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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오가 손숙오(孫叔敖)에게 물었다.전자방(田子方)
“선생께서는 세 번이나 영윤(令尹, 재상)의 자리에 오르셨지만 영광으로 여기지 않으셨고, 세 번이나 자리에서 내몰리셨지만 근심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선생의 태도가 위선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진심으로 기뻐하고 계십니다. 대체 선생께서는 어떻게 마음을 쓰시기에 이와 같을 수 있습니까?”
손숙오가 대답했다.
“그렇다고 내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오. 나는 단지 내게로 오는 것을 물리치지 못하고, 가는 것을 붙잡지 못할 뿐이오. 또한 지위를 얻고 잃음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아는데 근심한들 무엇하겠소.
사람들이 나에게 경의를 표하는 이유가 나의 됨됨이 때문인지 아니면 영윤이라는 벼슬 때문인지 그조차도 알 수 없는 일이오. 홀가분한 마음으로 세상을 둘러보려는 내게는 세속적인 부귀나 비천에 마음을 쓸 여유가 없소.”
이 말을 전해 들은 공자가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옛날의 진인은 지혜로도 설득되지 않았고, 미인도 유혹하지 못했으며, 도둑이 감히 접근하지 못했고, 복희(伏戱, 고대 중국의 제왕)나 황제라도 친구로서 사귈 수가 없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인 생사도 초월했는데, 벼슬이나 봉록은 말해 무엇하겠느냐.
진인의 경지에 이르면 큰 산도 정신의 흐름을 가로막지 못하고, 깊은 못이나 샘물에도 젖지 않으며, 비천한 자리에 있어도 고달프지 않고, 마음이 천지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남을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지만 자신은 오히려 더욱 풍부한 경지에 이르게 된다.”
《논어》의 〈공야장〉편에 보면, 손숙오는 초나라 장왕 때의 훌륭한 재상인 자문(子文)이라고 나온다. 그가 재상의 자리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데다가, 공자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그는 완전한 덕을 지닌 진인에 가까운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장자는 세상을 대하는 진인에 대해 〈대종사〉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인은 절대로 거역하지 않으며, 자신의 공로를 드러내지도 않고, 그 어떤 일에도 의미를 두지 않는다. 또한 때를 놓쳐도 후회하지 않으며, 마음먹은 대로 일이 진행되어도 자만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 앞에서도 당당하며……, 오직 알기에 힘써 도의 경지에 이른다.
세상 사람들은 인생이라는 한바탕의 봄꿈에 취해 살면서 권력을 다툰다.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 권모술수를 일삼고, 남에게 못할 짓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하지만 진인은 깨어 있기에 그 어떤 달콤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생사도, 부귀와 비천도, 지위와 봉록도 진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진인은 세속의 하찮은 가치를 버리고,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무한의 자유를 누리는 존재인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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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체목차
1. 내편(內篇)
제1화 곤이 붕으로
제2화 허유와 접여의 삶의 태도
제3화 혜자의 박
제4화 쓸모는 하늘이 정하는 법
제5화 통하였느냐
제6화 조삼모사
제7화 참을 수 없는 지식의 가벼움
제8화 무엇이 올바른 삶인가
제9화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다
제10화 꿈 깨니 또한 꿈이런가
제11화 칼로써 양생을 말하는 정(丁)
제12화 사람에게서 자연으로
제13화 누구나 자기 설움에 운다
제14화 집착이 없으면 잃을 것도 없다
제15화 천륜(天倫)과 인륜(人倫)
제16화 존중함으로 존중받는다
제17화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제18화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제19화 이름지어진 덕은 덕이 아니다
제20화 사람의 정, 하늘의 정
제21화 진인을 본받아
제22화 삶과 죽음을 넘어 자유로
제23화 청출어람(靑出於藍)
제24화 마음을 비우면 귀신도 도망간다
제25화 인위(人爲)가 무위(無爲)를 죽이다
2. 외편(外篇)
제26화 물오리와 학의 다리
제 27화 수양산 바라보며 공자를 탓하노라
제28화 그 어떤 기예도 자연을 빚지는 못한다
제29화 곳간지기 공자
제30화 바람만이 아는 대답
제31화 요임금과 봉인
제32화 인도(人道)와 천도(天道)
제33화 진리를 담을 그릇은 없다
제34화 지극한 인(仁)은 근본에 따르는 것
제35화 천도 정치
제36화 버려야 얻는다
제37화 본성에 대한 편견
제38화 벼랑에 이르러야 바다를 본다
제39화 바람은 경계가 없다
제40화 짝 잃은 장자를 곡하노라
제41화 마음을 비우면 죽음도 피한다
제42화 최고의 명장은 자연
제43화 쓸모는 사람이, 수명은 자연이 정한다
제44화 가장 뛰어난 화장술은?
제 45화 제후보다 진인
제46화 흐르는 강물처럼
제47화 한 우물을 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