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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장자 제 33 화

진리를 담을 그릇은 없다

제나라의 환공(桓公)이 대청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대청 아래에서 수레에 매달 바퀴를 깎고 있던 윤편(輪扁)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환공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미천한 제가 감히 한 말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환공이 말했다.

“무엇을 말이냐?”

윤편이 물었다.

“지금 읽고 계신 책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환공이 대답했다.

“성인이 남기신 말씀이다.”

윤편이 다시 물었다.

“성인은 살아 계십니까?”

환공이 답했다.

“일찍이 돌아가셨다.”

윤편이 말했다.

“그렇다면 임금께서는 옛 사람이 남긴 하찮은 이야기에 관심을 두시는군요?”

화가 난 환공이 말했다.

“무엄하구나. 내가 책을 읽는데 수레바퀴나 깎는 미천한 네놈이 어찌 감히 끼어들어 망발을 늘어놓느냐. 제대로 변명하지 못하면 내가 너를 죽일 것이다.”

윤편이 말했다.

“제가 하는 일을 예로 들어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수레바퀴를 너무 작게 깎으면 바퀴집이 헐거워져 빨리 닳고, 반대로 너무 크게 깎으면 끼울 수조차 없습니다. 바퀴집에 알맞게 깎는 기술은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지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올바른 이치는 존재와 표현 사이에 있기 때문입니다. 신(臣)은 이러한 이치를 자식에게 깨우쳐 주지 못하여 일흔이 넘도록 수레바퀴를 깎고 있습니다. 옛 사람들도 깨달음을 다른 사람에게 고스란히 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히 임금님께서 읽으시는 책을 하찮다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천도(天道)

이 글이 전하는 교훈은 ‘언어나 문자라는 그릇이 진리를 담아 내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근대 영국의 경험론 철학자인 베이컨 역시 우상론을 통해 같은 생각을 이야기했다. 베이컨이 말하는 우상은 한 마디로 편견을 의미한다. 그가 말하는 네 가지 우상 가운데서도 ‘시장의 우상’은 언어가 정확한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편견을 가리킨다. 즉, 언어와 사고가 정확하게 일대일로 대응할 수 없기에 편견과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언어와 문자의 한계에 대해 뛰어난 통찰력을 지녔던 또 한 사람의 사상가는 현대 독일의 분석 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이다. 그는 언어가 지닌 실제 의미에 주목하면서 ‘의미는 사용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또한 그는 “한 단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단어를 사회적 실천에 따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종합해서 표현한다면 언어의 정확한 의미는 ‘사용과 실천’으로만 증명될 수 있다는 말이다.

도가에서도 사물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갖게 될까 봐 지식을 경계한다. 지식이 더 많은 욕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가는 지식에 의존하는 사람은 무위와 자연, 천도에서 멀어진다는 주장을 강하게 내세운다.

한낱 수레바퀴를 만드는 장인인 윤편이 제나라의 왕인 환공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의 생각을 밝힌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언어나 문자로는 사람의 마음을 모두 옮길 수 없으며, 사람이 만든 지식이라는 그릇으로는 결코 진리를 모두 담아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윤편은 평생 수레바퀴를 깎으면서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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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형 집필자 소개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를 졸업하고, 동교육대학원에서 윤리교육 석사학위 취득. 현재 보성여자고등학교 윤리 교사. 주요 저서≪도덕경,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무위의길≫, ≪질문하는 십대, 대답하는 ..펼쳐보기

장자 집필자 소개

중국 고대 도가(道家)의 사상가. 이름은 주(周). 송(宋)에서 태어나 맹자와 동시대에 노자를 계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실재성은 의심스럽다. 전국시대 말기, 도가의 사상가들이 원본 『장자..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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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장자 | 저자조수형 외 | cp명풀빛 도서 소개

인간 외의 사물에 인간의 감정을 부여하여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게 함으로써 교훈을 주고자 하는 의도로 사용되는 우화는 대개 인간의 한계를 조롱하고 풍자하려는 것이 그 목..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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