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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장자 제 9 화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다

살아 있는 것을 기뻐하는 것은 어리석음일 뿐이다. 사람이 죽음을 멀리하려는 것은 어렸을 때 떠나온 고향에 돌아가지 않으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희(麗姬)는 애(艾)라는 고장을 지키는 관리의 딸이었다. 처음 진(晉)나라에 끌려와서는 눈물로 옷깃을 적셨지만, 왕의 사랑을 받으며 호화로운 궁궐에서 산해진미를 먹게 되자 전의 행동을 후회했다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죽은 사람들이 삶에 대해 집착하리라는 보장 또한 없는 것이다.
제물론(齊物論)

잘 살아가는 것은 잘 죽어 가는 일과 마찬가지다. 모든 존재는 생겨남과 동시에 소멸의 과정을 밟는다.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다른 사물에 비해 자의식이 강하다고 스스로 믿는 인간은 삶과 죽음을 동일선상으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보고 삶을 연장하기 위해 죽음을 애써 잊으려 한다.

하지만 장자는 삶과 죽음을 변화의 흐름에 놓인 연속적인 관계라고 보았다. 시작과 끝이라는 대립 관계가 아니라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하나의 흐름으로서 삶과 죽음을 이해한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이 곧 죽어 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은 곧 삶이 삶 자체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죽음이 죽음 자체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도가와 같은 계통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 전한의 회남왕 유안(劉安)이 쓴 《회남자(淮南子)》에서도 장자와 비슷한 생사관을 엿볼 수 있다.

내가 태어나기까지 천지에는 무한한 시간이 흘렀다. 이를 놓고 보면 나라는 존재는 무한한 시간과 공간에 놓인 티끌에 불과하다. 몇 십 년의 수명만 지니고 태어난 인간이 천하를 걱정하는 것은 마치 황하의 물이 줄 것을 슬퍼하고, 그 눈물로 황하의 물을 채우려 하는 것과 같다. 사흘밖에 살지 못하는 하루살이가 3천 년을 사는 거북에게 장수의 비법을 알려 준다면 천하가 웃을 일이다. 천하의 어지러움보다 스스로 깨달음을 얻으려는 사람이어야 도를 말할 자격이 있다.

《장자》나 《회남자》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비할 데 없이 크고 넓은 우주의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아울러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에 떠다니는 자그마한 잎사귀에 불과하다. 유한한 인생이 무한한 자연을 거스르고 걱정하기보다,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여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탄생은 죽음의 첫걸음이기도 하다. 따라서 잘사는 것은 잘 죽는 것이며, 생명의 시작으로서 죽음을 받아들일 때 삶은 평안하고 여유로워지는 것이다.

생명을 받으면 그대로 즐기고, 생명을 잃을 경우에는 제자리로 돌아간다.
장자 〈대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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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형 집필자 소개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를 졸업하고, 동교육대학원에서 윤리교육 석사학위 취득. 현재 보성여자고등학교 윤리 교사. 주요 저서≪도덕경,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무위의길≫, ≪질문하는 십대, 대답하는 ..펼쳐보기

장자 집필자 소개

중국 고대 도가(道家)의 사상가. 이름은 주(周). 송(宋)에서 태어나 맹자와 동시대에 노자를 계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실재성은 의심스럽다. 전국시대 말기, 도가의 사상가들이 원본 『장자..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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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장자 | 저자조수형 외 | cp명풀빛 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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