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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장자 제 45 화

제후보다 진인

견오가 손숙오(孫叔敖)에게 물었다.

“선생께서는 세 번이나 영윤(令尹, 재상)의 자리에 오르셨지만 영광으로 여기지 않으셨고, 세 번이나 자리에서 내몰리셨지만 근심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선생의 태도가 위선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진심으로 기뻐하고 계십니다. 대체 선생께서는 어떻게 마음을 쓰시기에 이와 같을 수 있습니까?”

손숙오가 대답했다.

“그렇다고 내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오. 나는 단지 내게로 오는 것을 물리치지 못하고, 가는 것을 붙잡지 못할 뿐이오. 또한 지위를 얻고 잃음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아는데 근심한들 무엇하겠소.

사람들이 나에게 경의를 표하는 이유가 나의 됨됨이 때문인지 아니면 영윤이라는 벼슬 때문인지 그조차도 알 수 없는 일이오. 홀가분한 마음으로 세상을 둘러보려는 내게는 세속적인 부귀나 비천에 마음을 쓸 여유가 없소.”

이 말을 전해 들은 공자가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옛날의 진인은 지혜로도 설득되지 않았고, 미인도 유혹하지 못했으며, 도둑이 감히 접근하지 못했고, 복희(伏戱, 고대 중국의 제왕)나 황제라도 친구로서 사귈 수가 없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인 생사도 초월했는데, 벼슬이나 봉록은 말해 무엇하겠느냐.

진인의 경지에 이르면 큰 산도 정신의 흐름을 가로막지 못하고, 깊은 못이나 샘물에도 젖지 않으며, 비천한 자리에 있어도 고달프지 않고, 마음이 천지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남을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지만 자신은 오히려 더욱 풍부한 경지에 이르게 된다.”
전자방(田子方)

《논어》의 〈공야장〉편에 보면, 손숙오는 초나라 장왕 때의 훌륭한 재상인 자문(子文)이라고 나온다. 그가 재상의 자리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데다가, 공자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그는 완전한 덕을 지닌 진인에 가까운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장자는 세상을 대하는 진인에 대해 〈대종사〉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인은 절대로 거역하지 않으며, 자신의 공로를 드러내지도 않고, 그 어떤 일에도 의미를 두지 않는다. 또한 때를 놓쳐도 후회하지 않으며, 마음먹은 대로 일이 진행되어도 자만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 앞에서도 당당하며……, 오직 알기에 힘써 도의 경지에 이른다.

세상 사람들은 인생이라는 한바탕의 봄꿈에 취해 살면서 권력을 다툰다.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 권모술수를 일삼고, 남에게 못할 짓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하지만 진인은 깨어 있기에 그 어떤 달콤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생사도, 부귀와 비천도, 지위와 봉록도 진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진인은 세속의 하찮은 가치를 버리고,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무한의 자유를 누리는 존재인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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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형 집필자 소개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를 졸업하고, 동교육대학원에서 윤리교육 석사학위 취득. 현재 보성여자고등학교 윤리 교사. 주요 저서≪도덕경,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무위의길≫, ≪질문하는 십대, 대답하는 ..펼쳐보기

장자 집필자 소개

중국 고대 도가(道家)의 사상가. 이름은 주(周). 송(宋)에서 태어나 맹자와 동시대에 노자를 계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실재성은 의심스럽다. 전국시대 말기, 도가의 사상가들이 원본 『장자..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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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장자 | 저자조수형 외 | cp명풀빛 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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