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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장자 제 21 화

진인을 본받아

어떤 사람을 일러 진인(眞人)이라 하는가. 옛날의 진인은 상대방이 모자란다고 업신여기지 않았으며, 자신의 능력을 뽐내지 않았고, 억지로 일을 하지도 않았다. 진인은 실패해도 후회하지 않았고,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일이 진행되어도 자만하지 않았다. 진인은 높은 데를 오르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물속에서도 젖지 않고,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았다. 이는 진인의 지식이 도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옛날의 진인은 잠을 자도 꿈을 꾸지 않았고, 깨어나도 근심하지 않았다. 먹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으며, 호흡은 보통 사람에 비해 훨씬 길었다. 진인의 숨은 발뒤꿈치까지 도달하는데, 보통 사람의 호흡은 목구멍에서 그칠 뿐이다. 남의 비위나 맞추려는 자는 목이 메이는 듯한 소리를 내고, 욕심이 많은 자는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옛날의 진인은 삶을 기뻐하거나 죽음을 미워하지 않았다. 또한 태어남을 기뻐하거나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저 홀연히 왔다가 홀연히 갈 뿐이라고 생각했다. 삶의 시작을 기억하면서도 끝나는 바를 구하지 않았다. 하늘에서 생명을 받았음을 기뻐하면서도 죽으면 의연히 자연으로 돌아간다.

진인은 마음으로 도를 새기고, 인위적으로 하늘의 뜻을 저버리지 않는다. 진인의 마음은 속세를 떠나 도에 머물러 고유함을 유지하며, 이마는 넓고 평평하다. 어느 곳에도 치우치지 않는 마음은 서늘하기가 가을 같고, 따뜻하기는 봄과 같다. 감정이 사계절과 통하고 사물과 조화를 이루니, 감히 그 마음의 바닥을 짚을 수가 없다.
대종사(大宗師)

장자가 등장한 뒤 도가에서는 도를 깨우친 사람을 진인이라 불렀는데, 훗날 당나라의 현종(玄宗)은 장자에게 남화진인(南華眞人)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리기도 했다.

진인은 분명 보통 사람과는 구별되는 존재다. 보통 사람이 세속에 부대끼며 작은 이익이라도 얻으려고 애쓰는 존재라면, 진인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공을 다투지 않으며, 주관에서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는 존재를 의미한다.

진인의 경지는 보통 사람들이 볼 때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상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장자가 내세우는 진인의 조건을 곰곰 따져 보면, 보통 사람들이 갖추고자 하는 덕목과 비슷하다. 진인의 풍모에 대해 묘사한 위의 글에서도 겸손, 용기, 의연함, 온유 등 보통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덕목들이 등장한다. 이 점만 보더라도, 우리는 장자가 내세우는 진인이 인간과 동떨어져 구름 위를 노니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갖추어야 할 모든 덕목을 갖춘 최고의 인간임을 알 수 있다.

장자가 내세우는 진인의 여러 조건들 중에서 핵심은 단연 ‘자연의 흐름에 대한 순응’이다. 진인, 또는 지인(至人)은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존재다. 대립적인 사고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존재이며, 빈부나 귀천의 조건을 따져 차별하지 않는 존재다. 삶과 죽음에 선을 긋지 않으며, 시작과 끝에 연연하지 않는다. 또한 진인은 독선적 태도나 절대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편협한 규범주의도 싫어한다. 이러한 진인의 모습에 대해 장자는 간결하고 명확하게 밝혀 주었다.

진인은 육신을 버리고 분별을 버려서 안팎으로 크게 통한다.
장자 〈대종사〉
진인은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고 사사로움을 버린다.
장자 〈응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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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형 집필자 소개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를 졸업하고, 동교육대학원에서 윤리교육 석사학위 취득. 현재 보성여자고등학교 윤리 교사. 주요 저서≪도덕경,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무위의길≫, ≪질문하는 십대, 대답하는 ..펼쳐보기

장자 집필자 소개

중국 고대 도가(道家)의 사상가. 이름은 주(周). 송(宋)에서 태어나 맹자와 동시대에 노자를 계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실재성은 의심스럽다. 전국시대 말기, 도가의 사상가들이 원본 『장자..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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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저자조수형 외 | cp명풀빛 도서 소개

인간 외의 사물에 인간의 감정을 부여하여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게 함으로써 교훈을 주고자 하는 의도로 사용되는 우화는 대개 인간의 한계를 조롱하고 풍자하려는 것이 그 목..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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