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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 인식론
프로이트는 정신분석 이론이 기존 철학처럼 정교한 인식론적 체계를 가질 수는 없다고 보았다. “정신분석학 탐구는 철학체계처럼 완전하고 기성품과 같은 이론적 구조를 만들어낼 수 없고, 정상적이거나 비정상적 현실을 분석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정신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한 길을 따라 한 발짝씩 더듬어 가야 한다.”각주1)
무의식에는 마음 속 깊이 억압된 사고와 감정 · 기억이 저장되어 있다. “모든 정신과정은 일단 무의식 단계나 절차로 존재했다가 나중에 의식 단계로 이행한다.”각주2) 무의식은 직접 알 수는 없지만 행동으로 추측할 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 방법이 꿈을 통한 이해다. 꿈은 무의식적 욕구나 소망, 갈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심리현상은 주로 무의식적 동기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무의식의 토대가 되는 본능적 충동이 그대로 드러나지 않고 내적 저항 과정을 거쳐 굴절 · 왜곡된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 모든 접근과 해명 과정은 지극히 의식적이다. “우리의 모든 지식은 항상 의식과 결부되어 있다. 심지어는 무의식까지도 그것을 의식화시킴으로써 알 수 있게 된다.”각주3) 무의식 영역을 무의식으로 분석할 수는 없는 일이다. 프로이트는 무의식 영역을 과학적으로 해명 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런 점에서 이성이 중심인 근대의 계몽주의적 사고방식을 전면적으로 비판하면서 역설적이게도 계몽주의 전통에 의존한다.
억압과 정신, 의식 · 전의식 · 무의식, 자아 · 초자아 · 이드
의식 · 전의식 · 무의식
무의식과 의식 관계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우선 억압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의식은 의식에 직선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정신 안에는 무의식과 의식이 각각 거처하는 방이 있다. “두 방 사이의 문턱쯤에서 한 문지기가 심리적 충동을 걸러내고 검열하는데,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두 번째 방에 들어서지 못하게 한다.”각주4) 만약 무의식적 충동이 방 문턱까지 왔는데 문지기에게 제지당하면 의식할 수 없다. 이를 억압되었다고 한다.
억압은 관념이 의식화되기 전에 존재한다. 억압된 무의식은 의식적 정신분석 작업에 저항한다. “억압을 만들고 유지시키는 힘이 분석 작업 중에 나타나는 ‘저항’이다. 억압 이론에서 무의식 개념을 얻는다. 억압된 것이 무의식의 원형이다.”각주5) 억압과 저항으로 인해 무의식은 두 종류로 나뉜다. 잠재되어 있으나 의식화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억압되어 있어서 자체로는 의식화할 수 없거나 어려운 것 등 두 종류의 무의식이 존재한다.
무의식을 두 종류로 구별함으로써 정신 구조를 3개 층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의식과 전의식 그리고 무의식이다. 잠재되어 있으나 의식화할 수 있는 것이 전의식에 해당한다. “전의식은 무의식보다는 의식 쪽에 훨씬 가까이 있다. ··· 서술적 의미로는 두 종류의 무의식이 있고 역동적 의미로는 하나의 무의식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의식 · 전의식 · 무의식이라는 용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 전의식 내용은 쉽게 의식에 접근할 수 있고, 일시적으로만 무의식적이다. 무의식 내용은 전의식으로 자유롭게 흐르지 않는다. 둘 사이에 억압과 검열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전의식은 무의식과 의식 사이에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 성적 본능을 비롯한 일차적 요소에 영향을 받지만, 다른 한편으로 의식처럼 언어와 논리적 사고를 사용하는 이차적 과정에 의해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의식이 언어와 논리적 사고를 사용한다고 해서 감각이나 감정과 다른, 별도의 독립된 통로를 통해 스스로를 완성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의식도 무의식과 마찬가지로 경험과 감정에 의존한다. “의식이 산출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외부세계로부터 오는 자극의 지각과 정신 기관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쾌와 불쾌 감정으로 구성되어 있다.”각주6) 의식도 외부세계의 자극을 감각적 경험을 통해 접촉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이때 즐거움과 불쾌감이라는 감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만 의식은 감각과 감정을 통해 걸러진 정보를 언어를 사용하여 논리적으로 재구성하는 특성을 지닌다.
의식과 무의식은 시간과 맺는 관계에서도 구별된다. 의식은 현재의 시간과 공간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의식과 달리 무의식은 시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있다. “정신분석적 발견의 결과로 오늘날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 사고의 불가결한 형식들’이라는 칸트의 법칙을 논해야 할 입장에 있다. 무의식적 정신 과정은 무시간적이다.” 칸트를 비롯하여 근대 철학의 주류는 정신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기본적 틀 내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보기에 무의식은 무시간적이다.
우선 무의식 내에 시간적 질서가 없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무의식을 형성하는 억압된 욕구는 시간의 순서에 따라 나열되거나 나타나지 않는다. 기억도 못할 만큼 아득한 과거에 강제된 억압이 최근의 불안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등장할 수 있다. 또한 시간이 무의식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무의식은 시간에서 벗어나 있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든다고 해서 무의식의 힘이 옅어지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무의식에 논리적 시간과 공간 개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달리(Dali)의 〈기억의 고집〉은 시간의 논리성이 사라진 무의식 세계의 단면을 그림을 통해 묘사했다. 흔히 시간은 정확성을 상징한다. 적어도 지구 안이라면 어디에서나 1분의 길이는 같고, 언제나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향한다. 말 그대로 규격화된 규칙성이 지배한다. 하지만 그림에서 시간은 정확성의 신화를 벗어던진다. 시계가 녹아내린다. 자연의 나무 위든, 인공적 사물 위든 흘러내리는 시계 속에서 시간은 본래의 규격화된 틀을 유지하지 못한다. 시간과 공간에 기초한 현실이나 일관된 논리도 찾아볼 수 없다. 태곳적 모양을 간직한 듯한 생명체 위에 널브러진 시계도 여지없이 흘러내린다. 인류가 생긴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의식의 세계 안에 시간의 자리가 없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인 듯하다.
자아 · 초자아 · 이드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전의식과 무의식의 작용으로 인간의 마음은 복잡한 구조를 갖게 된다. 우리가 흔히 자아라고 부르는 것이 곧바로 마음을 대표하지 못한다. “마음의 구조를 이드 · 자아 · 초자아로 구분하는 것이 지식의 진보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마음 속의 역동적 관계를 더 철저히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자아는 무의식의 영향을 받는 이드와 초자아 사이에서 부분적으로만 마음에 영향을 미칠 뿐이다.
이드(id)는 본능적 에너지 즉 리비도의 저장고로서 쾌락을 추구하고 불쾌함을 피하는 쾌락원리만을 따른다. “이드는 충동에서 나온 에너지로 채워져 있다. 거기에는 어떤 조직 체계나 단일화된 의지도 없다. 오로지 쾌락원리에 따른 본능적 욕구 충족을 위한 충동만이 있을 뿐이다.”각주7) 도덕도 선악도 없으며 논리적 사고도 작용하지 않는, 생물학적 과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무의식 영역이다. 성적 에너지의 지배 아래 있기 때문에 시간관념에서도 벗어나 있다. 초자아는 사회나 이상(理想) 측면과 관계를 맺는다. 인격의 사회적 가치와 양심 · 수치감 · 후회, 가족이나 그 밖의 집단이 추구하는 공동의 이상 등은 모두 초자아의 기능적 측면에 해당한다.
자아는 이드와 초자아에 둘러싸여 있다. “동시에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 불쌍한 자아는 훨씬 힘들다. 엄격한 주인 셋을 섬겨야 한다. ··· 자아가 섬기는 세 주인은 외부세계, 초자아 그리고 이드다.” 자아는 세 주인을 만족시키기 위해, 세 주인에게 동시에 복종하기 위해 애를 쓴다. 서로 다른 세 방향에서 조여 들어오는 힘을 느끼면서 세 가지 위험에 노출되어 지나친 압박을 받으면 불안 공포로 반응한다.
자아와 초자아는 모두 이드로부터 발전한 것이다. “자아는 특별히 변형된 이드의 일부분에 불과하다.”각주8) 초자아도 자아보다는 이드에 더 연관이 있다. “초자아는 의식적 자아에서는 독립성을, 무의식적 이드와는 밀접한 관련성을 드러낸다.” 초자아는 대부분 무의식적이다. 하지만 자아와 초자아가 모두 이드에 젖줄을 대고 있더라도 같은 원리에 근거하지는 않는다. 자아는 현실 원리, 초자아는 도덕 원리의 지배를 받는다. 초자아는 내부로부터 선악 판단을 내려 행동을 촉진하거나 제약하는데, 그러한 선악판단과 도덕원리는 서양 주류철학의 견해와는 달리 의식에서 나오지 않는다. 성적 욕망과 연관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도덕 감정의 근원이다.
자아가 이드에 비해 일방적으로 무력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정신분석학은 자아가 이드를 점진적으로 정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다.” 자아는 이드와 초자아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자아는 외부에서뿐만 아니라 내면에서도 자극을 받아들이고, 그 두 영역에서 오는 즐거움과 불쾌함을 수단으로 하여 정신적 사건이 즐거움의 원칙과 일치하도록 길을 지시하려 애쓴다.”각주9) 그런 점에서 자아는 무력하지 않다. 이드의 욕구가 현실적으로 모두 충족될 수는 없기에, 자아는 에너지가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형태로 발산되도록 발전시킨다. ‘방어기제’를 통해 본능적 에너지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형태로 전환시킨다. 자아는 이드와 초자아의 요구를 중재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분석의 과제는 무의식에서 출발하되 의식으로 향한다. “우리에게 쓸모 있는 것은 무의식을 의식으로 대체하는 일이며, 이는 무의식을 의식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과 같다.”각주10)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의식 차원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억압과 함께 신경증의 조건을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서 병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갈등 역시 해결이 가능한 정상적 갈등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이를 통해 이드가 지배하는 쾌락원칙에서 자아의 현실원칙으로 나아갈 수 있다. “쾌락원칙에서 현실원칙으로의 이행은 자아 발달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진보 중 하나다.” 자아가 현실원칙을 따르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현실원칙도 근본적으로는 쾌락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때의 쾌락은 비록 지연되거나 감소된 것이지만 현실에 의해서 보장된 쾌락이다.
성적 억압의 작용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환자의 임상적 경험과 함께 꿈을 분석함으로써 억압 · 굴절된 충동이 본질적으로 성적인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더 나아가 신경증의 여러 증상이 성적 충동과 정신적 방어 사이의 갈등에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공포 · 불안 · 분노 등의 성적이지 않은 정서도 히스테리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성적 요인이 병리적 결과를 가져오는 데 가장 중요하다는 점은 되풀이해 주장할 가치가 있다.”각주11) 그만큼 성적 욕구는 정신분석에서 매우 중요하고 특별하다.
권력을 향한 의지를 강조한 아들러의 문제의식을 비롯해, 성적 욕구와 관련이 적다고 여기지는 요소의 영향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런 권력과 특권을 향한 동기의 중요성을 한 번도 부정하지 않았다.”각주12) . 문제는 이러한 동기들이 지배적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인정할 수 없다. 다양한 요소 중에서 가장 핵심적 요소는 단연 성적인 동기다.
성적 충동을 정신질환만이 아니라 사회 영역으로 확대 적용한다. 성적 충동은 “정신 가운데 최고의 문화 · 예술 · 사회적 창작에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지대한 공헌”을 했다.각주13) 하지만 사회는 의도적으로 성적 충동과 정신질환의 관계를 부정하거나 회피한다. 사회는 법과 제도 등 인위적 요소가 지배한다. 사회는 의식적 · 이성적 성곽에 둘러싸여 있다. 사회 입장에서 볼 때 성적 충동은 의식이나 이성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 괴물이다. 사회는 성적 충동을 적대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사람의 관심이 여기에서 멀어지도록 힘쓴다. “사회는 정신분석학의 연구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심미적 관점에서는 혐오스러운 것, 도덕적 관점에서는 비난받아 마땅할 것, 더 나아가 위험한 것으로 낙인찍으려 한다.”
확실히 인류가 의식의 성(城)을 쌓는 동안 무의식이 배제되어 왔고, 욕망이나 충동의 역할이 부당하게 억압당해왔다는 비판은 상당히 큰 의의가 있다. 특히 문화와 예술 영역에서 욕망과 충동이 큰 역할을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은 성적 욕망을 문화와 예술을 통해 표출해왔고, 이 과정에서 예술 형식의 발전에 상당히 기여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가 성적 욕구나 억압을 강조할 때 사용하는 성 개념은 상당히 포괄적이면서 동시에 구체적이다. “성 개념을 남녀의 대립, 쾌락의 희구, 생식기능, 비밀스럽고 점잖지 못한 특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이해한다면, 일상생활에 필요한 실천적 요구는 충족된다. 그러나 학문에서는 충분치 않다.” 성 개념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서 성을 이해하는 정도가 판이하게 달라진다. 만약 특정 내용이나 방식으로 제한하면 이를 넘어서는 모든 사고와 행위는 비정상적 일탈행위, 범죄행위로 규정받는다.
기독교적 엄숙주의가 지배한 중세 유럽에서는 성을 생식기능으로 제한했다. 그러면 자위행위나 입맞춤처럼 출산과 관련되지 않은 성행위는 비정상으로 치부된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와 관련된 모든 사태라는, 일반론적 규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좀 더 넓혀서 남녀 대립, 쾌락 희구, 생식기능 등으로 이해하면 실용적이긴 하지만 부족함은 여전하다. 동성애자는 어떻게 분류해야 하는지가 여전히 난점으로 남는다.
프로이트는 성을 몇 단계로 세분화하고 성격 형성과 관련해 과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성적 욕구는 최초에 입을 거쳐 항문으로 나아간다. “유아기에 어머니의 유방을 빠는 행위는 일생에 걸친 성생활의 단초다. ··· 유아기의 성적 대상은 자신의 신체다. 음식 섭취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은 부분적으로 배설 행위에서도 반복된다. ··· 이성애자나 동성애자에게 모두 항문이 성교 과정에서 실제로 질의 역할을 담당한다.”
최초의 성적 욕구는 입에서 시작된다. 이후 항문 · 성기로 나아가지만 입은 오랜 기간 무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성의 구강기는 언어 사용에 영원한 흔적을 남겼다.”각주14) 사람들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맛있어 보인다고 한다. 좋아하는 사람을 사탕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꿈에 나오는 단것이나 사탕 등은 항상 포옹이나 성적 만족을 나타낸다.
성적 욕구와 연관된 인간의 성격을 네 가지 유형 즉 구순애-수용적 성격, 구순애-사디슴적 성격, 항문애-사디슴적 성격, 성기애적 성격으로 구분한다. 입과 항문, 성기를 중심으로 성적 욕구를 구분하고 여기에 각각의 성격 구조를 대입한다. 정상적으로 발달하는 사람은 네 단계를 모두 거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이 몇 번째 발전단계에 머물러버리고 성인이 된 후에도 이전 단계의 특색을 그대로 지녀서 문제가 생긴다.
구순애-수용적 성격은 물질적 · 정서적으로 양육되어지기를 기대한다. 구순애-사디슴적 인물도 필요한 모든 것이 외부를 통해 주어져야 한다고 여기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힘으로 탈취하려는 약탈적 · 착취적 성격을 갖는다. 항문애-사디슴적 성격은 새로운 것이 결코 생기지 않는다고 믿으며, 자기 것을 보호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기애적 성격이 사람에게 주어지는 사랑하고 일하는 능력의 기초다. 현실의 사랑 · 증오 · 야심 · 권력욕 · 탐욕 · 잔혹성 등은 이러한 여러 종류의 성적 에너지 즉 리비도와 연관을 맺고 나타난다.
성기에 대한 관심이 곧바로 완전한 정상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기에 관심을 가짐과 동시에 아이는 거세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3세쯤 성적 흥분이 성기에 집중되고, 성기를 사용하는 자위행위가 중요성을 갖는다. “남자 아이가 여동생이나 소꿉친구에게 질이 있음을 발견하면 일단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 나중에 그는 자신에게 열려진 가능성에 경악하며 성기를 가지고 심한 장난을 쳤을 때 잘린다는, 일찍부터 들어온 협박은 후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친다. 거세 콤플렉스의 지배적 영향을 받게 된다.”각주15) 거세 콤플렉스는 건강할 때는 성격 형성에, 병에 걸렸을 때는 신경증에 영향을 미친다. 소녀는 소년이 지닌 것을 부러워하며 남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갖는다. 이런 욕망은 후에 여성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때, 신경증 증상으로 나타난다.
바로의 〈여자 별 사냥꾼〉은 성적 요소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극명하게 담고 있다. 바로는 다섯 남자와 결혼했으며 그 외에도 수많은 남성과 성관계를 맺었다. 동시에 여러 명의 남자와 섹스를 즐기는 일도 많았다. 그림에서 여인은 포충망과 채를 들고 있다. 별 사냥은 상징적 표현이고, 그녀의 삶을 통해 볼 때 남성 사냥을 의도하는 듯하다. 가슴을 풀어헤친 옷은 충족되지 않는 욕망을 상징한다. 프로이트의 입장에서 볼 때 그녀는 색정광이며 성도착 증상에 해당한다. 모든 남성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행위는 남성 편력으로, 집단 성행위는 음란증이나 성도착으로 이해된다. 정신분석 관점에서 소년이 지닌 성기를 부러워하며 남자가 되고 싶어 하는 욕망이든 아니면 다른 것이든 유아기에 성적으로 억압된 욕구가 그녀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분석할 것이다.
프로이트 억압 이론에 대한 비판과 심리학 확장
융은 억압 원인과 억압이 미치는 힘에서 프로이트와 큰 차이를 보인다. “억압 내용에서 프로이트에 동의할 수 없다. 그는 억압 원인을 성적 외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요인 때문에 생활의 괴로움, 체면 등의 문제가 생기며, 성욕 문제가 2차적 역할을 하는 수많은 사례를 나는 알고 있다.”각주16) 억압 원인으로 다양한 사례를 제시했지만 프로이트가 성욕 이외의 요인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융은 정신을 생리적 충동에 예속시키지 않고 독자적 실체로 다루려 했다.
억압의 소재만이 아니라 억압이 무의식에 발휘하는 힘의 정도에서도 이견을 보인다. “무의식 영역에 포함되는 것은 억압된 내용만이 아니라 의식의 한계치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심적 소재도 포함된다. 이들 심적 소재가 모두 의식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억압의 원리로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각주17) 억압으로만 마음을 이해하면, 인간은 억압이 제거됐을 때 아무것도 잊지 못하는, 신비로운 기억을 지닌 존재가 된다. 무의식 내용에는 억압된 소재 이외에 의식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모든 심적인 것이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장애를 절대적으로 결정하지는 않는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전의식과 무의식으로 구분하고 여기에 초자아와 이드를 배치했다면, 융은 무의식의 자리에 그림자, 아니마(Anima) 또는 아니무스(Animus), 자기[Self]를 둔다. 집합적 무의식을 주장하는 융으로서는 프로이트와 다른 무의식 구조를 설정하는 게 당연했다. 그림자는 인류 초기 조상으로부터 전해져온 원시적 동물 본능을 포함하기 때문에 가장 근본적이다. 그러므로 사회가 억제하려는 충동을 지닌다. 하지만 그림자를 전적으로 억압할 때 근원적 본능이 지니는 자발성 · 창의성이 차단되면서 무기력해진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각각 남성에게 나타나는 여성적 측면, 여성에게 나타나는 남성적 측면으로서의 원형을 말한다. 이 역시 남녀가 수없이 많은 세대에 걸쳐 함께 생활하며 이성의 성격을 일부 습득하면서 형성된다. 자기는 통일성 · 통합성 · 전체성을 지향하며 균형을 유지하려는 궁극적인 자기실현 욕구를 의미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 정도에서 통합을 이루려 노력한다.
융은 자기의 통합 욕구를 통한 무의식과 의식의 균형을 강조했다. “정신적 안정뿐만 아니라 신체적 건강을 위해서도 무의식과 의식은 통합되어 평행적 작용을 해야 한다. 분열되면 심리적 장애를 일으킨다.” 프로이트에게 무의식은 억압된 충동이 소용돌이치는 곳이다. 하지만 융이 보기에 무의식은 의식과의 분열을 지양하고 하나의 인격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꿀 능력을 지닌 곳이다. 무의식과 의식의 인과론적 관계만이 아니라 균형과 정상을 향한 미래지향적 · 목적론적 파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에릭슨(Erikson)은 융의 문제의식을 확장한다. 유아기 · 아동기 경험이 중요하지만 억압된 성적 욕구보다는, 부모나 사회와의 관계에서 정체성이 형성된다. “남녀 아동은 조만간 남근이 한 성에는 결여되고 그 자리에 상처 같은 구멍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적응의 견지에서 보면 관찰과 감정이입이 심각하거나 일시적 장애의 순간을 제외하고는 남근이 없는 것에 그다지 심하게 집중하지는 않는다.”각주18) 극단적 상황에 있는 소녀를 제외하고는 모든 소녀에게 성적 억압과는 별개의 내면적 공간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심리학은 임신과 출산뿐만 아니라 충만함과 따뜻함과 관용성을 시사하는 수유와 여성 구조의 모든 풍부한 면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그러므로 단일한 성적 요인을 넘어서 다양한 요인을 고려하는 전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프로이트가 어린 시절 꿈 · 사고 · 기억의 분석을 중시한다면, 에릭슨은 사회적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 자아 분석을 중시한다. 그러므로 성인이 되면서 성격 형성이 종결되는 것이 아니다. 성인 역시 과정 속에 있다.
정신활동 이해 방법으로서의 꿈 해석
심리적 현상으로서의 꿈
프로이트에게 꿈은 정신분석의 핵심 통로다. 무의식이 매우 중요하더라도 이를 확인할 장치가 없다면 막연한 추측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무의식을 알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꿈은 무의식을 해석하는 중요한 인식 수단이다. 꿈을 중요한 심리적 형상으로, 정신생활 맥락에서 다룬다. “꿈은 중요한 심리적 행위며, 원동력은 성취되어야 하는 소원이다. 소원으로 인식하기 어려운 특성, 많은 기이한 것과 부조리는 꿈-형성에서 겪는 심리적 검열의 영향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검열에서 벗어나야 하는 압박 이외에 심리적 재료를 압축해야 하는 압박, 감각적 형상으로의 묘사 가능성에 대한 고려, 꿈-형성물의 합리적 이해 가능한 외양을 위한 고려가 꿈-형성에 영향을 미친다.”각주19)
꿈의 원동력은 성취되어야 하는 소원이다. 사람들의 내적 바람이 꿈이라는 형식을 띠고 나타난다. 그런데 소원이 그대로 꿈으로 반영된다면 꿈을 해석할 일은 없다. 그냥 꿈에 나타난 그대로 보면 된다. 문제는 꿈이 사진처럼 대상을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굴절되거나 심지어 매우 엉뚱해 보이는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는 꿈이 소원 성취만이 아니라 검열의 지배도 동시에 받기 때문이다. 소원 성취와 검열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작용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신활동의 요소와 방향을 구분해야 한다. “정신활동에 봉사하는 기구를 현미경이나 사진기 또는 이와 유사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 기구들은 렌즈를 통해 외부 물체의 상을 단계적으로 보여준다. 인간도 눈으로 물체를 보고 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하며, 다시 뇌가 신체를 통해 반응한다. 이 상식적 과정을 정신활동 내부의 설명에 사용한다. 정신활동은 감각을 수용하는 지각 조직에서 출발하여, 기억하는 조직을 거쳐, 의식적으로 어떤 반응을 수행하는 운동성 조직에 도달하는 과정으로 묘사된다.
꿈을 증거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무의식과 전의식을 구분해야 한다. “두 개의 심리적 심급을 가정하지 않을 경우, 꿈-형성의 해명이 불가능”하다. 소원 성취를 추동하는 꿈-형성의 원동력은 무의식에 있고, 이를 비판 · 검열하는 기능은 전의식이 담당한다. 정신활동의 요소는 무의식과 전의식, 의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정신활동은 무의식에서 전의식을 거쳐 의식으로 나아간다. 무의식은 끊임없이 의식으로 나아가는 통로를 확보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그런데 전의식은 무의식이 의식에 이르지 못하도록 통로를 병풍처럼 가로막고 검열한다. 그렇기 때문에 꿈에서 무의식이 상징화되거나 왜곡 · 굴절된 형태로 나타난다.
퇴행 과정으로서의 꿈
꿈은 과거로 돌아가는 퇴행이고, 어린 시절을 지배한 충동과 표현 방식의 재생이다. “퇴행적 사고 변화에서 억압되었거나 유아기에서 비롯된 기억의 영향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 기억은 검열 때문에 표현이 제한된 사고를 묘사 형식으로 퇴행에 끌어들인다. 기억은 이러한 묘사 형식 속에 심리적으로 존재한다.” 퇴행이란 정신활동이 ‘의식→전의식→무의식→기억 조직들→지각 조직’으로 역행하여, 사고와 표상이 감각적 원재료로 해체되는 과정이다. “히스테리와 편집증의 환각이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의 환영은 퇴행에 해당한다. 즉 그것은 형상으로 바뀐 사고며, 억압되었거나 무의식적 기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고만이 그러한 변화를 겪는다.” 유년 시절에 강한 감각 자극과 인상을 남긴 체험은 기억 조직에 흔적을 새겨 놓으며, 전의식의 검열로 억압된 소망은 기억 흔적과 결합해 환각을 구성한다.
퇴행이 발생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퇴행은 사고가 정상적 경로를 통해 의식에 진입하는 것을 막으려는 저항의 결과며, 동시에 강한 감각성을 지닌 기억이 사고에 발휘하는 흡입력의 결과다.” 하나는 무의식이 의식에 진입하는 것을 막으려는 전의식 기능으로 인해 사고와 논리가 감각으로 후퇴하면서 나타난다. 다른 하나는 기억 가운데 감각 자극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이 사고를 다시 감각으로 이끌기 때문에 나타난다.
이러한 개인의 유년기 배후에서 계통발생학적 유년기 즉 인류의 발전을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꿈을 분석함으로써 정신의 근원을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대할 수 있다. 꿈에서도 유아기 욕망이 지배적 역할을 한다. 특히 유아기의 성적 체험이나 이에 근거한 공상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꿈은 “전이를 통해 최근의 것으로 변화한 유아기 사건의 대체”라고 볼 수 있다. 유아기에 겪은 성적 체험이나 욕망은 원래대로 부활할 수 없으므로 꿈의 재현에 만족해야 한다.
“꿈이나 병적 퇴행 사례에서 일어나는 에너지 전이 과정이 정상적 정신생활의 퇴행에서와는 다르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에너지 전이 과정을 통해 지각 조직이 완전히 환각적으로 리비도에 집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보기에 악몽이나 수면을 방해할 만큼 고통스러운 꿈처럼 성적 소원 충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일반적인 불만이나 공포에 해당하는 꿈도 있지 않느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불만이나 공포에 해당하는 악몽을 꾸는 경우가 많다. 현상적으로는 성적 소원 성취와 관계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 두 가지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꿈이 전의식의 검열을 거쳐 굴절된 형태로 나타난다고 강조한 내용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른 하나는 성적 욕구가 흔히 생각하는 일반적 성 경험에만 제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적 본능은 파괴 본능과 중첩된다. 자기보존, 종족보존 성격을 갖는 성적 욕구는 파괴 욕구를 동반한다. 이 두 가지 욕구는 같은 분량은 아니더라도 언제나 공존한다. 아무리 다정한 사랑이라도 무의식 중에 공격적 욕구를 포함한다. 사디즘이나 마조히즘이 여기에 해당한다. 사디즘은 대상에 고통을 가함으로써, 마조히즘은 고통을 받음으로써 성적 만족을 얻는다. 모든 본능 충족은 이러한 본능이 융합되어 구성된 것이다.
성적 본능이 동반하는 파괴 욕구가 현실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억압 상태로 존재한다. 당연히 소원 성취가 제한받거나 부분적으로만 표출되는 데서 오는 불만이 축적될 수밖에 없다. 축적된 불만이 꿈의 검열 장치를 통해 공포의 감정과 결합된 악몽과 같은 꿈으로 나타난다. 악몽도 여전히 성적 소원 성취의 연장선에 있고, 꿈을 통한 대리 충족이다. 다만 검열 장치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단순한 악몽으로 느껴질 뿐이다.
프로이트 꿈 이론에 대한 비판과 심리학 확장
프로이트는 꿈이 과학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의미를 갖는다는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아들러는 프로이트 꿈 이론이 몇 가지 점에서 과학적 태도를 방기했다고 비판한다. “프로이트는 심리의 움직임에는 낮과 밤 사이에 틈이 있다고 생각한다. 의식과 무의식은 서로 모순된 것이라 보고, 꿈에는 일상의 사고 법칙과 모순되는 독특한 자신만의 법칙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한 모순이 나타나는 곳에서는 결국 심리를 다룸에 있어서 비과학적 태도가 나올 수밖에 없다.”각주20)
아들러가 보기에 프로이트 이론은 꿈과 현실에 큰 간극을 둔다는 점에서 과학적 태도를 상실했다. 자고 있을 때와 깨어 있을 때, 또 꿈의 사고와 낮의 사고를 대립과 모순으로 취급하는 어떠한 이론도 비과학적이다. 꿈과 낮의 차이점은 절대적인 게 아니다. 둘 사이에 고정된 경계 따위는 없다. 꿈에는 현실과의 관계가 낮보다 배제되어 있지만,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잠을 자면서도 현실과 접촉한다. 현실에서 여러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면 잠을 자면서도 고민은 연장된다. 현실에서 어떤 욕구를 갖고 있다면 꿈에서도 자신을 만족시켜 줄 것을 찾는다. 그러므로 과학적 견지에서 볼 때 꿈을 꾸는 사람과 깨어 있는 사람은 같은 인간이며, 꿈의 목적은 이 한 사람의 일관된 개성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프로이트 이론의 또 다른 오류는 꿈을 주로 성적 배경에서 분석하는 데 있다. “프로이트는 성적 배경에 집착함으로써 꿈을 인간의 노력이나 활동으로부터 분리시켜 버렸다. 꿈은 개성 전체가 아니라 일부에 지나지 않게 됐다.” 꿈은 억눌린 성적 욕구의 표현이 아니라 현실에서 좌절당한 것을 보상받으려는 안이한 시도며, 용기를 내야 할 일에 실패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성적 본능이 개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기주장 욕구나 권력에의 의지와 연관된 지배 욕구도 폭넓게 포함된다. 현실에서 주장 욕구나 지배 욕구가 좌절당할 때 꿈을 통해 보상을 얻으려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꿈의 열쇠는 성적 장애가 아니라 열등감에서 찾아야 한다. 노이로제나 꿈은 열등감을 감추고 보상하려는 상징적 방식이다.
융도 성적 요소로 꿈을 분석하는 프로이트의 한계를 지적한다. “경우에 따라서 꿈은 성적 행위가 아니라 전혀 다른 심리적 문제를 암시한다.”각주21) 프로이트가 대표적인 성 이미지로 꼽는 열쇠나 몽둥이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어떤 남성이 열쇠를 구멍에 꽂는 꿈이나, 무거운 몽둥이를 휘두르고, 문짝을 망치로 때려 부수는 꿈을 꾸었다면 프로이트의 분석처럼 성적 비유라고 간주할 수 있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문제는 분석이 여기에 머무른다는 데 있다. 그의 무의식이 여러 이미지 가운데 어떤 하나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정신분석을 통해 정말 알아내야 할 과제는 왜 몽둥이보다 열쇠가, 혹은 망치보다도 몽둥이가 선택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정신분석에서 꿈이 차지하는 비중을 과도하게 설정했다는 점에서 프로이트를 비판한다. “환자의 콤플렉스를 발견하기 위해서라면 구태여 꿈에서 출발할 필요는 없다. 콤플렉스는 주변의 다른 지점에서 시작하더라도 곧장 중심에 도달할 수 있다. ··· 꿈은 상징할 수 있는 다른 어떤 출발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프로이트에게 꿈은 정신분석의 출발점이자 핵심 통로였다. 하지만 융이 보기에 꿈은 무의식이 제공하는 풍부한 내용에 접근하는 데 매우 제한적 역할을 할 뿐이다. 꿈 이외에도 명상이나 그림 · 문자 등 아주 사소해 보이는 상징을 이용한 대화를 통해서도 무의식에 접근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융은 꿈 해석에서 상징의 역할을 강조한다. 상징은 다른 어떤 심리적 현상보다 중요하다. 특히 집합적 무의식을 형성하는 원형은 이미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원형은 이미지고 정감이다. 이 양자가 동시에 존재할 때만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단순한 이미지뿐일 때는 그림문자에 불과한 것으로 아무런 결과도 가져오지 못한다. 그러나 정감을 담음으로써 이미지는 심적 에너지를 획득한다.” 상징으로서의 이미지는 인류의 축적된 생활에서 오는 “욕망과 비슷한 것”이다. 상징은 심적 에너지가 만들어낸 욕망을 표현한다. 자연의 물리적 에너지 자체는 보거나 만질 수 없기 때문에 에너지의 작용으로 생기는 어떤 현상으로부터 에너지의 실체를 인지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심적 에너지도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에너지가 표현되는 상징을 통해 인식할 수 있다.
무의식에 연관된 상징은 주로 자연에 관한 것이다. 의식 세계에서 접하는 문화적 상징과는 다른 차원이다. “자연의 상징은 마음과 무의식의 내용으로부터 파생하며 따라서 근원적인 원형적 심상의 다양한 변화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경우 고대적 기원 즉 오래된 기록이나 미개인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관념과 이미지를 추적할 수 있다.” 십자가와 같은 종교적 상징은 문화적 상징의 대표적인 경우다. 의식 발전의 오랜 과정을 거쳐 문명사회가 받아들인 보편적 이미지다. 하지만 무의식에서 나온 상징은 인위적 · 의식적 요소가 덧씌워지지 않은, 원시적 이미지로 나타난다. 아니마와 아니무스 같은 집단 무의식은 모성애의 표상, 영웅의 표상, 섹시한 여성의 표상 등 특정한 모양으로 마음속에서 나타난다. “우리 세계의 표면은 미신적 혹은 비합리적 요소를 깨끗이 청소했다. 그렇지만 진정한 내적 세계도 원시성으로부터 해방되어 있는지의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그림자는 무의식의 이미지다. 자아의식으로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성격, 가장 싫어하기 때문에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노력해온 바로 그 성격이 그림자의 정체다. 성격 안에 있는 열등하고 부정적이며 숨기고 싶은 부분, 의식의 입장에서는 숨기고 싶은 즉 부정적 · 원시적인 부분을 의미한다. 의식이 빛이라면 이 그림자와 통합됨으로써 정상적인 한 사람이 된다. “분석치료가 그림자를 의식화하는 한, 일종의 분열과 대극긴장을 조성한다. 긴장을 느끼는 쪽에서 통합을 통해 타협을 꾀한다. 타협의 중개는 상징을 통해 이루어진다. 대극 사이의 대립은 심각하게 여겨질 때 참을 수 없는 한계에 이르게 된다.”각주22) 험악하고 비굴한 또는 야비한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의식은 대립과 분열의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그림자를 대면하고 인정할 때 통합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심리학자 프란츠(Franz)는 그림자 자각을 더 알기 쉽게 설명한다. “친구가 당신의 결점을 비난할 때, 마음 속에 심한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낀다면 바로 그 순간 자기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당신 그림자의 일부를 발견할 것이다.”각주23) 그 분노는 의식이 회피하려는 자신의 부정적 · 원시적 면으로서의 무의식을 반영한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자세히 들려다보려고 하지 않았던 자기 인격의 한 측면을 만나는 순간이다. 그림자와 친구가 되느냐 적이 되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 일상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듯이 그림자를 대해야 융이 강조하는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 가능성이 열린다.
키리코(Chirico)의 〈길의 신비와 우울〉은 그림자 세계를 묘사한다. 그림의 반은 빛이, 나머지 반은 어두운 그림자가 차지한다. 빛의 세계에는 긴 회랑이 있는 건물이 한낮의 햇빛을 받으며 눈부신 모습을 드러내고, 그림자 세계에는 뒷골목의 어두침침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대비가 워낙 선명해서 섞일 수 없는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분리되어 있는 느낌이다. 융이 강조하는, 그림자를 부인하려는 의식처럼 서로 생경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두 세계의 경계선 즈음에서 한 소녀가 굴렁쇠를 굴린다. 뒤로 그림자가 있지만 소녀도 그림자의 일부인 듯하다. 위쪽의 길가에도 건물에 가려서 반쯤 잘린 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광장에 세워진 동상을 자주 묘사한 키리코의 다른 그림을 고려할 때 어떤 영웅 동상의 그림자일 가능성이 크다. 영웅의 상징을 여성의 무의식에 나타나는 남성적 측면인 아니무스로 설명하는 융의 문제의식과 연관시켜 추측할 수 있다. 그림이 주는 수수께끼를 굴렁쇠를 굴리는 가녀린 소녀의 무의식 세계에서 꿈틀거리는 남성적 욕망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핸더슨(Henderson)은 영웅이 상징하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영웅 상징의 필요성은 자아가 강화될 필요가 있을 때 생겨난다. 무의식이 지닌 잠재력의 도움 없이 의식의 힘만으로는 어떤 과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필요성이 생겨난다.”각주24) 영웅 상징은 매우 활동적 형태의 원형이다. 억압된 성향에 대한 자아의 승리라는 원형적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인격의 어둡고 부정적인 면은 의식되지 않은 채로 남는다. 그러나 영웅은 오히려 그림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거기에서 힘을 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미녀와 야수도 영웅 상징의 일종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소녀도 영웅 신화에 참가하고 있다. 왜냐하면 소녀도 교육을 받고 확고한 개성을 발전시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각을 표현한 세계 공통 신화가 미녀와 야수 이야기다.
핸더슨은 정신의 초월적 기능도 상징을 통해 분석한다. 아이는 완전성의 감각을 지니지만 자아의식이 출현하면서 점차 잃어버린다. 성인이 되어 완전함의 감각을 되찾으려면 무의식과 의식을 결합시켜야 한다. 이렇게 결합되면 융이 말한 ‘정신의 초월기능’이 생겨난다. 이 기능을 갖춰야 인간은 비로소 가장 높은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이때 새가 중요한 초월의 상징을 담당한다. “새는 초월에 가장 어울리는 상징이다. 새는 영매(靈媒)를 통해 작용하는 직관의 특이한 성질을 표현한다.” 영매란 접신하여 황홀경에 빠진 상태에서,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나 의식적으로 모르는 사실을 알아내는 사람을 말한다. 초월 상징은 자기 가능성을 완전히 실현하여 목표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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