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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장자 제 11 화

칼로써 양생을 말하는 정(丁)

조리사 정(丁)이 문혜군(文惠君)에게 올릴 음식을 만들기 위해 소를 잡고 있었다. 한 손으로 쇠뿔을 움켜쥐고, 어깨로는 무게를 견뎌 내며 무릎을 세워 발로 짓누른 채 칼질을 했는데, 그 소리가 바람을 가르듯 경쾌하게 울려 퍼져 마치 음악을 연주하는 듯했다. 상림(桑林, 은나라 탕왕이 상산에서 지은 춤과 곡)의 춤과 경수(經首, 요임금이 만든 춤과 곡)의 장단에 견줄 만한 훌륭한 솜씨였다.

그윽히 바라보던 문혜군이 감탄하며 말했다.

“아! 훌륭하구나. 어찌 이리 훌륭한 재주를 지닐 수 있단 말인가.”

정은 칼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저는 기술이 아닌 도를 추구합니다. 소를 처음 다룰 때는 온전한 소 한 마리를 다루겠다고 덤벼들었습니다. 하지만 3년 정도 흐르고 나니, 온전한 소 대신 다루어야 할 부위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소를 대하는 경지까지 이르렀습니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크게 느껴지는 틈이나 공간에서 칼을 다루다 보면, 설령 뼈와 힘줄이 뒤엉켜 있어도 실수가 없으며, 큰 뼈조차 익숙하게 바를 수 있습니다.

뛰어난 조리사가 1년에 한 번 칼을 바꾸는 것은 살코기를 주로 다루었기 때문이고, 평범한 조리사가 다달이 칼을 바꾸는 것은 무리하게 써서 칼날이 뼈에 부딪혀 무뎌진 탓입니다. 지금 제 손에 들린 칼은 19년 동안 수천 마리의 소를 다루는 데 쓰였으나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간 듯합니다.

비록 남다른 솜씨를 지녔다고 인정받고 있지만, 뼈와 힘줄이 뒤엉켜 있는 부위를 다룰 때는 마음을 모으고 시선을 집중하며, 손놀림에 신중을 다합니다. 노고 끝에 뼈에 붙어 있던 살들이 마치 흙덩이처럼 분리되어 떨어지면서 해체가 끝나면, 잠시 긴장을 풀고 숨을 고른 후에 평상으로 돌아와 도구를 정리합니다.”

감동한 문혜군이 말했다.

“훌륭하구나. 네 이야기가 나에게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지혜를 일깨워 주었도다.”
양생주(養生主)

중국인들은 죽은 뒤의 세계나 내세에 매달리기보다는 삶을 연장하거나 무한히 이어 가는 수단을 찾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염원이 구체화된 신선술(神仙術)이 그 좋은 예이며, 삶을 오래도록 이어 가기 위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일인 양생(養生)은 구체적인 실천 방법 가운데 하나다.

위의 고사는 양생의 지혜에 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전하는 교훈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다.

첫째, 모든 사물의 근본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즉, 자연의 도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리사 정이 소를 다룰 때 결과 조직을 고려해서 칼을 썼던 것처럼, 근본을 이해하고 원리에 따르는 자세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둘째, 규율과 원칙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즉,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술수와 요령은 일시적으로 도움이 되나 칼날만 무디게 해 오히려 손해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

셋째,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즉, 보잘것없는 일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이 소 잡는 일을 하찮게 여겼다면 기술 연마는 물론 남에게 인정받는 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맡은 일에 긍지를 갖고 최선을 다함으로써 기술을 도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렸기에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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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형 집필자 소개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를 졸업하고, 동교육대학원에서 윤리교육 석사학위 취득. 현재 보성여자고등학교 윤리 교사. 주요 저서≪도덕경,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무위의길≫, ≪질문하는 십대, 대답하는 ..펼쳐보기

장자 집필자 소개

중국 고대 도가(道家)의 사상가. 이름은 주(周). 송(宋)에서 태어나 맹자와 동시대에 노자를 계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실재성은 의심스럽다. 전국시대 말기, 도가의 사상가들이 원본 『장자..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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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장자 | 저자조수형 외 | cp명풀빛 도서 소개

인간 외의 사물에 인간의 감정을 부여하여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게 함으로써 교훈을 주고자 하는 의도로 사용되는 우화는 대개 인간의 한계를 조롱하고 풍자하려는 것이 그 목..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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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칼로써 양생을 말하는 정(丁)장자, 조수형 외, 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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