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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백옥(蘧伯玉)이 안합(顔闔)에게 말했다.인간세(人間世)
“당신도 사마귀에 대해 아실 것입니다. 사마귀란 놈은 화가 나면 앞발을 치켜들고 수레바퀴에 맞서기도 합니다. 이는 제 분수를 모른 채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얕은 재주만 믿고 상대방에게 맞서려 한다면 위태로울 수 있으니, 이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당신은 호랑이를 사육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아실 것입니다. 사육사는 호랑이에게 살아 있는 먹이를 주지 않습니다. 산 채로 주면 살생의 맛을 알게 되어 성질이 포악해지기 때문이지요. 죽은 먹이라도 통째로 주어서는 안 됩니다. 먹이를 찢어발기면서 성질이 더욱 과격해지기 때문이지요.
호랑이를 돌보는 사람은 호랑이의 욕구를 잘 헤아려서 성난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호랑이가 자신과 다른 부류인 사육사에게 온순하게 행동할 것입니다. 드물지만 호랑이가 자신을 돌보는 사육사를 해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호랑이의 본성을 거슬렀기 때문입니다.
말을 돌보는 사람은 광주리에 말똥을 담고 큰 조개껍데기에 오줌을 받아 가면서 정성을 다합니다. 하지만 모기나 등에가 말에 붙은 것을 보고 무심코 후려치면, 놀란 말은 재갈을 물어뜯고 돌보는 사람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말에 대한 정성이 지극해도 말의 본성을 외면하면 화를 입을 수도 있으니, 어찌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자연을 이루고 있는 모든 존재들은 나름의 본성이 있다. 또한 각각의 본성이 모여 자연을 이룬다고도 말할 수 있다.
사계절이 서로 바뀌며 일어나고, 만물은 차례로 소생하네. 음과 양은 조화롭고, 자연의 소리는 흐르는 빛과 같구나.장자 〈천운〉
장자의 눈에 비친 자연은 질서정연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질서에 순응하며 조화를 이룬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장자의 눈에 비친 인간 세계는 차별과 다툼, 혼란과 무질서가 뒤섞인 세상이다. 겸손함을 잊은 지 오래된 사람들은 저마다 잘난 척하며 상대방에게 권력을 휘두르려 든다.
그의 행동을 가만 놔두면 나라가 위기에 처하게 되고, 바로잡으려 하면 내 신상이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그의 지혜는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추는 일에는 뛰어나지만 자신의 허물은 알지 못합니다.장자 〈인간세〉
위나라 임금인 영공의 심성이 포악하다고 알려진 탓에, 태자의 사부로 임명받은 위나라의 현인 안합은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부임에 앞서 노(魯)나라의 현인인 거백옥을 찾아가 상의했고, 이를 장자가 인용한 대목이 바로 위의 글이다.
장자는 이 글을 통해 타고난 본성을 외면한 채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려는 인간들의 속성을 지적하고자 했다. 장자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나 허물에는 관대하거나 무지하고, 상대의 약점에 대해서는 심하게 몰아붙이는 존재들이다. 즉, 분수를 모르고 수레바퀴에 무모하게 맞서는 사마귀나, 맹수의 속성을 무시한 채 자신의 감정대로 호랑이를 다루는 사육사처럼 능력을 과신하고 권력을 휘두르려는 존재들이다.
자연은 분수를 지키고 흐름을 따른다. 이에 비해 인간은 이기심과 권력욕을 드러내며 흐름을 거스른다. 인간이 무리를 이루는 곳에는 어디든 혼란과 다툼이 생겨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이 본디 속해 있던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아울러 교만의 옷을 벗고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알게 되면 ‘인간이 곧 자연’인 본래 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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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존중함으로 존중받는다 – 장자, 조수형 외, 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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