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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장자 제 46 화

흐르는 강물처럼

지(知)가 북쪽의 현수(玄水)라는 강물에서 놀고 난 뒤 은분(隱弅)이라는 언덕에 올랐을 때 무위위(无爲謂)를 만났다.

지가 무위위에게 물었다.

“당신을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소. 어떻게 생각하고 얼마나 궁리해야 도를 알게 되고, 어디에 머물고 어떤 행동을 해야 도에 머물 수 있으며, 무엇을 좇고 어떤 방법을 써야 도를 깨달을 수 있겠소?”

세 번을 물었으나 무위위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일부러 대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답을 몰랐던 것이다. 지가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한 채 백수(白水)의 남쪽을 돌아서 호결(狐闋)이라는 언덕에 올랐을 때 광굴(狂屈)을 만났다. 지가 무위위에게 했던 것과 같은 질문을 하자 광굴이 대답했다.

“아, 그거라면 내가 잘 아니 말해 주겠소.”

하지만 광굴은 답변할 말을 잊고 머뭇거렸다. 광굴에게서도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지는 제궁(帝宮)에 들어가 황제에게 물었다. 황제가 대답했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야 비로소 도를 알고, 일정한 거처가 없고 행함이 없어야 도에 머물 수 있으며, 목표가 없고 의도가 없어야 비로소 도를 깨달을 수 있다.”

지가 다시 황제에게 물었다.

“황제와 저는 도에 대해서 알지만 광굴과 무위위는 알지 못하니, 대체 누가 옳은 것입니까?”

황제가 대답했다.

“무위위는 도를 아는 것이고 광굴은 도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그대와 나는 도의 근처에도 이르지 못했다. 무릇 도를 아는 자는 말로 표현하지 않고, 말로 표현하려 하는 자는 도를 모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는 말로써 이룰 수 없고 덕은 인위로써 도달할 수 없는 것이기에, 성인은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가르침을 실천한다.

인은 행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나 의는 때로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결함이 있고, 예는 겉치레로 흘러 서로를 속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도를 잃고 난 뒤에야 덕이 생기고 덕을 잃고 난 뒤에야 인이 생기며, 인을 잃고 난 뒤에야 의가 생기고 의를 잃고 난 뒤에야 예가 생긴다. 예는 도에 속하지 않는 겉치레에 불과해 도를 어지럽히는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도를 닦는 자는 인위가 날로 줄어들어, 더 이상 줄어들 것이 없으면 무위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이 무위의 도를 실천하면 천하에 무슨 일이든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지북유(知北遊)

지와 광굴, 그리고 무위위는 도에 대한 올바른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의인화하여 만들어 낸 존재들이다. 도를 깨닫고 도를 실천해야 한다는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이에 가장 가까운 존재가 무위위고, 다음이 광굴이며, 도와 상관없이 한 줌 지식만을 뽐내는 존재가 지인 것이다.

무위위는 자연의 이치에 대해 겸손한 척하며 답을 피한 것이 아니다. 무위위는 정말 모르기 때문에 아무런 답변도 할 수 없었을 뿐이다. 만일 무위위가 모르면서도 아는 척했다면 광굴과 같은 존재일 것이며, 무엇이든 알려고 덤비는 존재라면 지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 한 마디로 무위위는 무지하기 때문에 무위한 존재이며, 도에 가장 가까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광굴은 설익은 지식을 갖춘 사람이다. 마치 천도를 아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상 근본적인 물음에는 입을 닫고 마는 유약한 지식인에 불과하다. 지는 세속에 얽매인 채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을 상징한다. 구별과 차별에 익숙한 탓에 자신의 위치에 만족할 수 없어 늘 새로운 지식을 원하는 존재다. 하지만 지식을 아무리 많이 받아들여도 늘 아쉬울 뿐이다. 왜냐하면 알고 싶은 욕심을 함께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무위위는 앎이 없기에 자연의 모습으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광굴은 자신의 지식을 알아줄 대상에 매달리고, 지는 지식에 대한 갈증을 풀어 줄 대상을 찾기에 급급하다.

지가 현수와 백수를 떠나 은분과 호결에서 무위위와 광굴을 만난 것은 남보다 앞서 세상 사는 이치를 깨우치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었다.

지식은 욕심을 갖게 하므로 인간을 자연에서 멀어지게 하며, 인간 관계도 복잡하게 만든다. 따라서 인위에 집착하게 만드는 지식을 덜어 내고 멀리해야 본연의 순수함을 회복할 수 있으며, 도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배우고자 하는 욕심을 키우는 것보다 무심히 흐르는 강물처럼 지식을 갖고자 하는 욕심마저 잊고 흐르는 것이 도에 가장 가까운 삶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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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형 집필자 소개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를 졸업하고, 동교육대학원에서 윤리교육 석사학위 취득. 현재 보성여자고등학교 윤리 교사. 주요 저서≪도덕경,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무위의길≫, ≪질문하는 십대, 대답하는 ..펼쳐보기

장자 집필자 소개

중국 고대 도가(道家)의 사상가. 이름은 주(周). 송(宋)에서 태어나 맹자와 동시대에 노자를 계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실재성은 의심스럽다. 전국시대 말기, 도가의 사상가들이 원본 『장자..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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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장자 | 저자조수형 외 | cp명풀빛 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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