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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아내가 죽어 혜자가 조문을 갔을 때, 장자는 다리를 펴고 앉은 채로 쟁반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지락(至樂)
혜자가 말했다.
“자식을 키우며 함께 했던 아내가 죽었는데 곡은 하지 않고 쟁반을 두드리며 노래나 부르다니, 너무 심하군.”
장자가 말했다.
“즐거워서 이러는 것은 아니네. 아내가 죽었을 때 나 역시 슬픔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네. 하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인간의 생명이나 형체도 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네. 그뿐 아니라 형태를 만드는 기조차 처음에는 없었지. 천지가 뒤섞여 있던 혼돈에서 기가 나오고, 기가 변해서 형태를 이루고, 그 형태가 변해서 생명이 생긴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제 다시 변화가 진행되어 형태에서 기로, 기에서 혼돈, 즉 죽음으로 돌아간 것이지 않은가. 이는 계절의 순환과 마찬가지 이치라네. 속세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천지라는 고요한 방에서 편히 쉬려는 사람에게 큰 소리로 곡을 한다면, 내가 천명을 모르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내가 이러는 것이라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누구도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라는 말로 만물유전(萬物流轉)의 자연관을 나타냈다. 도가 사상 역시 변화와 순환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자연관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떤 것이 한데 뒤섞여 있는데, 천지에 앞서 생겨났고 고요하고 쓸쓸하다. 홀로 서 있으면서도 (자신을) 바꾸지 않는다. 두루 운행하면서도 위태롭지 않으니 천하의 근원이 될 수 있다.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글자를 붙여 ‘도’라고 하였고, 억지로 이름을 지어 ‘대(大)’라고 하였다. 크면 멀리 가고, 멀리 가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되돌아온다.도덕경 25장
여기에 생명을 대입해 보면, 혼돈(도, 道)에서 비롯된 기는 형체, 즉 생명을 이루고, 멀리 가고, 멀어지고, 되돌아온다. 즉, 혼돈으로 되돌아간다는 뜻이 된다.
이와 같은 순환의 자연관에 대해 장자는 좀 더 자세하게 밝혔다.
도는 원래 시작과 끝이 없지만 물(物)에는 생사가 있다. ……때로는 비워 지고 때로는 차는 것이니, 그 형상이 일정하지 않다. 뜨는 해를 돌려보낼 수 없고 흐르는 때를 잡아 둘 수 없으니, 하나가 끝나면 하나가 곧 시작된다.장자 〈추수〉
대개 물이 생기면 그 변화가 빨라져서 움직여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때를 따라 옮기지 않는 것이 없으니, 무엇은 해야 하고 무엇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본래부터 조화의 자연에 맡겨 변화해 갈 뿐이다.
순환의 도에 순응하면 죽음은 결코 슬퍼할 일이 아니다. 흐름의 일부로서 혼돈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제13화 누구나 자기 설움에 운다에서도 노자의 죽음에 대하여 ‘사람들은 순환의 도를 알지 못한 채 자기 설움에 우는 것일 뿐’이라며 의연한 태도를 취했던 진실의 이야기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이 글에서 장자 역시 진실과 같은 생사관을 보여 준다.
조문을 온 혜자는 여느 상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상주의 슬픔에서 동병상련의 슬픔을 느끼려 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른 장자의 쾌활한 태도에 당황했다. 그러고는 자기 설움을 토해 내려던 기회를 놓친 허탈감에 장자를 비난했다. 하지만 ‘삶과 죽음은 하나임’을 아는 장자는 삶 자체에 만족하고 즐기려는 태도를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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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짝 잃은 장자를 곡하노라 – 장자, 조수형 외, 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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