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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의식은 현대 미술에 직접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도 목적이나 서사의 해체는 내용의 강박관념에서 표현 형식을 해방시켜 기존 회화 형식을 전면 부인하는 파격적 형식의 춘추전국시대를 열었다. 거대 서사가 사라진 자리에 개별적 · 지엽적 소재가 기지개를 폈다. 무엇보다 정신적 주체가 사라진 상태에서 거리낌 없는 감각의 향연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온다. 특히 정신성과 실존의 확실성을 중시한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발과 맞물리면서 치열한 혁신 경쟁이 불붙는다.

주체의 죽음은 작가도 예외일 수 없어서 누구의 창작인지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작가를 넘어 작품의 원본성도 회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면서 다양한 복제 양식 시도가 줄을 잇는다. 복제의 상징인 사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물론 한 작품 안에서 다양한 복제 이미지를 구현한다. 아예 화가의 창조적 작업과는 무관해 보이는 기성품이 공간만 바꾸어 예술의 자리를 넘보기도 한다. 복제는 미적 판단기준을 부인하고, 예술을 부정하는 것을 지향하는 근거로 작용한다. 형식과 내용에 걸쳐 현대 미술의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미쳤는데, 대표적으로는 레디메이드와 팝아트를 꼽을 수 있다.

현대미학의 문제는 미의 의미가 아니라 ‘예술이 된다는 것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라는 리오타르의 문제의식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레디메이드의 새 장을 연 뒤샹의 〈샘〉이다. 1917년, 세상이 러시아혁명으로 발칵 뒤집혔다면 미술계는 뒤샹의 〈샘〉으로 발칵 뒤집혔다. 시중에서 구입한 변기에 ‘R MUTT’라는 사인만 한 채 전시회에 출품했다. 작품 전시 문제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는데 결국 주최 측에 의해 〈샘〉은 전시기간 내내 전시장 칸막이 뒤에 방치되었다. 한마디로 변기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레디메이드라는 새로운 경향의 기념비적 작품이 되었다. 레디메이드 경향을 대표하는 화가로는 뒤샹(Duchamp, 1887~1968), 라우센버그(Rauschenberg, 1925~2008) 등이 있다.

주최 측은 〈샘〉을 저급하고 불결하다는 이유로 전시를 거부했다. 뒤샹은 ‘미국인에게 보내는 공개장’이라는 글을 통해 대대적으로 반격에 나섰다. 핵심 논쟁점은 아름다움이 아닌, ‘무엇이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가’였다. “자기 손으로 제작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화가가 그것을 선택했다. 생활용품을 사용하여 새로운 이름과 관점 아래, 본래의 실용적 의미가 사라지도록 배치했다. 이리하여 이 소재의 새로운 개념을 창출해냈다.” 레디메이드 즉 기성품을 일상적 환경과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놓으면 본래의 목적성을 상실하고 사물 자체의 무의미함만이 남는다. 화가가 특정한 시공간에 있게 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라우센버그의 〈모노그램〉은 스스로 ‘콤바인 페인팅’이라 이름 붙인 작업 방식을 보여준다. 회화적 요소와 기성품을 결합시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했다. 바닥에는 나무판자에 신문이나 잡지에 난 잡다한 사진 또는 그림을 붙이기도 하고, 군데군데 거친 붓질 흔적도 남겼다. 기존의 콜라주 형식과 비슷하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기성품을 이용하여 조각 이미지를 결합시켰다. 자동차 폐타이어에 박제 염소를 끼웠다. 염소 머리에도 덕지덕지 물감을 칠했다. 뒤샹이 그러했듯이 세속적 소재라 할 수 있는 일상용품을 원래 있던 자리에서 떼어내어 재배치함으로써 가치의 변화를 의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