장하는 예술가처럼 고대 작품을 모방하는 데만 골몰하기 때문이다. 자연은 결코 반복되지 않듯이 고전주의가 다시 돌아올 수 없는데도 모방에 치중한다면 미술의 발전은 요원하다.
모방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틀에 박힌 형태 중심의 묘사도 지양해야 한다. “예술은 어떤 형태에도 복속되지 않으므로, 창조적 본성을 지닌 예술에는 형태가 없다.” 고정된 틀을 넘어서는 방식, 예술가가 갖는 개성이 충분히 발휘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고유한 전체에 맞서 자신을 주장한다는 의미에서 이를 ‘특성적 예술’로 규정한다. 숭고하고 무관심한 미를 최고의 것으로 여기는 만큼이나 개성을 살린 특성적 표현을 예술의 중요한 기준으로 설정한다. 예술가의 개성을 중시하는 특성적 예술 주장은 칸트의 천재 개념과 함께 예술가의 독창성에 주목하는 낭만주의 회화를 자극한다.
셸링은 특성적 예술을 실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미술 방식을 회화로 보았다. “고대에는 조각이, 근대 세계에는 회화가 각각 우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고대는 철저하게 조형적으로 사유했기 때문에 조각이 적합한 표현 방식이었다면, 근대는 정신적으로 훨씬 높은 단계에 이르렀으므로 이를 담아낼 수 있는 회화를 중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회화는 조각처럼 물체적인 것을 통해 표현하지 않고, “빛과 색채 즉 비물체적이고 거의 정신적인 수단을 통해 표현”하기 때문이다. 조각은 질료적 특성이 강할 뿐만 아니라 표현 형식에 크게 구애받는다. 하지만 정신 활동으로서의 특성적 예술이 형식을 벗어난 개성을 추구하려면 물질에 의존하는 정도가 훨씬 낮은, 빛과 색에 의존하는 회화가 적합하다. 빛과 색을 통해 정신 너머로 소재를 끌어올리고, 또한 자기 내면으로 심화하기 쉽기 때문에 근대 미술은 회화로 나아가야 한다.
헤겔, 감정에서 개념과 이념으로 미의 변증법적 고양
헤겔은 예술미와 자연미를 구분하면서 셸링이 주장하는 정신성 위주의 미학 이론을 강화한다. “예술미가 자연미보다 우월하다. 예술미는 정신으로부터 다시 태어난 미이기 때문이다.”각주3) 예술을 향한 욕구는 내면세계와 외면세계를 의식 대상으로 고양시켜야 하는 이성적 욕구이기 때문에 정신에 속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예술미는 특정한 형식 속에 있는 이념이다.
예술은 사상과 이념이 지니는 본질 · 숭고함 · 고귀함 · 영원성 · 탁월함을 감정과 직관에 제공해 누리도록 하고, 나아가서는 불행 · 재난 · 악 · 죄의 개념을 이해하여 도덕적 선을 통찰하고 정화하는 데 이르게 하는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정신과 정신의 산물이 자연 현상보다 우월하듯이 예술미도 자연미보다 우월하다. 단지 상대적 우월성은 아니다. 아름다움의 본령이 정신적 예술미에 있다. 자연미는 정신에 속해 있는 미의 반사에 불과하기 때문에 불충분하고 불완전하다. 하지만 예술미에 높은 지위를 부여하더라도 예술은 형식상 특정 내용에만 머무르기 때문에 최고의 절대적 방식은 아니고, 사상과 같은 고유한 정신 활동에 비해서는 하위에 속한다.
정신적 예술미의 관점에서 볼 때 모방론과 취미론은 가장 먼저 물리쳐야 할 대상이다. 모방은 “불필요한 노력”이다. 회화나 연극 따위에서 모방해서 표현하는 것 즉 동물이나 풍경은 물론이고 인간의 모든 일에 대해서 우리는 이미 듣고 보아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방은 “자연보다 못한 오만한 유희”다. 예술은 표현수단이 한정되어 있어서 단지 한 쪽 면만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단순 모방에 그치면 사실적 생동감 대신 오히려 살아 있는 체하는 꾸민 모습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훌륭한 예술작품일수록 자연의 외면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모방하는 조잡한 솜씨에서 벗어나야 한다.
취미론도 예술이 가져야 할 정신적 통찰과 도덕적 교훈을 내팽개치는 전형적 오류다. 칸트 미학의 문제점은 취미 판단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데 있다. 칸트의 판단으로는 “대상의 객관적 본성은 인식되지 않고 단지 주관적 반성의 방식만 언표될 뿐”이다. 칸트의 관점에서 미는 상상력의 자유로운 유희에 불과하고 주관이 갖는 쾌감과 호감에만 관련된다. 미는 칸트처럼 직관과 감정에 머물지 않고, 정신적 보편성으로 높임으로써 자연과 자유, 감각성과 개념이 하나가 되어 서로 권리를 찾고 충족되어야 한다.
헤겔은 17세기 에스파냐 바로크 회화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무리요(Murillo)의 〈포도와 수박을 먹는 거지 소년들〉을 예로 들어 미술의 정신적 고양을 설명한다. 두 거지 소년이 구걸해 온 포도와 수박을 허겁지겁 먹고 있다. 여기저기 해진 누더기 차림에, 맨발로 돌아다니고 있다. 헤겔은 이 그림의 대상도 외적으로는 비속한 자연에서 취한 것이라고 한다. 대상의 특정 현실과 형태 그리고 감각과 감정에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대상과 감정에 한정되지는 않는다. 가난하고 반쯤 벌거벗은 상태에서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어느 탁발승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태평하고 근심 없는 표정을 하고 있다. 그 표정이 건강함과 삶에 대한 충만한 기쁨을 담고 있다.
“이처럼 외부에 대해 아무런 근심이 없고 내면의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을 이상적 개념이 표현해야 한다.” 대상과 감정에서 출발했어도 회화는 자유라는 정신적 개념으로까지 높여야 한다. 칸트는 바로 이 지점을 무시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는 주관성을 전제로 한 동의 수준에서의 보편성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객관성 · 절대성을 지닐 수 있다. 회화로 실현된 자유 개념을 통해 “미의 영역은 유한한 관계로부터 벗어나 이념과 진리의 절대적 영역 속으로 우뚝 솟아오른다.”
정신성을 밖으로 드러낸 정도에 따라 건축과 조각, 회화는 지위가 다르다. 여기에서도 헤겔은 정신성을 기준으로 조각보다 회화가 위에 있다고 강조한 셸링의 입장을 받아들인다. 미술에서는 정신이 형상화되는 세 단계가 있다. 상징예술 · 고전예술 · 낭만예술로 나아가는데, 각 단계는 건축 · 조각 · 회화에 대응한다.
건축으로 대표되는 상징예술은 형상화의 단순한 모색 단계다. 자연적 · 감각적 소재 안에서 형상을 얻기 때문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조각으로 대표되는 고전예술은 정신성을 지닌 인간을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건축보다 우위에 있다. 하지만 외적 형식에 매여 있기에 정신이 개별 대상에 국한된 한계가 있다. 회화로 대표되는 낭만예술은 정신과 개별 대상, 이념과 현실성을 대립시키고 정신성을 더욱 높인다는 점에서 최고의 형식이다. 조각이 감각적 공간의 총체성을 필요로 했다면, 회화는 평면의 캔버스에 색채를 통해 표현함으로써 질료의 감각성과 공간의 총체성에서 예술을 해방시킨다. 낭만예술은 “내면으로 파고드는 고뇌와 고통, 정신의 내면성, 굴복 속에서도 느끼는 기쁨, 고통 속의 축복, 고뇌 속의 행복” 등을 고대 그리스 예술보다 더 심오하게 표현할 수 있다.
같은 논리가 예술에도 적용된다. 정신성을 드러냄을 기준으로 회화와 음악 그리고 문학을 구분한다. “회화가 내용을 형상화하는 질료로 이용하는 것은 가시성 자체”이기 때문에 예술 영역 내에서 가장 낮다. 회화보다 높은 단계는 음악이다. 음악의 표현 수단도 악기라는 질료에 의존하므로 아직 감각적 요소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가상적 공간이 여전히 존재해야 하는 회화와 달리 음악은 공간을 뛰어넘어 자신을 하나의 점으로 관념화하여 표현한다는 점에서 정신성이 더 높다. 예술의 가장 높은 단계는 문학이다. 문학은 회화나 음악과 달리 표현 수단조차 질료적 성격을 탈피하여 정신성을 최고조에 달하게 한다. “시 예술은 자체 내에서 자유로워지며 외적이고 감각적인 질료에 매여서 실현되는 정신이 아니라, 오직 표상과 감정의 내적 공간과 시간 속에 몰입하는 보편적 예술이다.”
그리고 예술의 정신성 실현에서 천재적 능력을 중시하는 점에서는 칸트의 문제의식을 받아들인다. “천재성이 결여된 재능은 외적 숙련일 뿐이다.” 천재의 특성은 재능 · 상상력 · 영감인데, 이때 재능은 대상에게 자극받은 상태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자의적으로 그 상태로 옮겨갈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상력과 영감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상상력과 영감은 창조적 · 자각적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이성적인 것을 실제 형상을 지닌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천재성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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