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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주의와 연관된 미술은 구조주의 철학을 명시적으로 표명하면서 경향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구조주의가 강조하는 우연성, 기표와 기의 구분, 기표의 능동적 역할 등이 현대 미술의 반구상적 충동을 자극함으로써 다양하게 형식주의 경향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 정도를 지적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구조주의의 직접적 · 사후적 영향 아래 제작된 작품을 통해 설명하기보다는 구조주의 철학자들이 친근하게 느끼는 미술 경향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더 유용하다. 이와 관련된 경향으로 몬드리안을 중심으로 한 신조형주의, 말레비치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 구성주의, 피카소를 중심으로 한 입체주의 등을 꼽을 수 있다. 먼저 신조형주의를 대표하는 미술가로는 몬드리안(Mondrian, 1872~1944), 두스부르흐(Doesburg, 1883~1931), 후사르(Huszàr, 1884~1960), 레크(Leck, 1876~1958) 등이 있다.

적지 않은 구조주의 비평가들이 몬드리안의 작업을 구조주의 미술의 대표적 방법으로 여긴다. 물론 몬드리안의 작품은 구조주의 철학 이전에 만들어졌다. 그의 작업을 구조주의적 관심을 가지고 접근한 것은 1970년대에 이르러서다. 여기에는 몬드리안이 검은색 수평선과 수직선, 원색의 크고 작은 평면 등 몇 가지 제한된 목록의 조합에 의해 다양한 작품 속에서 무수한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작용한다. 그림에서 모든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몇몇 색채와 색면 그리고 이들 사이의 비례관계만 남겨 놓았다. 스스로 이러한 점을 목적의식적으로 추구했다. “미술에 있어 정신적인 것에 근접하려면 우선 현실의 사용도를 가능한 한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왜냐하면 정신적인 것과 현실은 상반된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적 형태를 사용하는 것은 따라서 논리적 귀결이다.”각주1)

〈단지가 있는 정물2〉

몬드리안, 1912년

ⓒ 서해문집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단지가 있는 정물〉은 단순화된 기본적 형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구상예술로부터 비구상예술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작업 과정을 통해 드러낸다. 중앙의 단지 하나만 곡선이 남아 있고 나머지는 길고 짧은 직선과 직선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사각 도형이다. 뚜렷한 형태를 지닌 현실의 사물에 기초한 구상예술의 표현방식을 넘어 비구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비구상예술이 구상예술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 그것을 조형예술에 있어서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형상을 지닌 대상에서 출발하되 모든 대상성과 구상성을 버리는 과정은 미술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예술은 그 본질상 보편적인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개별 사물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적황청의 대비〉

몬드리안, 19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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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황청의 대비〉는 신조형주의 형식이 최종 단계에 이른 상태를 보여준다. 이제 입체감과 원근감은 완전히 사라졌다. 직각으로 교차하면서 화면의 흰 면을 분할하는 수직선과 수평선의 엄격한 효과가 두드러진다. 또한 극도의 단순화에 도달한 형태를 이용한 구성 작업을 통해 일정한 균형에 도달한다. “신조형주의는 정확한 질서를 명시해 보이는 것”이라는 주장처럼 빨강 · 노랑 · 파랑의 세 가지 순색만을 사용한 사각형 사이에 형성되는 비례관계가 다양한 질서와 의미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제공한다. 몇 가지로 제약된 사항만으로, 다양한 작품을 통해 무한히 복합적인 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제한된 수의 회화적 요소를 사용해 다양한 연작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현상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코드를 통한 질서의 규명을 강조한 구조주의와 접점이 생긴다.

미술작품에서 자연의 재현 요소를 제거하고 단순한 조형 요소에 이르러야 한다는 몬드리안의 주장에 공감하면서 신조형주의 경향이 형성된다. 몬드리안의 엄격한 미술 원칙에 공감한 두스부르흐는 몬드리안의 기본적 문제의식에 동의했으나, 회화적 표현에서는 차이를 보였다. 몬드리안이 극단적으로 단순하고 고정적인 형식을 고집했다면, 그는 제한된 조형 요소 틀 내이긴 하지만 더 화려하고 역동적인 방향을 추구했다. 몬드리안은 오직 직선과 수평선의 조합만을 원칙으로 제시했지만 그는 대각선의 역동적 측면을 중시했고, 결국 두 사람의 긴밀한 관계는 중단된다.

    • 1〈구성 IX〉

      두스부르흐, 1917년

    • 2〈산수적 구성〉

      두스부르흐, 1930년

〈구성 IX〉에서 볼 수 있듯이 두스부르흐의 그림은 무채색의 선과 단순화된 색면을 사용하되 몬드리안에 비해 다양하고 표현이 화려하다. 기본 도형을 사각형에 두고 있으나 크기나 모양에서 훨씬 다양하다. 특히 ‘ㄱ’이나 ‘ㄴ’자 모양처럼 꺾인 형태, 십자가 모양으로 변형된 형태 등 몬드리안과는 서로 다른 도형이 등장한다. 특히 몬드리안이 녹색을 자연을 떠올리게 하는 색이라는 점에서 거부했다면 그는 곳곳에서 녹색 계통의 색을 사용한다. 〈산수적 구성〉에서는 과감하게 대각선 구도를 시도한다. 좌측 상단에서 우측 하단으로 대각선을 따라오면서 사각형의 크기가 점점 커져서 역동적 변화 과정을 보여주고, 심지어 몬드리안이 질색하는 원근의 느낌까지 전달한다. 몬드리안은 평생에 걸쳐 대각선을 거부했고 이 때문에 두스부르흐와 관계를 끊었으나, 말년에 〈빅토리 부기우기〉에서 볼 수 있듯이 대각선을 수용한다.

    • 1〈구성 Ⅱ〉

      후사르, 1917년

    • 2〈폭풍우〉

      레크, 1916년

후사르와 레크는 표현 형식에서 보자면 몬드리안보다는 두스부르흐의 문제의식에 더 가깝다. 후사르는 〈구성 Ⅱ〉에서 볼 수 있듯이 도형 속에서 일정하게 자연의 형태를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를 사용한다. 기본 요소로 사각형을 사용하지만 크고 작은 사각형이 모여 걷거나 뛰는 사람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몬드리안이 거부한 리듬감을 도형 속에 부여한다. 또한 녹색을 사용하거나 원색에서 벗어난 바탕색을 사용하는 점도 몬드리안보다는 두스부르흐에 가까이 있음을 느끼게 한다.

레크의 〈폭풍우〉는 더 직접적으로 형태의 역할을 인정한다. 사각형과 삼각형 등 단순한 도형으로 묘사하고는 있으나 뚜렷하게 사람의 형상 그대로를 드러낸다. 검은색을 부분적으로 사용할 뿐 대체로 빨강과 노랑 등 원색 중심이다. 하지만 보라색처럼 더 유연하게 다양한 색을 구사한다. ‘구조주의 존재론과 인식론’에서 본 〈승강장에서〉처럼 아예 파스텔 계통의 혼합색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일상에서 나타나는 어떤 현상을 소재로 사용함으로써 구체적 현실과 끈을 유지하는 것도 특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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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순 집필자 소개

인문학이 생생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순간 화석으로 굳어진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인문학적 사유를 일상의 사건과 삶에 밀착시키는 방향으로 글을 써왔다. 동서양 미술작품을 매개로 철학적·사회적 영역으로 ..펼쳐보기

출처

사유와 매혹 2
사유와 매혹 2 | 저자박홍순 | cp명서해문집 도서 소개

미술로 서양 철학 전체를 조망하는 새로운 개념의 철학사이다. 미술작품을 단순한 참고 도판으로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 작품을 분석해 철학의 흐름과 어떻게 맞물려 변..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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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현대 철학과 미술 생철학 공리주의 · 실증주의 · 실용주의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학 실존주의 구조주의 후기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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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신조형주의 미술사유와 매혹 2, 박홍순,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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